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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한스’ 이야기
제1장 베개와 열쇠 열쇠는 공에도 황금 궤에도 금고에도 없고 어머니의 베개 밑에 있다. 제2장 한 올의 머리카락이 황금으로 변할 때 소년은 자신의 상처로 내려오기를, ‘쌍둥이’의 왕국으로 올라가기를, ‘만물’에 깃든 의식 안으로 뻗어 나가기를 요구받는다. 제3장 재와 하강과 슬픔의 길 너는 황금에 대해선 많이 알지만 가난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른다. 너는 올라가는 데 대해선 많이 알지만 내려오는 데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른다. 제4장 아버지 없는 세대와 왕에 대한 갈망 우리가 저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왕은 옛날에 살해되었다. 편안히 눈을 감는 왕은 없다. 그는 쓰러져 죽는다. 제5장 정원에서 만난 경이로운 여인 태양빛이 머리에 닿자 소년의 머리는 눈부시게 타올랐고 그 빛은 공주의 방에 바로 가서 박혔다. 제6장 내면의 전사를 삶의 무대로 태양을 향해 곧장 날아가는 단순한 남자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 그림자는 까마득히 뒤에 있다. 그는 추락할 때, 자신의 그림자를 붙잡는다. 제7장 붉은 말, 흰 말, 검은 말을 타고 떠나는 길 소년은 왕에게로 가지 않고 길을 에둘러 숲으로 가더니 무쇠 한스를 불러냈다. 소년은 말했다. “이제 말과 군사를 돌려받으시고 절름발이 늙은 말을 주세요.” 제8장 왕의 군사들에게 입은 상처 이제 그대가 그 일을 해냈으니 그대는 원래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너는 왕이다!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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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리더십이 고갈되고 있는 원인들
로버트 블라이는 동화의 틀을 빌어 우회적으로, 그러나 대단히 명료하고 직설적으로 내면이 병들어 있는 현대 남자들의 괴로움을 그리고 있다. ‘남자다움’의 부재, 더 구체적으로는 ‘진정한 전사’의 죽음, 더 나아가 권위의 상징인 ‘신성한 왕’의 죽음, 한마디로 ‘진정한 남성성’의 상실이 그 원인이다. 저자는 「무쇠 한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친절히 낭독하고 해설해 가면서, 소년을 남자로 키우고 인도하는 무쇠 한스라 불리우는 ‘야성인’의 존재와 역할이 까마득히 잊혀졌다고 말한다. 1) 전사(Warrior)의 죽음 옛날 남자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냥꾼이자 불의한 침입자로부터 삶의 터전을 굳건히 지켜내는 전사였다. 왕국 또한 전사가 지켜내지 못하면 적들에게 유린되고 만다. 우리 한국 사회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괴로워하면서 ‘역사 청산’을 운운하며 내부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수치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의와 평화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자랑스런 긍지를 생명으로 하는 전사는 살해되고 명령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병사(Soldier)로 대체된다. 대의명분이 사욕과 부패로 얼룩질 때, 진정한 남자로서의 자긍심과 생명력은 상실되고 부드럽고 수동적인 남자들의 범람과 향수로 착각하는 부패의 냄새가 문화 전체를 뒤덮는다. 저자인 로버트 블라이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남자들은 일본 식민지로 무릎을 꿇었을 때 모두 죽었고 1950년의 내전과 남북 분단으로 또한번 죽었다. 지금은 어떤가. 리더십의 부재와 물질주의의 늪에 빠져 익사 지경이다. 「무쇠 한스」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소년은 튼튼한 네 다리를 가진 건장한 말을 타지 못하고 여전히 절름발이 말만 타고 있다. 2) 왕의 소멸 전통사회에서 왕은 곧 ‘하늘(天)’이었다. ‘하늘’은 지엄한 자연의 법칙을 상징하며, 태양의 에너지와 빛을 상징한다. 동화에서 왕이 병들면 왕국도 병이 든다. 세속의 왕은 신성한 우주의 왕으로부터 그 신성을 위임받은 존재다. 왕이 왕국의 중심에 있지 못할 때, 권위의 원천이 되지 못할 때, 나라는 부패하고 타락한다. 나라의 진정한 가치를 수호해야 할 전사는 방패를 베고 잠에 빠져들며, 대중들도 성장을 멈추고 욕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세속적인 왕이 사라질 때,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내면의 중심도 사라진다. 공화국의 중심 권력이 부패하면 민주주의는 우민정치로 전락한다. 진정한 리더십의 우물이 말라버린다. 「무쇠 한스」 이야기를 통해, 로버트 블라이는 태양의 빛나는 방사 에너지가 신성한 왕에서 세속적인 왕으로, 그것이 다시 남자의 내면의 왕이란 차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고리가 끊어지면서,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남성적인 에너지가 차단되었다. 아이들의 내면은 파리해지고 농작물은 영양가가 없어지고, 여자들은 헤퍼진다. 우리 한국 사회가 ‘진정한 리더십’의 물을 그토록 갈망하는 이면에는 우리 사회와 문화를 통합적으로 이끌어갈 신성한 힘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자리잡고 있다. 3) 스승의 죽음 존경할 만한 연장자들이 부재할 때, 소년들은 남자로 크지 못하고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남자들은 돈벌이 존재로 격하되었고, 영국 작가 D. H. 로렌스가 소설에서 묘사했듯이,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면서 더 이상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대규모 산업체의 기계 부품 단위로 전락하면서, 가족과 사회를 먹여 살리는 노동의 가치가 화폐 단위로 격하되었다. 야성인(野性人) ‘무쇠 한스’는 깊은 연못 속으로 사라진다. 저자인 로버트 블라이가 지적한대로, 사회를 지탱해온 연장자들, 아버지들은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 권위도 잃고 직장의 스트레스에 찌들린 채 아버지들은 자녀를 방치한다. 아들과의 관계조차도 아내의 영역으로 편입된 채 외톨이가 된다. 소년들은 어머니의 대지모적인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수동적이고 곱상한 아이로 남는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몸만 어른이지, 내면은 모두 탯줄을 끊지 못하고 성장이 멈춘 소년들이다. 이들이 나이가 들면 어떠한가. 사회를 책임질 힘이 없으니 가볍다. 말만 많고 강력하게 이끄는 행동력이 없다. “무쇠 한스!” 하고 외칠 용기조차 없다. 존경할 만한 ‘어르신’이 절대 부족한 사회, 소년을 제대로 된 남자로 이끌 만한 스승이 사라지고 있는 사회는 위험하다. 제대로 된 통과의례를 겪지 못한 세대는 자신의 남자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평생을 미로에서 헤메게 된다. 우리 세대가 바로 그러한지 모른다. 「오딧세이아」에서 여신 키르케는 남자들을 돼지로 변형시켜 가두어 놓는다. 그렇게 되면 「무쇠 한스」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소년은 자신의 왕국을 갖지 못하고 궁정의 정원사로 평생 늙게 되고 만다. 내면의 황폐함을 딛고 어떻게 풍요로운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저자 로버트 블라이는 기성 세대의 자기 성찰과 전통과의 화해를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삶의 이치를 자연히 알게 된다. 치열한 자기 반성 속에서 전통적인 통과의례가 베푼 ‘남자다움’의 가치를 현대에 맞게 재생해내야 한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면적 성찰’에 치우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일상의 튼튼한 복원, 일에서 전사처럼 싸우고 가족과 자기 내면의 영역을 지켜내며, 진정한 사회적 가치에 헌신하여 원형질의 ‘남자다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을 그는 「무쇠 한스」 이야기를 통해 ‘야성인’의 복권으로 얘기하고 있다. 야성인(野性人)과 야만인(野蠻人)은 다르다. 자연적인 남자다움을 ‘야성적’이라 부를 수 있다면, 영혼이 없는 무반성적인 폭력성이야말로 ‘야만적’인 것이다. 현대 남자들의 삶에 대한 수동적 태도, 자기 운명을 능동적으로 끌어나가지 못하는 나약함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고 로버트 블라이는 말하고 있다. 사회 전반의 여성화 경향은 여성들에게 책임이 있기보다는 남자들에게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남자들의 자기 방치와 무관심, 이기적인 삶의 태도가 빚어내는 비극을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무쇠 한스 이야기 : 남자의 책 』은 바로 한국 사회, 한국 남자들을 위해 쓴 것처럼 문제의식이 투철하고 깊다. 동화로 빚는 저자 로버트 블라이의 현대 남자들과의 대화는 처절하다. 우리 삶이 과연 어떠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깊이 고뇌하게 만든다. 그 고뇌가 우리 삶을 이끄는 등불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