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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역사 속의 의사면허제도
1. 의사와 의사면허제도 | 2. 세계사 속의 의사면허제도 | 3. 조선시대의 의과 시험과 의사면허제도 제2장 근대 초기(1880년대~1910년)의 의사면허제도 1. “최초의 면허의사” 우두의사, 그리고 종두의양성소 | 2. 의학교와 의술개업면허장 | 3. 〈의사규칙(醫士規則)〉과 의사면허제도 제3장 일제강점기의 의사면허제도 1. 조선총독부의 〈의사규칙(醫師規則)〉 제정과 식민지적 의사면허제도의 시행 | 2. 의사 이외의 의료인면허제도 제4장 대한민국의 의사면허제도와 의사국가시험 1. 교육제도의 개선, 그리고 미 군정청 및 대한민국 정부의 의사면허 관리 | 2. 의사검정시험의 지속 | 3. 〈국민의료법〉 제정과 “2원적 의사면허제도”의 수립 | 4. 의사국가시험제도의 도입과 시행 | 5. 의사국가시험응시자격검정시험 설치와 시행 | 6. 〈의료법〉 제정: 국민의료법의 전면 개정 | 7. 한국의사국가시험원 설립과 의사국가시험의 민간 관리 |
黃尙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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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제도가 없던 전통시대에는 누구든지 의사를 자처·자임하고 의료시장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의료시장에서 성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장에 뛰어드는 데에도 낮지 않은 진입 장벽이 있었을 터이다. 민간 의료시장 역시 의과 시험과 관직을 독점했던 몇몇 성관, 그 가운데에서도 소수의 집안이 월등한 인적·지적·물적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장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관련 자료들을 발굴하여 구체적으로 실증할 과제이다.
--- p.91 「제1장 역사 속의 의사면허제도」 중에서 1899년에 설립된 “의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정규 의학교육기관이다. (중략) 정부는 1880년대부터 근대식 의사를 양성할 계획을 세웠으며, 실제로 제중원에 학당을 설치하고 학생들을 선발하여 교육을 시행했지만 의사를 배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 뒤에도 정부는 근대식 의사를 교육할 의학교 설립을 추진했지만 정치적·외교적·경제적 사정 등으로 실현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1899년 민중들의 열망에 힘입어 의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요컨대 의학교 설립은 당시 20여 년에 이르는 근대의료 도입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쾌거였다. --- p.139 「제2장 근대 초기(1880년대~1910년)의 의사면허제도」 중에서 1913년 11월 15일 조선총독부는 「의사규칙」(조선총독부령 100호), 「치과의사규칙」(101호), 「의생규칙」(102호), 「공의규칙」(103호) 등을 제정하고 이듬해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공포했다. 이 법령들에서는 일본 본토와 마찬가지로 의사(醫師), 치과의사(齒科醫師)의 자격을 근대 서양식 교육을 받은 경우로 제한했다. 한편, 전통의술을 폐기하지는 않고 시술자의 호칭을 의사가 아닌 의생(醫生)으로 격하하여 유지하기로 했다. --- p.217 「제3장 일제강점기의 의사면허제도」 중에서 일제시대에 대학은 고등학교 졸업자들만 진학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유일한 대학인 경성제국대학에는 예과가 설치되어 있었다. 경성제대 “예과”는 오늘날의 “의예과”, “치의예과”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요컨대 예과는 대학 “본과”에 진학하기 위한 대학 내의 고등학교였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보편적인 방법 대신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설치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예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1926년부터 의학부, 법학부 등 본과 과정에 진학했다. --- p.281 「제4장 대한민국의 의사면허제도와 의사국가시험」 중에서 의학교육에는 본과 과정에 앞서 예비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1948년부터 의과대학들에 의예과가 설치되었다. 이로써 2년+4년의 의과대학 교육과정이 확립되었다. (중략) 더불어 1951년 「국민의료법」에 의사의 자격을 “의학을 전공하는 대학을 졸업한 자나 주무부장관이 시행하는 검정시험에 의하여 전기 학교를 졸업한 자와 동등의 학력이 있다는 인정을 받은 자로서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자”로 명기함으로써 의사검정시험만 통과한 사람들에게도 의사면허를 부여했던 일제강점기 이래의 조치를 폐기하여 의사의 질적 수준을 제고할 수 있었다. --- p.281 「제4장 대한민국의 의사면허제도와 의사국가시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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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어떻게 ‘의사’를 만들었는가
한국에서 ‘의사’는 언제부터 면허를 통해 정의되었을까. 관립 의학교, 제국대학 의학부, 의학전문학교 출신자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의사가 되었을까. 일제강점기의 ‘고시의사’, 해방 이후의 국가시험, 1970년대의 ‘한지의사’는 제도 속에서 어떻게 위치 지어졌을까. 저자는 이 질문들이 놀라울 만큼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2022년 1월 3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설립 30주년 학술대회를 준비하던 국시원 이윤성 원장은 저자에게 ‘우리나라 의사면허와 국가시험의 역사’를 주제로 한 기조 강연을 요청했다. 이 요청은 저자가 그간 흩어져 있던 문제의식과 자료를 정리해, 의사면허제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수십 년간 모아 온 사료를 재정리하고, 부족한 자료를 새로 발굴하며 근대 이후 한국 의사면허제도의 형성과 변천을 치밀하게 복원한다. 이 책은 단순한 제도 연대기가 아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왜’ 의사가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의료와 국가, 전문직과 시민사회의 긴장 관계를 드러낸다. 의사면허의 핵심은 공공성이다 저자는 의사면허제도의 본질을 ‘공공성’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수렴시킨다. 근대 국가가 의사에게 면허를 부여하고 교육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는 이유는, 의료가 사적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을 유지·증진하는 공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인식은 루돌프 피르호의 사회의학, 그리고 19세기 영국의 1858년 의료법으로 이어지는 국제적 흐름 속에서 정교하게 위치 지어진다. 의사는 생계형 기술자가 아니라, 질병에 취약한 이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관점이 이 책의 이론적 중심축을 이룬다. 진실한 의료사를 쓰는 책임 저자는 역사 서술이 결코 중립적이거나 가벼운 작업이 아님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특히 의사면허와 같은 제도사는 현재의 의료 현실과 직결되기에, 부정확한 서술은 곧 사회적 왜곡으로 이어진다. 헨리 시거리스트의 경고처럼,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역사, 선전 목적의 역사, 비판을 거부하는 역사는 파괴적이다. 이 책은 의사면허의 형성과 운영을 둘러싸고 관행처럼 반복되어 온 설명과 해석을 사료에 근거해 재검토하며, 근거 제시와 공개적 토론에 스스로를 열어 둔다. 이는 학자로서의 태도이자, 의사로서의 윤리이다. 질병에서 제도로, 개인에서 사회로 전작 『한국인 암의 역사』가 “왜 우리는 암을 보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이번 신간 『한국 의사면허제도의 역사』는 “우리는 어떤 의사를 만들어 왔는가”를 묻는다. 질병의 역사에서 출발해 제도의 역사로 나아간 저자의 사유는, 한국 의료사를 의학 ·사회·정치가 교차하는 인간사의 장으로 확장한다. 의사이자 연구자로서, 저자는 한국 의료사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신간은 그 질문이 도달한 또 하나의 좌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