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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_이호철 작가의 꿈이 머문 자리
단편소설 불막 13 포 리프 클로버 43 복첩에 그려진 사람들 87 개소주 117 중편소설 붉은 밥상 149 항쟁의 꽃은 지지 않는다 241 손등이 다르다 323 좌표 140319 389 |
李浩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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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사고는 종종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목욕탕사업을 하는 강 사장 우편물이 잘못 배달된 것은 적어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황 선생의 210-9호와 강 사장 집의 210-6호는 숫자로 보면 뒤집어져 있다. 집 모양새로 보아도 사뭇 다른데도 배달착오가 생기곤 했다. 한 달에 두어 번 정도였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집배원이 바뀔 경우에는 한두 차례 더 생기는 정도였다. 황 선생이 여름이면 격주로, 겨울철엔 매주 목욕탕을 가면서 전해주는 터라 굳이 따진다면 배달사고까지는 아닌 셈이었다.
황 선생으로서는 어쩌다 궁금증이 일 때도 있었다. 상대적인 평균치란 것이 있게 마련이다. 류현진의 승률이나 추신수의 타율이 그렇고, 자동차 보유 대수와 교통사고율 같은 따위 말이다. 6호 우편물이 9호에 잘못 배달되는 만큼 비슷한 비율로 황 선생 편지가 강 사장 목욕탕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편물엔 목욕협회나 아들인 사각머리 이름으로 오는 과속 벌과금 통지서도 있었다. 꼬박꼬박 챙겨다 주어도 강 사장은 별로 달가워하지도 않았다. 수고비조로 혹시라도 기대할 공짜 목욕을 원천봉쇄하자는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반백의 스포츠형 머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쓰윽 문지를 따름이었다. 출산을 앞둔 산모처럼 그의 아랫배는 항상 불룩했다. 황 선생이 구독하는 문학지나 동아리 모임에서 보낸 뮤지컬 입장권 등이 구겨져 들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강 사장이 욕탕에 떠다니는 오물을 건져내기 위해 팬티바람에 뜰채를 들고 나타나면 참으로 구경거리였다. 부푼 뱃속에 편지도 몇 통 들어 있을 법했지만 꺼낼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황 선생은 단 한 통의 우편물도 전해 받지 못했던 것이다. --- 「불막」 중에서 “상병님, 저 왔어요. 희예요.” 망설임 없는 포옹은 깊고 길었다. 서로의 체온이 전해졌다. 강원도 산골의 해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일찍 넘어갔다. 부대 근처의 여관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만남을 위해 찾아온 면회객들로 가득했다. 몇 군데를 들러 겨우 방을 구했다. 그녀는 주인에게 냄비를 얻어 보려 했지만 이미 동이 나고 말았다. 경민은 부득이 위장포 벗긴 알 철모를 눈밭에서 여러 번 닦아냈다. 방마다 있는 아궁이의 연탄불 모서리에 돌멩이를 올려놓고 철모에 물을 끓여 몇 번 가셨다. 그녀는 국숫물을 안쳤다. 국수를 끓여 씻어 건져놓고 준비해 온 양념으로 멸치장국을 만들었다. 준비가 되자 국수가 담긴 철모를 베개 둘로 양쪽에 받혔다. 간을 보더니 손으로 면발을 돌돌 말아 경민의 입으로 가져왔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머니의 국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물방울은 국수 위에 뚝뚝 떨어져 간을 더해주었다. “상병님, 어머니를 위하고 공부 때문이라니 더 이상 말릴 도리가 없네요. 국수 먹으면 명줄이 길어진답니다. 꼭 살아 돌아오세요.” “희, 정말 고마워요. 둘 다 국수를 좋아하는 동면상련이군요.” “맞아요. 같은 병의 동병상련이 아니라 국수 면의 동면상련이에요. 호호.” 울다가 웃다가 젓가락이 서로의 입으로 오가는 바람에 시간은 길어졌다. 전등을 껐다. 손바닥만 한 이불 한 자락을 놓고 내주고 물러나느라 첫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눈은 붙이지 못했다. --- 「포 리프 클로버」 중에서 나는 스케치북을 접고 일어나 고향집이 있는 서쪽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산란한 마음에 심호흡을 해보았다. 나도 존스 박사처럼 냉정하게 판단하고, 보이는 실체만 과학이라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으로 보아도 여러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미군이 쿠퍼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아 유감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박 서방 아저씨가 할아버지에게 전한 말이 4B연필로 그린 크로키가 되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참말로, 어르신요. 내 말 한 번 들어 보이소. 군관 그눔아가 행군을 쪼끔 하디마는 부적이라 카면서 쿠뻐의 군번줄을 바로 지 모가지에다가 걸고서는 딸랑거리며 흔들어 쌌는데 못 봐 주겠데예. 그라고 윗저고리 주머니에 떡하니 만년필이 꼬?’는데 거기 내나 쿠뻐 꺼 아임니꺼. 그라고 쿠뻐는 가마솥도 질머졌는데 그따가 군관 그놈아가 지꺼 사물가방하고 바리깡 통까지 들게 했다 아임니꺼. 그기 말이나 되는 깁니꺼. 내, 참말로.” 할아버지는 박 서방 말을 잠시 붙들었다. “이보게. 자네 좋아하는 된장에 풋고추 찍어 막걸리부터 한잔하게나.” “어르신, 고맙심더.” “박 서방, 우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이 전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네.” “어르신, 못 다한 말을 한마디만 더 하겠심더.” “그래, 찬찬히 해보게나.” “또, 그기 말입니더. 중공군 한 놈도 우리 통역병 김 상병 군화를 뺏어 신었다 말입니더. 지 놈이 신던 다 떨어진 운동화는 통역병 한테 던져주고 말입니더. 그라고 더 웃기는기 김 상병 철모꺼정 뺏들어 지 놈이 떡하니 썼다 말입니더. 철모턱걸이 꺼정 떡 매고 말이지예. 내, 참말로.” 할아버지는 마지막 회고담을 남겼다. “평화시절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땅에 묻고, 전쟁시절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가슴에 묻는다.” --- 「붉은 밥상」 중에서 국희는 한우산 정상으로 향했다. 마침 바람이 내조마을 쪽에서 올라와 등을 밀어주었다. 정상에는 묵은 억새 사이로 연두색 새순이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철쭉이 바람에 마른 가지를 흔들며 군락을 이루었다. 꽃 입술이 붉은빛을 띄우기 시작했다. 후미진 자리를 찾았다. 조심스레 단단히 묶은 앞섶을 풀었다. 가슴사이에 묶여있던 비단주머니가 흘러내렸다. 주머니 열어 육혈포를 꺼내 드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심호흡을 하고 복주머니에 있던 실탄 하나를 꺼냈다. 구릿빛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총신을 꺾어 장전했다. 10걸음 정도 앞에 지팡이만 한 철쭉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육혈포를 양손으로 부여잡았지만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몸을 낮추고 총구에 묻은 화약연기를 마른풀에 문질러 닦았다. 자굴산에서 큰 바람이 한줄기 넘어왔다. --- 「항쟁의 꽃은 지지 않는다」 중에서 새벽에 일일이 손으로 젖을 짠 다음 데워서 살균처리를 한 후, 유리병에 담아 보급하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신문 보급소처럼 영세업자가 대부분이었다. 신문 일을 마치고 바로 산양유를 배달하니 시간은 맞아떨어졌다. 산양유의 무게도 신문 못지않았다. 고객의 대문에는 나름대로의 암호가 표시되었다. 손에 전해지는 온기가 가시기 전에 배달이 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옮겨야 했으므로 고단한 일과였다. 신문은 가장이 일을 하러 나가기 전에, 산양유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배달해야 하는 부담감이 컸다. 전날 배달되었던 산양유 빈 병을 모아 가져와야 했다. 가끔 손바닥을 펴보았다. 땀이나 손바닥에 적혀있던 영어 단어가 반쯤은 번져 지워져 있기도 하였다. 산양유의 수금은 신문에 비해 수월한 편이었다. 아마도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 따뜻하게 배달한 대가를 치루는 데 아까움이 없었던 모양이다. 산양유는 우유에 비해 고소한 맛이 진했다. 식으면 약간 생콩 맛이 나서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그렇다고 손쉽게 마시지는 못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라야 고객이 될 수가 있었다. 산양유는 진공포장이 아니라서 재고는 당일에 처분이 되어야 했다. 학민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몸이 아파도 쉴 수가 없었다. 한번은 장염을 며칠이나 앓았는데도 배달을 빼먹지 못했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신문도, 산양유도, 세상도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민호가 대비책을 세웠다. 친한 급우들에게 지원사격을 받기로 했다. 학민은 급우들에게 선임자를 따라 배달을 시작할 때처럼 순서대로 코스를 일러주었다. 누구네 개는 순하고 또 어떤 집은 안주인이 유별나서 조심하라고 대문에다 동그라미를 하나 더 치기도 했다. 감기몸살 정도야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학민은 또래의 친구로 아는 비상대기조 급우들의 마음만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손등이 다르다」 능선은 초토화되고 말았다. 초록색깔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적의 포위망이 흐트러졌다. 아군은 전열을 재정비할 틈을 찾았다. 화약 먼지를 털어내고 돌격 준비를 했다. 첨병은 여전히 서 병장이 맡았다. 적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고지는 슈바이처 모자를 닮은 무컹을 쓴 적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고지를 눈앞에 두었다. 몸을 도사리지 않고 나서던 서 병장이 적탄에 맞았다. 위생병이 압박 붕대로 지혈을 해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야! 서 병장 임마! 죽으면 안 돼. 나는 어떡하라고.” “내가 왜 죽어. 동치미 국수가 먹고 싶은데.” “이 사진이나, 내 철모 안에.” 단발머리의 여동생 사진이었다. 내 발목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들쳐 업었다. 임시로 만든 헬기장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그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참을 뛰는데 내 가슴께에 철썩대는 것이 있었다. 그의 뱃속에서 무엇인가 한 뼘이나 삐져나와 있었다. 흔들거리는 창자가 그새 말라붙고 있었다. “아아 서 병장! 이 일을 어찌하나.” 들것으로 옮겨져 헬기에 실린 그의 맨 발바닥에선 핏기가 가셨다. 시리도록 하얗게 보였다. 헬기가 뜨자 나는 서 병장이 쓰던 철모를 가슴에 안았다. 거수경례를 부쳤다. 헬기가 멀어져갔다. 포탄이 떨어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데도 엄폐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려움이 없어져 버렸다. 나는 자욱한 유황연기 속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가시지 않은 충격으로 한동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군의 희생이 따르고 난 뒤에야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적군이 황급하게 빠져나간 고지에 올랐다. 먹고 버린 C-레이션 깡통이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M-16소총의 탄피도 수북했다. 미군의 PX 표시가 선명한 맥주 깡통도 구석구석 나뒹굴고 있었다. 좌표 140319는 단순한 지구의 위도와 경도의 만남이 아니었다. 또한 지도에서 남북을 가르는 날줄과 동서를 가르는 씨줄의 만남도 아니었다. 참호에서 며칠을 거총자세로 엎드렸다 일어나면 흙 위에 자국으로 남아 있던 거푸집에 내 몸을 다시 태어나게 한 자리였다. 젊은 병사가 이데올로기를 만나 갈등하며 전장을 지켜보던 참호의 위치였다. 적군이 쓰던 빨간 별이 새겨진 피 묻은 슈바이처 모자를 하나 주웠다. 모자 옆면에는 빛바랜 성조기에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뒤집어보니 그물망 안에는 잡지에서 찢어낸 큰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인민 배우인지 한 여자의 미소가 소금기에 절어 있었다. C-레이션 커피봉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적들도 쏟아지는 잠에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서 병장이 남기고 간 철모를 보았다. 그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트모양 가운데 큐피드의 화살이 그려져 있었다. 옆으로 낙서가 이어졌다. ‘AK접근금지·불사조·조국아!’ 바르는 모기약이 위장포 끈에 꽂혀 있었다. 뒤집어보니 눈이 크고 생머리인 랑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얼룩진 웃음이 철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철모와 슈바이처 모자를 양손에 든 채로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참호를 파듯 구덩이를 팠다. 서 병장 철모와 내 철모를 묻었다. 전우를 잃은 슬픔도 같이 묻었다. 무심하게 들고 있던 슈바이처 모자도 던져 넣었다. 큰 돌을 굴려다 구덩이 흙을 눌렀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이 울리고 때늦은 스콜이 쏟아졌다. 돌 사이로 붉은 소낙비가 만든 황톳물이 스며들었다.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 「좌표 140319」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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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나는 참으로 늦깎이다. 공부도 그렇지만 사과밭 일도 그랬다. 소설등단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다 장편소설을 여러 권 출간하고 나서야 중단편을 묶어 소설집으로 선보여서 하는 소리다. 그렇지만 찬찬히 돌이켜보면 문학창작의 시작은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역설적으로 올깎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냉동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 보관 중인 많은 작품들이 해동을 기다리고 있으니 후회하지는 않는다. 또한 늦깎이라도 한 점 부끄러울 것도 없다. 문학을 따로 배운 적은 없었다. 자연이 스승이었다. 정미소 별채에 야학당을 열어 글과 인성을 가르치며 시조와 가사를 즐기시던 아버지의 가정학습이 있었다. 또한 일제 암흑기에 간호사를 지낸 어머니의 숨은 손길이 뻗쳤다. 독일의 라인리히 뵐의 노벨상 수상작인 『여인과 군상』을 탐독하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뵐의 방송극 『결산』과 희곡 『판돈』은 대화체를 선호하는 나의 문체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포늪이 가까워 자연을 벗 삼을 수 있었다. 그 무렵의 감성과 정서가 가슴을 적시며 삶의 전반을 관통하여 흘렀다. 고향에서는 우포늪을 ‘소벌’이라 불렀다. 소벌은 내 몸의 고향이자 마음의 안식처다. 어릴 때 소벌은 가보지 못한 바다였다. ‘소벌바다’에 한없이 펼쳐져 구름과 맞닿은 물길은 소년에게 꿈과 영감을 선사하였다. 또한 호기심과 모험심은 상상력의 확장으로 날개를 달아 정중동을 깨닫게 하는 오감을 호사시켜 주었다. 소벌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검은 안대를 두르고 나선 ‘허크파’의 뗏배 사이로 물안개와 함께 피어오르는 민물의 비린내마저도 싫지 않았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철새들이 비상하며 울부짖는 아우성은 자연이 불러주던 최초의 노래였다. 지는 해를 붙잡으려다 놓치고 등진 처연한 갈대와 물억새의 몸부림은 은빛 역광의 미학을 고스란히 가슴에 안겨주던 햇빛과 바람의 향연이었다. 가까이서 사물 보는 눈을 뜨게 하고 몸의 모든 감각을 흔들어 일깨웠다. 소벌 둑방에 앉아 자연에 귀를 기울이면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등 시린 달빛이 벗이었다. 이것들은 힘을 모아 허크파의 대장에게 글쓰기를 북돋아 주었다. 소벌은 문학 아동과 문학 소년에게는 첫 스승이었다. 중단편 소설집 『포 리프 클로버』를 묶으며 오랜만에 소벌을 찾았다. 오래전 개척해 둔 물둑에 올랐다. 개굴~개굴, 맹~꽁 맹~꽁, 꺼억 꺼억. 발자국 소리에 뒤죽박죽 리허설이 한순간에 뚝 멈췄다. 물옥잠 사이로 솟아난 가시연꽃이 내려다보이는 자운영 꽃밭에 자리를 잡고 숨을 죽였다. 석양이 조명처럼 잔잔한 붉은 물결을 만들었다. 물위를 스치든 잠자리 떼도 붉게 물들었다. 이때였다. 맹~ 꽁~ 맹꽁이 혼성 듀엣이 목청을 가다듬어 주고받았다. 이어 두꺼비도 나섰다. 꺼억 꺼억 따라서 귀에 익은 울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개굴~개굴~개굴 한 뼘 남은 해가 서러운 듯 합창단의 울음보가 봇물처럼 터졌다. 시샘하든 한줄기 바람이 물결을 흔들며 둑방으로 넘어갔다. 동행한 후배가 말했다. “행님요. 저번에 부탁드린 고향마을 재능기부는 준비해 왔습니꺼? “그래. 자, 네가 한번 읽어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