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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당신의 신화 당신의 신화 / 여우는 여우는 / 12월에 오기까지 / 달개비꽃 앞에서 / 겨울 1 / 겨울 2 / 새벽의 시간 / 나무처럼 / 시냇물 하나 / 수많은 물결되어 / 파도와 모래톱 / 오래된 목로 2부 그렇네 그렇네 / 내 옷 / 내가 살던 집 / 아무것도 / 장맛비 / 혼술 / 유리잔을 씻으며 / 서랍 속 / 수줍음 / 그대와 나 / 그저 그럴 뿐 3부 데스벨리에 가거든 데스벨리에 가거든 / 안데스에서 / 쿠스코 할머니 / 파타고니아 / 아프리카에서는 / 장미 호수 / 르 토로네 수도원 / 코츠월드 마을 / 사그라다 파밀리아 / 동전 세 개 / 빈 의자 / 경포대에서 / 꽃 1 / 꽃 2 / 꽃 3 / 꽃 4 / 꽃 5 / 꽃 6 / 꽃 7 / 꽃 8 4부 사랑 노부부 / 행복한 비상 / 혼자 사는 여인 / 산다는 게 / 조우 1 / 조우 2 / 돌아간 너 / 다행이다 2 / 내 친구 경숙이 / 어머니 말씀 / 하랑이 / 산타 이야기 1 / 산타 이야기 2 / 아가야 1 / 아가야 2 / 사랑 1 / 사랑 2 / 사랑 3 / 사랑 4 / 사랑 5 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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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여우는
어릴 적 여우놀이를 하면서 세 고개를 넘어본 여우는 여우는 그 후로 수많은 고개를 넘어왔어 언덕 흐드러진 꽃들도 보고 숲속 달콤한 열매도 따먹으며 비탈길에 넘어져 다치기도 하면서 참 아스라한 고갯길도 넘어왔어 때론 고개에 맞닿은 말없는 하늘에 웬 고개가 이리도 많은지 망연히 묻기도 하였어 아직도 남은 고개 저문 해에 비춰보며 여우는 여우는 목숨처럼 지고 온 등짐 허탈하게 벗어 놓으며 이제는 가볍게 넘으리라 날마다 주문을 외며 가랑잎 수북한 고갯길을 오늘도 타박타박 걷고 있어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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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를 부르는 일은 결국 삶을 다시 부르는 일이다. 전정예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여우는 여우는』은 그렇게 오래 불러온 이름, 여우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시집이다. 어릴 적 “여우야 여우야”를 부르며 넘었던 고개들, 『여우야 여우야』와 『여우가 여우가』, 『여우랑 여우랑』을 지나온 여우의 길은 이 시집에서 한층 조용해지고, 한층 깊어진다. 끝날 듯 끝나지 않았던 고개 앞에서 시인은 다시 여우를 찾고, 그 그리움 자체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이 시집에서 여우는 더 이상 외로운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여우는 서로의 등을 비춰주는 존재,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닮은 얼굴로 서 있다. 「당신의 신화」와 「여우는 여우는」에서 시인은 젊음의 신화, 열망과 좌절, 책임과 사랑을 통과해온 삶의 전경을 담담히 펼쳐 보인다. 거창한 승리나 극적인 결말 대신, 남은 것은 서로의 발을 닦아주는 작은 손길, 오래 함께한 시간의 체온이다. 전정예 시인의 시는 여전히 자연에 기대어 인간을 바라본다. 달개비꽃, 겨울의 얼음과 모직코트, 시냇물, 나무, 꽃들은 이 시집에서도 말없이 삶의 태도를 가르친다. 떠나야 할 시간을 앞두고서도 시인은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단정하다. 크고 요란한 감정보다는 소리 없이 스미는 여운으로, 삶의 끝자락을 준비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