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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89-1919
자멸을 위한 실험실 맨체스터 러셀의 제자 러셀의 선생 노르웨이 후방에서 전선에서 2. 1919-28 출판될 수 없는 진리 '완전한 시골의 삶' 황야 밖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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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전쟁이 그를 변화시키길 바라면서 참전했었고, 그의 바람은 정말 실현되었다. 그는 4년 동안 현역으로 근무하고 1년 동안 포로 생활을 겪었다. 그는 죽음에 직면하기도 했고, 종교적인 깨달음을 경험했으며, 다른 이들의 삶을 책임지기도 했고, 그가 전에는 결코 같은 열차 칸에 타지 않았을 사람들과도 오랜 시간 함께 있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이런 의미에서 1919년, 그는 어떤 것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변했고, 욜 박사가 베를린에서 알던 '꼬마 비트겐슈타인'으로 돌아갈 수 없었듯이, 그는 더 이상 1914년 자신을 떠났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재창조해야 하는 과업, 즉 지난 5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연마된 사람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하는 과업에 직면했다. 가족들은 그의 변화된 모습에 당황했다. 그들은 왜 그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버트란드 러셀이 그의 철학적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또 그가 철학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길거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왜 그는 이제 와서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길 원하는가? 그것은 마치 나무상자를 여는 데 매우 정밀한 도구를 사용하길 원하는 사람 같다고 누이인 헤르미네가 말하자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응답했다. 누이는 닫힌 창문을 통해 밖을 보는 사람이 그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사람은 거기에 어떤 종류의 폭풍이 몰아치는지, 또는 그 지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힘겹게 버티고 서있는 것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지나가는 사람이 취할 가장 자연스러운 조치는 폭풍을 피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전쟁동안 겪은 어려움을 잊어버려야 할 어떤 것으로 경험하지 않았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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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만일 당신이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해질 수 없는 것은 - 말해질 수 없이 - 말해진 것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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