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1장 정서적 행복 프로그램 2장 거짓 자아의 활동 3장 고통스러운 감정 4장 인간 조건 5장 신화적 회원 의식 6장 하느님을 대하는 태도 7장 정신적 자아의식 8장 네 가지 동의 9장 버니 10장 영적 여정의 본보기, 안토니오 성인 11장 감각의 밤, 거짓 자아에서 해방되기 12장 감각의 밤에 겪는 특별한 시험 13장 무덤 속 안토니오(문화 조건에서의 해방) 14장 감각의 밤이 맺는 열매 15장 관상 기도의 단계들 16장 영의 밤 17장 변화의 일치 18장 참행복 19장 또 다른 참행복 20장 향심기도의 핵심 21장 순수한 믿음 22장 관상에서 활동으로 23장 활동 안에서의 관상 24장 일상생활 속의 영성 맺음말 감사의 글 부록 용어 해설 |
Thomas Keating
토마스 키팅의 다른 상품
이청준의 다른 상품
|
영적 여정 동안 가족, 직장, 공동체 안에서 견디기 힘든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은 우리에게서 가장 나쁜 것을 끄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어떤 노력을 해도 관계를 개선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형제 수사에게 가졌던 질투심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나에게 반추시켜 주시려고 그를 이용하셨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 p.30 「2장 ‘거짓 자아의 활동’」 중에서 인간 성장의 모든 움직임은 우리가 처하는 육체적, 정서적, 영적 발달 수준에 상응하는 위기를 촉진한다. 성장의 중요한 위기마다, 그때까지 우리를 길러 준 물질적 혹은 영적 음식을 놓아 버리고 더욱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위기에서 우리는 안전감을 찾으려고 한다. 좌절당했을 때 가장 저항이 적은 노선을 택하거나, 자신을 감쌀 가장 편안한 안전 담요를 선택하는 것이 파충류 의식과 반인반수 의식의 특징이다. 더 낮은 차원의 의식과 행동으로 되돌아가려는 유혹이, 개인적 책임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역량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인간 성장이란 특정 의식 차원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낮은 차원의 의식을 더 높은 차원의 의식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 p.50 「4장 ‘인간 조건’」 중에서 그의 마음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재산에 대한 기억이었다. 해 질 녘 반짝이며 흘러가는 나일강 물과 비옥한 땅이 보였다. 모든 것이 너무도 평화로웠다. 멀리서 현악기의 부드러운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안토니오는 히아신스와 등나무 꽃의 달콤한 향기도 맡을 수 있었다. 시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청각 모두가 그의 상상과 기억 속에서 결합하여 아름다웠던 대지에 대한 엄청난 향수, 특히 그 옛날 아름다운 여름날 저녁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귀에 대고 어떤 소리 하나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안토니오야, 그토록 멋진 대지를 어떻게 떠날 수 있었느냐? 그 땅은 그대로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당장 떠나기만 하면 쉽게 되찾을 수 있다.” 악마라는 존재는 훌륭한 무대 감독이나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실 B. 드밀 같은 사람도 악마에 비하면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악마는 감각을 뒤흔들고 적절한 영상을 고른 다음, 가장 달콤한 기억과 가장 자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켜 최고의 인상을 창출한다. 악마의 목적은 영적 여정을 지속하려는 결심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 p.98~99 「10장 ‘영적 여정의 본보기, 안토니오 성인’」 중에서 어느 과학자가 지상에서 색깔이 가장 아름다운 나비 품종을 개발하는 데 생애를 바쳤다. 몇 년간의 실험 끝에 그는 한 고치에서 유전학적 걸작이 나오리라고 확신했다. 나비가 부화하리라 예상된 날 그는 연구진을 모두 불러 모았다. 피조물이 고치에서 나오기 시작하자 모두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오른쪽 날개와 몸, 그리고 왼쪽 날개 대부분이 고치에서 나왔다. 샴페인과 시가를 돌리며 축배를 들려던 순간, 사람들은 나비의 왼쪽 날개 끝이 고치 입구에 끼어 있는 것을 보고 긴장했다. 그 피조물은 빠져나오려고 오른쪽 날개를 계속 파닥거리고 있었다. 파닥거릴수록 점점 기운이 빠졌다. 새로운 시도는 매번 더 힘들어 보였고, 그 간격이 점점 길어졌다. 마침내 과학자는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칼을 집어 고치 입구를 조금 잘라 내었다. 한 번 더 힘을 준 끝에, 나비는 실험대 위로 빠져나왔다. 모든 사람이 축하하며 샴페인과 시가에 손을 댔다. 그때 침묵이 다시 방에 내려앉았다. 고치에서 빠져나온 나비가 날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치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은 나비가 날개 끝까지 피를 보내기 위한 본능적 방식이다. 그래야만 나비가 고치에서 나올 때 새 생명을 누리며 마음껏 날 수 있다. --- p.125~126 「13장 ‘무덤 속 안토니오’」 중에서 기도가 깊어지면서 은총은 우리 정신 깊숙한 곳에 이르러 일생 동안 축적된 정서적 손상과 잔재를 덜어 내게 해 준다. 이성과 의지 행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던 단계에서 직관적 기능을 통해 그분께 직접 다가가는 단계로 옮겨 간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외적 감각, 기억, 상상, 논리, 의지 행위를 통하는 대신 직관적 기능을 통해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다. 이 과도기를 믿음의 위기로 체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정신적 자아의식 차원에서 직관적 의식 차원으로 옮겨 간다. 직관적 의식 차원이 정착되면 우리의 모든 관계, 말하자면 우리 자신, 하느님, 타인, 우주와의 관계가 변하고 우리는 긴 시간을 들여 이 세상에서의 새로운 존재 방식에 적응하게 된다. 직관적 의식 차원에 상응하는 참행복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의 참행복으로,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그들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믿음으로 정화된 영의 눈으로 그분을 뵙게 될 것이다. --- p.172 「19장 ‘또 다른 참행복’」 중에서 사람들이 타인을 자기보다 가치가 덜한 사람으로 보는 사고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고, 기아와 압제와 평화 등 세계 문제의 중대성을 감지하기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내가 개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와 똑같은 기본 질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도 있다. ‘나 자신은 더 많은 쾌락과 더 많은 안전 상징에 대한 이기적 욕구와 내 인생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어떻게 평화와 정의에 기여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자. ‘내가 완전히 정화되지 않으면 이웃을 섬기거나 자선을 실천할 수 없는가?’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대답하신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 이 말씀에 비춰 보면, 연민을 실천하는 것이 큰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물 한 잔, 미소를 건네주는 것, 혹은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 주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우리는 유엔에 가서 연설하거나 정상 회담을 위해 모스크바로 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바로 옆집, 우리 가족, 직장, 버스 안, 우리가 가는 곳 어디서든,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 p.202~203 「23장 ‘활동 안에서의 관상’」 중에서 |
|
관상 기도의 대가, 토마스 키팅
그가 영적 여정을 이끄는 방법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관상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 침묵으로 머무는 기도의 방식으로 이해된다. 하느님께 무언가를 청하거나 묵상하는 단계를 넘어,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믿고 그 현존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 앞에 조용히 머무는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이어 나가는 전통적인 방법 중 하나로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 그리스도교 관상 기도의 대가 토마스 키팅 신부는 이러한 관상 기도의 전통을 현대적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사유한다. 키팅 신부는 관상 기도를 신비 체험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인간의 심리와 의식 구조를 통과하는 여정으로 설명한다. 어린 시절 형성된 결핍과 두려움, 타인과 세상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신앙과 기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며, 관상 기도란 이 구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서서히 비워 가는 과정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결실이자 출발점이 바로 『침묵의 대화』이다. “복음의 가치를 선택한 뒤에도 여전히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적인 행동 동기를 직면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깊어지는 기도 속의 함정, 하느님의 정화가 이루어지는 자리 관상 기도는 인간 의식에 단계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여기에서 비롯되는 변화가 언제나 평온하지만은 않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혼란과 메마름을 경험할 수 있다.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키팅 신부는 이를 실패나 후퇴로 보지 않는다. 관상 기도 안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어려움은 인간의 내면이 정화되는 과정, 곧 ‘신적 치료’의 일부이자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여정으로 설명된다. 이로써 관상 여정은 개인의 심리적 체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교회 안에서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영적 이해의 흐름 속에 놓이게 된다. 키팅 신부는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의 언어와 체험을 불러온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 예수의 데레사 성녀, 안토니오 성인에 이르기까지, 영적 여정을 먼저 통과한 이들의 체험은 관상 기도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어 왔는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고전적 영성 전통이 저자의 심리학적·영적 통찰과 나란히 놓이면서, 우리가 관상의 길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이겨 내는 데 실제적인 길잡이가 된다. “우리 시대에는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과 기도 단계, 그리고 여정에서 만나는 여러 함정을 잘 아는 영적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그들이라야 감각의 어두운 밤에 들어가는 사람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놓아 버림’ 후에 시작되는 진정한 변화, 하느님을 다시 만나는 여정 키팅 신부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놓아 버림’이다. 모두 내려놓은 뒤 나타나는 빈자리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서서히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불편하고,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 우리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그때, 인간의 의지와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작용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느껴지는 위안이 사라진 자리, 항변하고 요구하는 언어가 멈춘 침묵의 시간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신뢰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의 자신을 떠나보내고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이끌려 간다. 자신과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건네시는 사랑으로의 초대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부르심이다. “거짓 자아가 완전히 없어지면 곧바로 변화의 일치가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무소유적 태도가 확립된다.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자기중심적인 ‘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삶의 좋은 것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삶의 좋은 것들이 이제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 현존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일 따름이라는 의미이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