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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말
>해방을 위하여 트루먼 쇼 _ 유목민처럼 떠나라 슈렉 _ 보이는 것 너머를 보라 집으로... _ 진정한 소통은 바깥에서 이뤄진다 >자기 성찰 동사서독 _ 사람의 속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존 말코비치 되기 _ 자기 존재를 긍정하라 매트릭스 _ 나는 선택한다, 이 길을! 디 아더스 _ 타자로 전락해 버린 나 >세상과의 화해 굿 윌 헌팅 _ 세상과 화해하는 법 피아노 _ 사랑은 소유하지 않는 것 쉬핑 뉴스 _ 두려울수록 정면을 보라 >디오니소스 찬가 중경삼림 _ 망각은 행복의 조건 나비 _ 과거도 미래도 삶의 시간은 아니오 뷰티풀 마인드 _ 정신분열을 이겨낸 초인적인 노력 >생존 전략 - 싸우기 와호장룡 _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간장선생 _ 잘 놀고 잘 쉬고 잘 자라 북경 자전거 _ 부숴질 수는 있으나 패배할 수는 없는 자 메멘토 _ 역사는 만들어진 서사 친절한 금자씨 _ 복수로 원혼을 달랠 수는 없다 >생존 전략 - 춤추기 쉘 위 댄스? _ 춤이 없다면 이 삶을 어떻게 견디랴? 빌리 엘리어트 _ 어머니를 만나고픈 접신의 춤 타인의 취향 _ 다름을 인정하면 조화를 얻는다 >언어, 예술, 아름다움 흐르는 강물처럼 _ 예술은 왼손에서 탄생한다 일 포스티노 _ 시인은 의식의 성장에서 태어난다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_ 인생의 과정을 향유하라 파인딩 포레스터 _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린다 >사랑에 관한 담론 여인의 향기 _ 의미는 삶 속에서 결정된다 오아시스 _ 사랑은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_ 사랑의 세 가지 정의 좋은 걸 어떡해 _ 사랑은 중간에서 만나는 것 더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하여 찾아보기 |
李王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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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철학하기 재미있게 영화보기,『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신필립(aska1206@yes24.com)
철학 이야기를 하는 영화 책? 영화 이야기를 하는 철학 책?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라는 제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영화라는 소재를 가지고 철학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다. 즉, 저자는 영화에서 철학을 읽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결국은 철학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영화를 떠나서는 재미가 없다. 철학에 초점을 두지만 영화에는 방점을 찍으면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하자. 많은 영화평들이 철학에 의존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나오는 많은 영화잡지의 글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푸코, 프로이트, 들뢰즈, 가타리 등의 이름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거처럼 이 책도 미장센의 예술적 구성이나 서사구조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철학의 잣대로 영화를 들여다본다. 흔한 방법이라고 하면 흔한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의 말하기 방식이 바로 그 이유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려운 철학적 언어와 도상학적 해석을 동반한 이미지. 이 둘의 결합을 아주 쉽게 풀이하면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이 까다로운 작업을 저자는 탁월히 해냈고 일반독자도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철학적 영화읽기에 빠져들 수 있다.
<트루먼쇼>에서 들뢰즈의 '유목민'을, <슈렉>에서 칸트의 '숭고함'을, <동사서독>에서 베르그송의 '심층자아'를, <매트릭스>에서 샤르트르의 '실존적 인간'을, <피아노>에서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를, <와호장룡>에서 장자의 '무위'를, <간장선생>에서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친절한 금자씨>에서 들뢰즈의 '기계되기'등 총 29편의 영화를 다루면서 많은 철학사상을 설명한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작업 속을 들여다 보자. 내가 가장 공감했고, 탁월했다고 생각했던 영화 분석인 <디 아더스(The Others)>를 예로 살펴보자. <디 아더스>는 반전으로 유명했던 영화이다. 영국의 어느 변두리 지역에서 주인공 그레이스는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두 아이와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하인 세 명이 들어오고 그들이 온 후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레이스는 그들이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들도 유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서사구조 속에서 저자가 읽어내고 있는 바는 '타자성'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유령은 타자이고 유령의 입장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존재이다. 등장하는 인간들은 자신과는 다른 타자들에 대해서 위협을 느끼며 그들을 제거하려 한다. 여기서 저자는 푸코의 말을 슬그머니 꺼낸다. 타자 앞에 선 동일자의 전략은 두 가지인데 동일화 시키거나 아니면 무화시키는 것이다. 동일화에서는 지식이, 무화시키는 방법에서는 권력이 동원된다. 또한 동일화를 추구하더라도 타자성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는 식민의 상태로 남겨둔다. 근세 이후의 유럽이 걸어갔던 길이 바로 푸코가 말하는 권력적 지식체계, 에피스테메(episteme)의 길이다. 모든 타자, 객체, 대상을 자신의 분류표에 넣고 분류표에 벗어나는 타자는 제거한다. 즉,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의 입장, 서구ㆍ백인ㆍ남성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동일화 전략에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유령이 우리를 두려워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디 아더스>의 마지막으로 다시 가보자. 동일자의 입장에서 한 순간 타자의 입장이 된 그레이스는 말한다 "분명한 건 엄마는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이 집은 우리 거라는 것이지." 타자와 동일자가 바뀔 수도 있다는 기준의 문제를 다시금 짚어내는 말을 남기고 영화는 끝난다. <디 아더스>를 공포물, 여름 더위를 식혀줄 만한 으스스한 영화로만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내딛어 동일성과 타자성을 읽어보는 것. 이런 영화읽기도 재미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일 포스티노(Il Postino)>를 보자. 저자는 이 영화에서 헤겔의 '의식의 변증법'을 일어낸다. 네루다가 이탈리아의 한 마을로 망명을 오게 되면서 주인공 마리오 루폴로는 그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일을 맡는다. 그와 접촉을 하면서 '메타포'에 눈을 뜨게 되고, 사랑을 만나고, 의식이 생기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저자는 처음의 무지한 마리오를 정(正)으로, 네루다를 반(反)으로 그래서 생겨나는 묻는 자 마리오를 합(合)으로, 다시 새로운 마리오를 정으로, 네루다를 반으로 이제는 사랑하는 마리오가 탄생한다. 또 한번 사랑하는 마리오를 정으로 네루다를 반으로 이제 언어를 사랑하는 자 마리오가 합이 되고, 시인 마리오는 네루다와 다시 부딪혀 실천하는 자 마리오로 합이 된다. 저자는 이런 변증법을 가지고 영화가 전개되어 가는 과정을 감상한다. 마지막에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 마리오가 투쟁의 현장에서 군중에 밀려 죽지만 그의 아들 파블리오가 생을 이어나가고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맹목의지에 의해 내몰리기만 하는 허망한 싸움이 아닌 절대 선으로 나아가는 끊임없이 혁신되는 삶의 투쟁을 이 영화가 말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칠레의 망명시인이자 정치가와의 시골 촌부와의 만남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로만이 아니라 역사의 발전과정, 인생의 전개과정을 헤겔의 변증법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헤겔이라면 이미 프로이센에서 역사상의 최고 발전 단계까지 이르렀기에 더 이상의 발전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의 방법론을 취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마리오가 죽게 되는 것은 행동하는 노동자로서 집회에 참가하다가 죽은 것이 아닌가? 헤겔의 방법론을 받아들인 마르크스의 모습이 투영되어 그 기반에 흐른다는 생각을 하면 저자의 설명은 꽤나 흥미있게 들린다. 두 영화만 맛을 보였지만 저자는 이런 식으로 8개의 분야에서 29개의 영화를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분석해 나간다. 어떤 장, 어떤 페이지를 무심코 펼쳐도 좋다. 그렇게 해도 한 철학자와 한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영화를 단순히 스토리만 보는 것, 이미지의 화려함에 도취되어 실제감을 느껴 보는 것도 좋지만 그 내부를 파헤쳐 다시 배열해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시작해보자. 자신이 본 영화나 봤지만 이해하지 못한 영화를 다시 펼쳐서 읽어보자. 이제는 무엇인가 더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해체와 결합을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하는 책, 그것도 영화와 철학 둘 다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하는 책, 쉽게 철학으로 한 걸음 다가서게 해주는 책이 바로 『철학, 영화를 캐스팅 하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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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인생이 있다, 행복의 철학이 있다
영화의 한살이가 너무도 짧다. 대박을 터트려서 각종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는 영화들조차 한 철을 버티지 못한다. 한번 보고 나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영화들. 그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동기 중 하나다. 냉엄한 시장 논리만이 이 비극의 이유인가. 혹시 우리가 영화를 만나는 방법의 서투름 때문은 아닐까. 영화와 사귀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영화를 작품work이 아닌 텍스트text로 만나야 한다. 작품은 닫혀 있으나 텍스트는 열려 있다. 작품은 때로 고통을 안기지만 텍스트는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 우리를 홀리고 꼬시며 에로틱하게 자극하는 멋진 이성처럼. 영화와 사귀기 위해 지은이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글쓰기다. 여기서 글쓰기란 영화들이 사라지면서 남기는 안타까운 흔적들로 무늬를 짜는 것이다. 무늬로 뭔가를 만들어내어 추억의 증거로 삼아보라. 추억이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 이 책은 지은이가 영화 텍스트들과 함께 놀면서 만들어낸 무늬들이다. 그 놀이의 흔적, 추억은 우리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환기시켜 준다. --- 표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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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축제였다. 그들은 결국 친절한 금자씨가 초대한 축제에 칼춤을 추며 들러리를 섰던 것이다. 가죽 재킷의 옷깃을 코끝까지 올리고 뒤로 물러서 있는 금자씨. 이제는 복수가 아니라 축제를 즐기고 있는 까닭이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수를 부추기던 금자씨가 정작 피해자들이 복수하려는 순간에는 복수의 질을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응징자들이 칼을 휘두르는 것은 슬픔과 분노에서가 아니라 축제판의 신명을 위해서였다. 칼을 휘두르고 나오는 사람마다 관객 앞의 배우처럼, 청중 앞의 연사처럼 언어와 행동을 과장한다. --- p.219 '친절한 금자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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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시대가 도래했다는 팡파르가 울려퍼진 지 벌써 10년. 그러나 대박을 터트려서 각종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는 영화들조차 한 철을 버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재능 있는 영화작가가 혼신의 힘을 쏟아 열정적으로 만든 작품이 개봉관에서 사흘 만에 간판을 내리고는 곧장 흔적도 없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현실이 시장 논리 때문만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영화를 만나는 방법의 서투름 때문은 아닐지 되묻는다. 성마르게 다가서서 서둘러 즐기고 조급하게 판단한 뒤 황망히 잊어버리는 관객들의 성급한 심성 때문은 아니냐고.
현실이 냉혹할수록 희망은 상상으로부터 나온다. 이를테면 의인화의 감각을 활용해 이런 상상을 해보자. 인생 탐구에 일생을 건 ‘철학’ 감독이 재미와 환상을 추구하는 배우 ‘영화’ 씨를 캐스팅해 영화를 찍는 상상. 어렵고 딱딱하고 권위적인 얼굴로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던 ‘철학’ 감독이 ‘영화’ 씨의 부드러운 얼굴과 감성적인 몸짓을 빌려 환상적인 재미를 느끼게 하고, 그를 통해 깊이 있는 성찰과 그 성찰로 얻은 행복의 희망을 남겨주는 영화를 찍는 상상.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바로 그런 상상을 현실로 바꾸어주는 책이다. 전작 『쾌락의 옹호』(문학과지성사, 2001)에서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며 삶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음을 생활 속의 여러 단상을 통해 보여준 이왕주 교수다. 그가 이번엔 영화 속에서 삶에 대한 성찰과 행복에 대한 희망을 찾아내고 있다. 편안하게 세속의 흐름을 따라가며 사는 사람들 혹은 세상의 경쟁 논리에 헉헉대며 사는 사람들 또는 세상의 문법에 치여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지나치게 무거운 이성의 준칙이나 규율의 감옥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에게 영화 속 상상을 빌어 인간다움과 행복의 의미를 묻고 있다. 영화별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글을 쓰면서도 한 인간이 자신을 성찰하고 타자와 세계를 이해하고, 또 예술과 사랑을 통해 행복을 얻기까지… <동사서독>에서 <친절한 금자씨>에 이르는 스물아홉 편의 글은 존재론과 인식론, 윤리론을 거쳐 행복론을 향한 끈질기면서도 즐거운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쉬우면서도 무게 있는 글 속에서 저자만의 독특한 글쓰기와 살아 있는 언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철학으로 영화 보기, 영화로 철학하기 저자는 영화를 닫혀 있는 작품work이 아니라 열려 있는 텍스트text로 만날 것을 제시한다. 어려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짤 것이 아니라 관객 나름대로 뜻을 만들어가며 즐겁게 영화와 만날 것을, 마치 멋진 이성과 만나 에로틱한 유혹을 주고받는 설렘을 나누듯이. 한번 보고 곧 잊혀지기 그만인 영화들 속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철학 개념들이 숨어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하이데거와 니체를 거쳐 들뢰즈와 부르디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가들이 책 속에 등장한다. 하이데거의 ‘있음(존재)’과 ‘있는 것(존재자)’의 의미를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춤으로 승화해 내는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알 수 있고, 친절한 금자씨의 수많은 얼굴은 들뢰즈의 ‘기계 되기being machine’와 접속되기도 한다. 이 책은 철학 입문서는 아니지만, 그 내용은 삶 속에 정말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어렵지 않다. 철학을 어떠한 형태로든 접해 보고 배워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해 주고 싶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일상 생활과 영화를 본 체험과 함께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철학이라고 하면 딱딱하게 여겨지고, 재미 없게 여기지는 게 일반적인데, 이왕주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와 같은 생각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도 영화 내용을 짐작하며 저자의 사고를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친절한 설명과 함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글을 전개하는 저자의 능력, 삶에 대한 폭넓은 경험 등이 탄탄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해방을 위한 자기 성찰 자기도 모르는 채 온세상에 자신의 삶이 노출되며 감시받고 살아가던 트루먼(<트루먼 쇼>), 아름답게 꾸며진 동화세계의 논리에 따라 거짓 모습으로 살아온 피오나 공주(<슈렉>), 게임기 속 세상에 빠져 진짜 세상은 모르고 살던 여섯 살 꼬마(<집으로...>)… 모두 자기도 모르는 구속에 얽매여 자신을 잃고 살던 존재들이다. 저자는 말한다. “유목민처럼 떠나라. 위반의 정열에 빠져보라. 밖으로 나가서 소통하라.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버릴 수 있는 자만이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진짜 삶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위반의 정열은 어렵고 혁명적인 것이 아니다. 자기 존재를 정면으로 볼 수 있고, 지금까지 모르던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의지만 가지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다 보면 종종 고통스러운 상처와 부딪힐 수도 있다. 천재적인 지능에도 어릴 적 상처를 극복 못해 거친 행동을 일삼던 윌 헌팅(<굿 윌 헌팅>)이나 아버지의 가혹한 학대로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던 코일처럼(<쉬핑 뉴스>). 그러나 두려울수록 정면을 보라. 고통을 회피하고자 하거나 그것을 잘개 쪼개 분석해 버리고 아무 일도 없는 양하는 태도로는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생존 전략 - 싸우기 vs 춤추기 사는 게 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그 투쟁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일 수도 있고, 존재를 지켜내기 위한 세계와의 투쟁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저 사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이기 위해서 투쟁은 필요하다. 금자씨가 그리도 복수에 매달린 것도 복수란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자 했던 존재의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자씨의 복수조차 종국에는 축제로 변한다. 그것은 결국 해원의 의식이었기에. 사는 게 투쟁이 아니라면 그것은 신명으로 살아내기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비우고 신명을 얻어내어 세계와 하나가 되어 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춤이 없다면 이 삶을 어떻게 견디랴?”라고 했던 니체의 말은 바로 그 신명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플랫폼에서, 화장실에서 낯선 댄스 스텝을 익히던 중년의 사내(<쉘 위 댄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춤 속에 담아내는 어린 소년(<빌리 엘리어트>)은 바로 신명을 통해 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삶을 바꾸어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뜰을 가꿔야 한다 결국 삶이란 세계 내로 던져진 존재이기에, 행복 역시 세계 속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타인을 이해하고(<여인의 향기>),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고(<타인의 취향>) 그 아름다움에 시선을 돌릴 줄 아는(<흐르는 강물처럼>) 것이다. 때로는 딱딱한 세상의 인습에 과절하지 않고 그것에 도전하는 행동주의자(<오아시스>)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 이미 휘어진 세상 속에서 잔인하게 짓밟히는 사랑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디 지혜롭도 더 날카로워진 홍종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주문을 외워 잠깐의 마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 될지라도 위험에 몸을 던지는 것. 행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행동하는 자에게 온다는 것. 이것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