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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4
1. 흐르는 영산강물처럼 -11 2. 노부부의 영산강 사랑 -27 3. 1957년 김현승 시인을만나다 -51 4. 커피를 마시는 이유 -69 5. 영산강에서 생오지를 그리며 -91 6. 20년만에 만난 5.18시민군 -105 7. 오늘도 영산강을 건너며 -119 8. 홍어향기와 커피향 -135 9. 가야산에서 영산강을 굽어보다 -145 10. 검은 눈물을마시다 -167 11. 손자와 함께 영산강을 걷다 -181 12. 행복한 커피여행 -195 13. 바람따라 매화 향기 따라 -205 14. 큰스승 어머니 -219 15.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225 16.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245 17. 커피 맛, 100人 100味 -259 18. 인생의맛,쓴 맛뒤에 숨은 단맛 -275 19. 자식들에게 추억을 내려주다 -289 20. 섞임의 미학, 블랜딩 -301 21. “커피는 아직내게 너무 써요” -313 22. 영산강은 지금도 울고있다 -323 |
文淳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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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나는 2023년에 84세 노구를 이끌고 무등에서 영산강으로 마지막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 유년 시절 무등의 남쪽을 바라보며 자랐고, 11세에 6.25를 만나 광주로 나온 후부터는 무등의 북쪽 서석대를 보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이렇듯 80 평생 무등을 맴돌며 살아온 내가 졸작 『타오르는 강』의 무대인 영산강을 따라 나주에 안착하게 된 것이다. 영산강 발원지인 담양이 나의 태생적 고향이라면 영산강 중심부인 나주는 졸작 『타오르는 강』(전 9권)의 고향이다. 돌이켜보니 대학에서 정년을 마친 2006년, 내 인생의 마지막 둥지로 생각했던 무등산 뒷자락 생오지에서의 18년 삶은 자연과 더불어 행복했다. 작은 코딱지꽃을 통해 우주를 볼 수 있었던, 온전한 사운드스케이프 세상이었다. 그곳에서 도시의 치열한 경쟁적 삶으로 인해, 무감각하게 굳어버린 유채색의 감성을 회복 할 수 있었고 흥건하게 젖어온 그 감성으로 다시 시를 쓸 수 있었다. 이제 영산강은 내 인생에 또 하나의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날마다 내 인생의 종착역인 영산강을 바라보고 강과 함께 거닐면서 무한한 생명의 환희를 느낀다. 지금 영산강은 노쇠해진 내 영혼에 뜨거운 불을 지펴 마지막 삶을 불태우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주 영산강에서 광주의 무등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영산강을 바라보며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커피를 내려 마셨다. 푸른 영산강을 눈에 넣고 노부부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면 짜릿한 행복감에 젖는다. 커피는 내 삶의 최애 기호품이다. 나는 커피의 단맛보다는 인생의 맛처럼 시고 쓴맛 을 즐긴다. 커피의 쓴맛은 삶에 지쳐있는 내 영혼에 불을 지펴주는 부스터 역할을 해준다. 나의 커피 사랑은 고교 시절에 다형 김현승 시인으로부터 이어받았고 그 후 지금까지 그 오묘한 향기에 흠씬 젖어 살고 있다. 시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스승 다형 김현승 시인은 커피로 원초적인 고독을 이겨냈다. 그 때문에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에 젖는다. 나는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는 커피를 두루 섭렵한 끝에 안띠구아만을 선택하여 즐기고 있다. 나는 과테말라 옛 수도 안띠구아는 화산지역에 있어 커피에서 독특한 향기, 즉 냇내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과테말라는 군부독재 시절 커피 농민들이 대량 학살당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검은 눈물을 마실 때마다, 억울하게 죽은 커피농부들의 원혼을 생각한다. 소설 『영산강 칸타타』는 커피와 영산강이 만나는 이야기다. 2년전 모 잡지에 〈내 인생의 커피 이야기〉를 연재했는데, 이 내용을 바탕으로 나의 영산강 삶을 접목시킨 것이다. 늙은 글쟁이를 통해 커피와 영산강의 운명적 만남이랄까. 영산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늙은이의 80여 성상 굴곡진 인생을 압축한 내용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유서 대신 세상 사람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라고나 할까. 이 작품은 시와 에세이가 포함된 장르파괴 자전적 소설이다. 1939년 무등산 뒷자락 담양 가사문학면에서 태어나 6.25를 겪었고, 공비토벌작전지역이라는 이유로 마을이 깡그리 불태워진 후 에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 떠돌음하며 살아온 어두웠던 시절이며, 시를 쓰다가 소설가의 길을 택하여 살아온 굴곡진 내 삶의 이야기가 오롯하게 담겨있다. 나는 기자 생활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중첩된 구조적인 모순을 인식하기에 이르렀으며, 5.18광주항쟁 때 분노와 슬픔으로 얼룩진 채 반체제 기자라는 덫에 씌워 해직이 된 사연이며, 무등산을 떠나 인생의 마지막 정류장으로 영산강을 선택한 연유도 포함되어 있다.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주신 김현승 선생님은 1975년 세상을 뜨기 전 나에게 “소설을 시처럼 쓰라”고 하셨고 나를 소설가로 이끌어주신 김동리 선생님은 81세로 돌아가시던 해에 “소설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은데 더 이상 쓸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하시면서, “죽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아야 작가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두 분의 이 같은 당부를 가슴에 무겁게 새기면서 이 작품을 썼다. 이제 나는 몸도 마음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비틀거려서 더 갈 곳이 없다. 내 삶의 마지막 정류장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순간에서 순간으로 점철되는 것만 같다. 슬픔도 분노도 행복했던 기억도 불꽃같은 삶의 흔적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높고 낮음 없이 수평 세상을 이루며 영원히 흐르는 영산강을 바라보며 깨달은 것은, 흐르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물은 흐르고 흘러 계절 따라 아름다운 꽃을피우고 푸른 숲을 가꾸고 있지 않는가. 2026년 새해 첫날 영산강에서 무등을 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