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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헌 옷 추적의 시작1부 헌 옷의 이동 경로추적기가 깜빡이기 시작했다‘쓰저씨’ 바지는 말레이, 신발은 볼리비아에서 신호가 왔다스웨터는 인도 북부로 갔다, 예외 없이무심코 버린 모직 코트 한 벌, 종이컵 912개 버린 것과 같다환상과 죄책감 사이에서2부 버려진 옷들의 무덤한국 옷은 인도에서 모두 재활용되고 있을까한국에서 버린 옷, 인도에서 불타다파니파트 헌 옷 재활용 산업이 품고 있는 아픔헌 옷 표백 화학폐수로 마을이 병들다3살배기 딸도, 20대 아버지도 ‘독성물질 옷 더미’에 무방비 노출우리가 타이로 향한 이유들개가 한국 옷 뜯는 타이 쓰레기 산그 아이의 ‘세상’차라리 한국에서 태우는 게 친환경적일 것3부 당신들의 비윤리죄책감은 수거함에, 우리가 처리할게패션 기업 수거함에 넣은 옷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됐다친환경 패션 마케팅, 소비자를 두 번 속인다옷을 사고 버리는 일과 누군가의 아픔4부 모두의 책임불태운 빈폴 새 옷 38억 원어치… 삼성물산 ‘검은 그린워싱’ 이미지가 환경오염보다 중요한가뒤에선 의류 소각, 앞에선 ‘친환경 의류’유럽은 2026년부터 재고 옷 폐기 못 해삼성물산 “과도한 생산 지양”, 엘에프 “재고 줄이기 노력”49조 의류산업, 환경과 공존하라!‘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의류는 왜 빠졌나재고 의류 헐값에 파느니 태우자?물리적으로 안 되면 화학적으로 풉니다기업 재고 소각 금지 등 정부 관리 필요옷 너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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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수거함에서 쓰레기 산까지한국에서 매년 버려지는 헌 옷은 공식 집계만 10만 톤이 넘는다. 하지만 수출되는 중고의류는 30만 톤. 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의류 폐기물 20만 톤이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다. 추적기를 단 헌 옷들은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타이, 볼리비아 등지로 흩어졌다. 대부분 중고의류 수입을 금지하는 나라들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헌 옷은 편법과 불법을 통해 그곳으로 흘러들어간다. ‘헌 옷의 수도’라 불리는 인도의 파니파트. 세계에서 하루에만 250톤의 옷이 몰려드는 이곳에서 한국 의류 브랜드 태그가 발견됐다. 불법 소각장에서 타고 있었다. 타이 아란야쁘라텟시의 쓰레기 매립지에서는 한글이 쓰인 태권도 가방과 군복이 발견됐다. 구더기가 들끓는 그곳에서, 세 살배기 아이가 쓰레기 더미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고 있었다. 볼리비아 오루로의 황무지에서는 소와 들개가 한국에서 온 옷을 물어뜯고 있었다. 필리핀 해변에서는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옷 더미를 토해냈다. 이것이 우리가 ‘재활용’이라 믿었던 것의 실체다.폭로: 그린워싱과 제도의 공백패스트패션 기업들은 매장에 의류 수거함을 설치하고 ‘지속가능성’을 말한다. H&M은 “수거된 의류의 92%가 재활용된다”고 홍보한다. 자라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다. 하지만 이들 매장 수거함에 넣은 옷도 결국 같은 경로를 밟았다. H&M 매장 수거함에 넣은 7벌 중 4벌이 우간다·세네갈·말레이시아로 이동했다. 자라 매장 수거함에 넣은 6벌 중 2벌은 튀니지에서 발견됐다. 동네 의류 수거함에 넣은 옷과 다를 바 없었다.‘친환경’은 마케팅 용어일 뿐이다. 소비자에게 죄책감 없이 더 많이 사게 만드는 전략. 친환경적이지 않은데도 환경 표시를 넣어 광고하는 것. 이를 ‘그린워싱’이라 한다. 소비자를 두 번 속이는 행위다. 프랑스는 2007년부터 의류 생산자에게 재활용 비용을 부담시키는 EPR 제도를 시행한다.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재고 의류 소각을 금지한다. 그럼 한국은? 환경부는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손을 놓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들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49조 원 규모의 의류산업이 환경을 파괴하며 이익을 내는 동안, 그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다.증언: 독성 폐수와 병든 마을추적기가 멈춘 곳, 인도 파니파트에 직접 가서 목격하는 건 헌 옷이 만드는 참상이다. 파니파트 남부 심라구지란 마을. 표백·염색 공장에서 흘러나온 독성 폐수가 하천을 검게 물들이고 있다. 14년째 혈액암을 앓는 샤르마는 물이 갑자기 더러워졌다고 증언한다. 마을 인구 4000명 중 400명이 오염된 물 때문에 중증 질환을 앓고 있다. 표백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보호 장비 없이 맨손으로 화학 용수를 다룬다. 호흡기 질환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약을 먹으며 일한다. 노동자 할림의 세 살배기 딸은 독성 물질이 가득한 옷 더미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닌다. 현장에 간 저자들도 두통과 발열을 겪었다.내가 평소에 입고 신다가 쉽게 버린 의류와 신발이 쓰레기 산을 더 높이 쌓고 있었다. 재활용 과정에서도 많은 화학물질이 그곳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매립지와 표백 공장에서 만난 아이의 눈망울이 질문을 던진다. 어른이 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을까.책임: 생산자도, 정부도, 우리도대량생산과 대량폐기 구조를 만들어놓고 ‘재활용’이라는 말로 면죄부를 얻으려 하는 ‘기업’,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의류 폐기물을 방치하는 ‘정부’, 안 입는 옷을 수거함에 넣으면서 막연한 기대로 죄책감을 더는 ‘소비자’. 이 삼중의 구조 속에서 책임은 나눠져 있고, 그래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티셔츠 한 장은 일회용 종이컵 306~337개를 쓰는 것과 같은 탄소를 배출한다. 겨울 코트 한 벌은 종이컵 912개다. 국내에서 연간 수출되는 폐의류 30만 톤 중 20%가 불법 폐기된다면, 소나무 1126만 그루가 필요하다.전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헌 옷 추적기》가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프랑스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로 2028년까지 중고 섬유 수거율을 60%로, 재활용률을 9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네덜란드는 2050년까지 모든 직물을 지속가능하게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화학연구원은 폐폴리에스터를 저온에서 분해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프랑스와 미국 기업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의류산업 종사자들도 변화를 원한다. 〈한겨레21〉과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77명 대상)에서 80%가 재고폐기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70%가 EPR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변화는 가능하다. 정부가 재고 소각을 금지하고, 기업에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고, 소비자가 덜 사고 오래 입는다면.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의류 수거함이라는 ‘블랙박스’ 너머를 들여다보는 것. 153개의 추적기는 그 시작일 뿐이다. 배우 김석훈은 추천사에 썼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기업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할지 깊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작가 이소연은 말했다. “어쩌면 이 추적이 모든 것을 바꾸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버린 옷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이제 그 답을 안다. 《헌 옷 추적기》는 이어서 묻는다. “그 옷이 누군가를 병들게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그 답을 찾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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