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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피해자의 ‘그 뒤’를 이야기하는 대화 프로그램‘잊을 수 없어서’ 괴롭다자신의 가해행위를 과소평가하는 가해자가해자는 피해자를 모른다가해자 임상 현장도 사회도 피해자를 모른다피해자의 ‘그 뒤’를 이야기하는 대화 프로그램피해자와 가해자가 보내는 시간의 차이피해자의 ‘그 뒤’는 언제까지나 계속된다가해자가 짊어져야 할 세 가지 책임피해자에게 엄습하는 ‘기념일 반응’피해자와 가해자에게 일어나는 공통 현상피해자도 가해자를 알게 된다자신이 한 짓과 대면하지 못하는 가해자언제까지 도망치면 되는 건가대화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는 장소가 있다회복이 혼자서는 불가능한 이유가해자에게도 ‘해리’가 있는가?피해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다2장 성 가해를 자기 언어로 말하는 어려움당신의 ‘나약한 소리’가 동료들에게는 힘이 된다말하지 않고 숨죽이는 가해자자신을 속일 수 없는 ‘글쓰기’가해자도 가해자를 모른다성 가해에 경중이 있는가기껏해야 불법 촬영일 뿐?피해에 우열을 매기는 데 의미는 없다피해자도 피해를 상대화한다3장 ‘인지 왜곡’을 이해하기 위해강간 신화는 누가 만드는가답을 구하는 쪽은 언제나 피해자자신이야말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가해자가해자 사이의 서로 닮은 인지 왜곡사람을 대상화하는 자동 사고사람으로 취급되지 못했던 경험이 물건 취급을 낳는다‘남자다움’을 강요당하다자신들의 트라우마를 깨닫지 못하는 가해자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는 고립된다SOS를 보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 행동으로 이어진다낮은 자존감, 높은 자존심승인 욕구는 왜 성 가해로 이어지는가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선택지를 착각한다피해는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가치가 있다는 건강한 사고여성을 부러워하는 심리여성을 질투하면서도 멸시하는 ‘약자 남성’여성에게 당연히 인기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게 만드는 사회4장 성폭력 가해자가 된 그대여, 쉽게 용서받으리라 생각지 마라사죄라는 퍼포먼스용서받을 것을 전제로 하는 오만함용서한다, 용서하지 않는다가해자에게는 회복을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편지라는 대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회복의 형태는 한 가지가 아니다피해자로 살아가는 괴로움 가해자로 살아가는 안전함 대담 니노미야 사오리×사이토 아키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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齊藤章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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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성-남성성-인간성 가해자 존재 양식을 해부하기사이토와 니노미야가 고심한 질문은 이렇다. ‘왜 가해 기억은 망각되고, 피해 기억은 지속될까.’ ‘왜 성을 이용한 폭력이어야만 했을까.’ ‘앞으로의 인생, 가해자인 채로 살아가도 괜찮은가.’ 특정 대답을 유도하지 않고, 진솔하게 답할 것을 요청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지껄여 가해를 반복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가해자 중에는 오히려 그럴싸한 모범 답안을 써내버리고 답을 찾는 지난한 과정을 일축하는 사람이 많다. 또는 이른바 ‘달걀귀신 현상’이 관찰된다. 니노미야가 말을 마치면, 가해자들의 표정이 일시에 삭제된다. 그들은 사건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해행위와 죄로부터 도망쳐왔다. 그렇기에 이 대화는 그들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직시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책임의 생성』 저자이자 당사자 연구자인 고쿠분 고이치로, 구마가야 신이치로는 “과거와 단절하는 의지보다 과거에서 지금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스스로 끌어안으며 살겠다고 각오할 때 책임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즉 그 자신을 과거 행적으로부터 유리시키지 않으며 범행의 잔인한 여파마저 감당할 때 책임이 모색된다. 니노미야는 온몸으로 과거와 현재가 한순간도 끊어진 적 없음을 증명한다. 트라우마에 의한 자해 상흔을 가리지 않은 몸, 여전히 불시에 찾아오는 해리성 장애로 상처 입은 몸이다. 가해자들은 그녀에게서 그들이 과거에 두고 온 피해자의 그림자를 본다. 과거 앞에 달걀귀신처럼 표정을 지우며 도망치던 이들에게 니노미야의 존재는 거부하지도 못하고 부정할 수도 없게끔 들이닥친다.에노모토클리닉에서 집중하는 과제는 재범 방지다. 공공장소에서의 성행위, 여성 신체 불법 촬영 등을 거듭하는 행위는 알코올이나 도박에 중독된 의존증 장애와 유사한 점이 있다. 사이토는 의존증 치료 모델을 심화한 행동 치료를 적용해, 기술적 관점에서 가해자로 하여금 의존증 행위를 유발하는 위험 요인 및 트리거를 스스로 감지하고 그에 걸맞은 대처법을 익혀나가도록 학습시킨다. 다만 그는 이것만으로 충분할지 의심하며, 피해자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알려들지도 않는 가해자가 자기 행위를 바로 인지한 뒤 대처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설령 그리한다 한들 기술적인 대처 능력을 습득하는 것과 성 가해를 저지르던 그때로부터 진정 변화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여기서도 대화의 과제가 설정된다. 대화는 가해자성과 얽혀 있는 남성성, 그 아래의 인간성까지 파고드는 일이 되어야만 한다. 즉 가해자성-남성성-인간성의 변증법을 파헤치고 자기 서사와 자기 이론을 다시 정립할 필요다. 그렇게 해야지만 ‘앞으로의 인생, 가해자인 채로 살아도 괜찮’냐는 니노미야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타자를 모욕하고 공격하는 가해자성은 왜곡된 인지에서 비롯한다. 가해자 임상 현장에서 인지 왜곡이 얼마나 불가해하고 교묘하며 강력한지를 통감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많은 가해자는 ‘원래 나야말로 피해자’라고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프로그램에서는 ‘자기 대화’로써 반복되는 대표적인 인지 왜곡을 스스로 검증하고 깨부수는 훈련을 시킨다. 하지만 가해행위를 정당화해온 기제를 깨트리는 일은, 자기 대화를 수차 거듭해도 불현듯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튀어나오는 패턴을 그린다. 이에 더해 가해자는 습관적으로 여성성을 시기하면서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교활한 여자’ ‘얼굴이 예쁘거나, 남자를 내세우고 집에 들어앉으면 되는 여자’ ‘힘쓰는 일은 피하고 편한 일만 골라 하는 여자’ 등, 여성관이 드러나는 대목에서 그들이 공유하는 비뚤어진 남성성이 돌출한다. 성 가해를 저지른 이들 중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기에, 그들이 타깃으로 삼은 대상이 여성인 이유를 밝히는 일은 가해의 조건을 탐색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사이토와 니노미야는 거북할 만큼 적나라한 가해자성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타인을 굴종시킴으로써 쾌감을 취하는 행위의 기저를 더듬는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마주치는 것은 취약한 인간성이다. 자기 트라우마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인정받고 승인받고 싶다는 욕망을 기형으로 키운 인간성이다. 외부로부터 충족되지 않은 열망이 변질되고 누적된 인간은 타인을 해치는 식으로 자기를 추켜세운다. 참가자들은 질문에 답하면서 마침내 자기 서사와 이론을 언어화하고 그 자신을 정직하게 고백한다. 추잡하고 비틀어진 인간성일지언정 존재의 핵을 끄집어내 갈고닦아야만 가해를 저지르지 않고도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성폭력 가해를 저지른 당신쉽게 용서받으리라 생각지 마라내 행위를 낱낱이, 빠짐없이, 끈질기게 참회하기란 굳이 성 가해자에게 이입하지 않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명백한 피해 앞에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가해행위의 죗값을 떠안으며 사는 것이다. 다만 분명히 할 점은 참회한다 해도 용서가 응당한 보상처럼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죄와 용서는 한 묶음이 아니며, 세상에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사이토는 성폭력은 틀림없이 후자에 속한다고 못 박는다. 용서받고 싶다는 마음 역시 그 기원을 탐색해야 마땅하다. 니노미야가 단호히 말하길 용서는 끝이 아니며, 가해자가 할 일은 “교정이 아니라, 갱생”이다. 다시 말해 가해행위를 반복해온 인격, 낮은 자존감과 높은 자존심을 휘두르고 폭력적인 승인 욕구를 강요하던 인격을 바꿔야 한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은 니노미야에게 보낸 답신에서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고 썼다. 이때의 행복은 자신이 한 일을 없었던 셈 치고 그 뒤의 인생을 즐기겠다는 뜻이 아니다. 가해행위를 통해 만족을 꾀하던 자신으로는 본질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없기에,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다시 익히고 자긍심을 되돌리겠다는 결심이다.가해자가 인격을 다시 쓸 수 있을까, 이로써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간단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화가 불가피한 세계에 살고 있음은 자명하다. 우리는 가해자를 단죄하겠다고 칼을 휘두를 수 없고, 성인을 자처해 대속할 수도 없다. 피해-가해의 도식에 연루된 우리는 계속 갈등해야 하며, 책임을 평생 짊어진다는 함의를 가죽을 씹어서 연하게 만들 때처럼 숙고해야 한다. 다만, 취약한 우리 인간에게 희망이랄 게 있다면, 언어로써 구조를 희구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존재를 조정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니노미야와 사이토가 열어젖힌 영역은 시도와 실패의 땅이다. 그 지대는 더 많은 시도와 실패로 넓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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