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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의 섬, 솔로몬 군도
2. 산호해 해전과 뉴우기니 전투 3. 미드웨이 해전과 헨더슨 소령 4. 미군 상륙 5. 일루 강 전투 6. 과달카날 항공전 7. 피의 능선 8. 마타니코 9. 제3차 공격 10. 산타크루즈 해전 11. 퇴각 12. 부겐빌 상공의 공작새 13. 승자와 패자 14. 53년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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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더슨 비행장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해병대는 비행장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여 비행장의 동쪽 방어선은 제1 해병 연대가 맡고 서쪽 방어선은 제5 해병 연대가 맡아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북쪽은 바다이므로 소규모의 병력으로도 경계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남쪽이었다.
비행장의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일루 강과 룽가 강이 흐르고 있어 천연적인 방어선이 될 수 있지만 남쪽은 방어선의 길이가 9km로서 길고 정글로 덮여 있으며 기복이 심한 산으로 되어 있어 방허하는데 대규모 병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이 남쪽 방어에 투입할 병력은 여유가 없어 중요한 지점에만 병력을 배치하고 적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60mm, 81mm 박격포와 75mm 곡사포를 배치하였다. 한편 과달카날에 상륙한 미 해병대가 사보 해전 이후 섬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라바울의 제17군 사령관 햐쿠다케 중장은 이 섬에서 미 해병대를 분쇄하고 과달카날을 다시 찾기 위해 제7 사단의 제28 연대에 배속된 병력 2,000명을 즉시 과달카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 때까지도 제17군은 과달카날에 상륙한 미군 병력을 2,000명 이하로 과소평가하고, 미군은 겁이 많으므로 일본군의 그림자만 보아도 도망칠 것이므로 용맹한 일본 제국의 병사 2,000명을 보내면 쉽게 승리할 것으로 믿었다. 과달카날을 되찾으려는 이 작전은 '가 작전'으로 명명되었고 햐쿠다케 중장은 일본군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앞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군이 미드웨이 공략 때 상륙 부대로서 미드웨이 환초 안에 있는 샌드 섬과 이스턴 섬에 상륙하기 위해 일본 해군 육전대 2,800명과 육군 3,000명을 이끌고 수송선 위에서 대기하다가 미드웨이 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상륙도 해 보지 못하고 수송선에 탄 채로 퇴각하게 된 이치기 대좌를 기억할 것이다. 이치기 대좌가 지휘하는 부대는 미드웨이 해전이 끝난 다음 괌 섬으로 가서 전쟁 초기에 탈취했던 미군 병사(兵舍)에서 두 달 동안 대기하고 있다가 일본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수송선 보스톤 마루와 다이후쿠 마루(大福丸) 두 척에 2,000명의 병사가 분승하여 귀환하던 중에 8월7일 괌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고 그 날 오후 반전하여 다시 괌으로 항진하였다. 8월7일이라면 미군이 과달카날에 상륙한 날이다. 그러나 이 날 이치기 지대에 떨어진 명령의 목적지는 과달카날이 아니라 당시 전투가 치열해 져 가고 있는 동부 뉴우기니였다. 솔로몬 군도와 뉴우기니는 지역적으로 가깝고 또 일본으로서는 이 두 곳을 모두 점령하여 미국과 호주와의 연락선을 차단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실 뉴우기니 전투와 솔로몬 군도 전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 pp.233-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