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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마지막에 대하여사슴이 달린다잔월(殘月)하루우화저녁의 푸른 유리모시는 글바위나리돌나리푸른 달 아래이취(泥醉)제2부봄없는 이야기해와 물고기쏘가리, 호랑이청어족두리 도적무릉(武陵)에서콧등바위, 쏘가리와 나와맹랑천렵도(孟浪川獵圖)제3부겨울밤밤나무집 가계(家系)근황그때가 옛날강원리발관별들의 고향복숭아나무 아래삽삭코수미산 엘레지소설(小雪)풀산업전사위령탑아이고제4부오버런아이슬란드3축 내린다대전으로 간다안진터널 지나가다수리와 닭일죽휴게소심장을 데리고빵꾸를 때운다용치는 남자어떤 법제5부목련 한 대가리묵계양배추에 대한 몽상잊거나 잊히거나49무엇으로 사는가석유가 나온다햇까이해설|황규관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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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政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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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속의 범’을 찾는 예리한 시선과 저릿한 상상력얼룩 같은 삶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시인의 등장이정훈의 시는 힘차다. “저 물 밖 인간의 나라를 파묻어버”(「쏘가리, 호랑이」)리는 대자연의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고향의 산과 강을 넘고 건너 “시인의 영혼에 아로새겨진 지난 시간의 무늬들”(황규관, 해설)은 애잔한 감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더듬어가는 시인에게 시는 귀향과도 같다. 그러나 단지 회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49」)을 돌이키며 현재의 자신을 과거의 시간으로 이끌어간다. 끊일 듯 끊일 듯 이어지는 흐릿한 풍경 속에서 시인은 “세상의 얼룩 한점”(「푸른 달 아래」) 같은 자신의 삶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비로소 “좌향(坐向) 한번 틀지 않고 수십대를 버티는 일가붙이들”(「쏘가리, 호랑이」)의 가족사를 깨닫는다.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좌절과 패배의 끈질긴 족보”라 말한 바 있다.) 이정훈 시인은 화물 트레일러 운전기사, 노동자다. 4부에 실린 시들은 “깜깜한 시간 속을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양배추에 대한 몽상」) 떠도는 노동 현장에서 길어올린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 현실을 격정적으로 비판하거나 목소리를 드높이는 노동시의 모습은 아니다. 황규관은 해설에서 “아직 사회적 노동 현실과 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시인은 오히려 섣부른 노동시를 경계하는 듯하다. 시인은 다만 생업인 운전 경험에서 우러나온 시들에서 “비눗방울 부푸는 것도 꿈이라 여기던 시절”(「빵꾸를 때운다」)을 되새기며 노동하는 삶의 단면과 노동자들의 일상을 섬세한 관찰력과 핍진한 묘사와 비유로써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인은 노동자들이 삶에 지칠수록 희망을 잃지 않고 “바닥이 바닥을 밀어 빛과 어둠이 교대하는 곳”(「아이슬란드」)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이정훈의 시에는 자기 목소리가 뚜렷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등단하여 이제 첫 시집을 펴내는 신인이지만 신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삼백만 킬로미터를 지나”(「일죽 휴게소」)온 삶의 연륜에서 배어나오는 원숙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시상을 전개해나가는 힘이 넘치며,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도 공력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요즘의 젊은 시와는 결이 확실히 다르다. “좋은 것을 찾아 더 멀리 헤매는 사람의 운명”(「마지막에 대하여」)인 듯 시인이 된 화물차 운전사, 그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저녁이 되면 온몸 가득 불을 밝힌”(「용치는 남자」) 한마리 ‘용’을 끌고 달리는 국도 위에서 또 어떤 시가 탄생할지 자못 기대된다. 이정훈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질의: 편집자)-2013년 한국일보 등단 후 출간하는 첫 시집입니다.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삼십대 후반에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햇수로 십오년이 다 되어갑니다. 중견은 못되었고 중년은 되었습니다. 그래도 머리 한번 쓸어줍니다. 한 계절을 책으로 소일하며 유폐되는 꿈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빌려 실현될 줄 몰랐습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죽음의 한 연구』를 다시 읽는 『데카메론』이 오래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등단 당시 화물차 운전사라는 이력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길 위의 노동자’로서 시를 쓰는 일은 어떤지 궁금합니다.한평쯤 되는 공간에 앉아 핸들 한개와 페달 세개를 밀고 당기면 살게 됩니다. 둥근 핸들은 무엇을 올려놓느냐에 따라 식탁도 되고 책상도 됩니다. 몸과 의식이 생계 쪽으로, 혹은 반대쪽으로 돌아갈 때마다 바깥은 달라집니다. 이 편차 속에서 시의 연료는 무한정 타오릅니다. 운전하길 잘했다 생각합니다. -첫 시집을 엮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나 특징은 무엇인가요?줄 것은 주고, 받을 것 받자는 자본주의적 원리에 충실했습니다. 산과 강물, 짐승, 물고기, 그리고 사람들에게 진 빚을 이제야 갚습니다. 그들은 동료였고 부모형제, 애인이었으며 한 시대였습니다. 원수 갚듯 쓰기도 했고 제사상의 축문, 장례식의 기도였으며 말문이 터지지 않은 아이의 재잘거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받을 것을 미리 받았으니, 드디어 탕감입니다. 모호한 몇구절을 약간의 이자로 얹어둡니다. 어디로 가든, 그 무엇도 저를 붙잡을 수 없을 겁니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쏘가리, 호랑이」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증이 교차합니다. 제 손으로 옮겼으니 제 작품이라고 말해야겠지만 세계를 한줄로 움켜쥐지도, 도끼로 후려 패듯 쓰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굶주린 사람이 그렇듯 입안의 것을 뱉지 않으려 애쓴 기억은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갈대의 유일한 계획은 흔들리는 것입니다. ‘획’이라는 글자는 ‘휙’이나 ‘확’과 닮았지만 몹시 매몰차 보입니다. 계획 같은 걸 따로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끝없이 기대하고 동경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손발과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다 잊은 것처럼, 한층 치열하게 무계획적으로 살겠습니다.시인의 말안개 짙은 날, 병창 앞을 걸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들어본 적도 없고 믿기지도 않는 광경. 먹이 주는 인부를 따라다니는, 양식장 송어떼를 내려다보는 줄 알았다. 모두 쏘가리였다. 그들은 낮에 나오는 법이 없다. 떼 지어 몰려다니지도 않는다. 사냥꾼은 희미한 태양 빛에 의지해 바위굴 속, 반짝이는 눈동자를 포착하려 애쓸 뿐. 그날은 쏘가리를 찾느라 숨이 차는 게 아니라 어느 놈부터 찔러야 할까, 고르다 숨이 닳았다.(…)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말을 걸지도, 손을 잡아당기지도 않지만 처음과 끝을 응시하는 투명하고 차가운 눈. 주변은 온통 희끄무레한 진이었다. 비늘에서 묻어나와 물속으로 번져가는 맑고 미끈미끈한 진액. 그건 한숨이나 눈물 같은 게 아니었다. 해독하지 못하는 물의 기록, 그리고 물고기족(族)의 말. 나는 마을을 불 질러 한 부족을 도륙한 심정이 되었다.오래 숨을 참으면 가슴이 터져나갈 지경이 된다. 세포마다 입이 생겨 숨 쉬어라, 공기를 들이마셔라, 아우성친다. 물고기는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땐 물 한번 꿀꺽 삼킨다. 한모금 더 들이마시면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릴 것 같다. 돌아나오지 못할 게 분명한 깊고 캄캄하고 세찬 구멍. 원고를 들여다보는 눈은 지금도 내 몸에 속해 있지 않다. 오래전의 물결 속을 흐느적대며 하류로 흘러가는 유령, 유령들. 그들이 속삭인다.―황금물고기를 삼켰으니, 이제 가시를 뱉겠구나.2020년 3월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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