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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봄꿩으로 우는 저녁 시월 / 터무니 있다 / 고승사 / 고향 동백꽃만 보면 / 누이 / 까딱 않는 그리움 / 별어곡역 / 매봉에 들다 / 서울 할망 / 한라산에 머체골 있었다 / 삐끼 제2부 수작하는 어느 올레 “셔” / 딱지꽃 / 농다리 / 삼전도비 / 화입(火入) / 제주 골무꽃 / 한가을 / 벌초는 끝나고 / 주전자 / 가을이 어쨌기에 / 애월의 달 제3부 사람 팔자 윷가락 팔자 봄꿩 / 겡이죽 / 봄날 / 판 / 닐모리동동 / 행기머체 / 몸국 / 가파도 1 / 가파도 2 / 가파도 3 / 가파도 4 제4부 본전 생각 간절한 가을 위미리 / 낙장불입 / 배방선 / 그리운 남영호 / 하도카페 / 멀구슬나무 / 처방 / 이윽고 / 고추잠자리 17 / 고추잠자리 18 / 원고 청탁서 제5부 솥뚜껑 베옥 열고 삐쭉새 / 청도 반시 / 추렴 / 윤동지 영감당 / 바람꽃 / 중대가리나무 / 바당할망 / 내 사랑처럼 / 원담 / 돗 잡는 날 해설:‘몸국’의 노래―이홍섭 |
오승철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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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아픈 역사를 두고 공적 담론은 반복해왔다. “터무니 없다”고! 오승철 시인의 제3시집은 시적 언어로 반발하고 저항한다. 그리고 무너진 집터를 찾아 역사의 흔적들을 짚어가며 여기 소리치고 있다. “터무니 있다!”
- 박진임 (문학평론가, 평택대 교수) 아무도 하지 않은 단장, 양장,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를 한 그릇에 넣고 버무린 시인의 품은 한마디로 가늠키 어렵다. “터무니 있다” “가을이 어쨌기에” “셔” “수작하는…” 등 개성 있게 부려 놓는 독특한 시어는 결코 가벼운 리리시즘(lyricism)에서 나온 게 아니어서 그의 작품을 만나는 독자는 정녕 행운아다. - 변현상 (시인) 오승철의 시조에는 숨비소리 같은 시대의 아픔이 있고, 그것을 껴안는 노래가 있다. 이동원 (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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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세계
제주 해녀들이 물속에서 숨을 참았다가 물 밖으로 솟아오를 때 비로소 내지르는 소리를 일컫는 숨비소리는, 파란 많은 제주 역사의 비명이자 생명의 소리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세간의 한복판에 있는 해장국집의 불빛과도 같은 것이다. 60년 동안 물질을 했다는 시인의 어머니와, 일본으로 밀항해 거기서 세상의 연을 다한 시인의 누이와, ‘딱지꽃’ 같은 시인의 곁을 지키며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시인의 아내가 다름 아닌 숨비소리의 산 역사가 아니던가. 「“셔”」는 이러한 시조의 격조를 잘 담고 있으면서도 현대화에 성공한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현대 자유시처럼 자유로운 운행을 보이고 있으나, 내재적으로는 시조의 특성과 형식미를 잘 살린,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밝혔듯, 시인의 모습이 잘 체현된 작품이자,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이 지향하는 시조의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다. 필자가 이 작품에 주목하게 된 것은 시인이 시어와 형식을 통해 빚어낸 ‘미학’이다. 이 작품을 반복해 읽다 보면 시인이 얼마나 공들여 시어를 고르고, 이 시어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나가는가를 느껴볼 수 있다. 이 시의 ‘미학’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배어나오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표 나게 두드러지는 시어 중 하나가 ‘허기’이다. 이 허기는 그의 시 전반을 가로지른다. 그런데 이 허기는 단일한 근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이어서 치유 불가능한 것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이 허기는 시인의 실존적 고뇌에서 나오기도 하고, 육지와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사람으로서의 외로움에서 나오기도 한다. 또한 이 허기의 기저에는 제주도민의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맺혀 있는 ‘제주 4·3’을 비롯한 파란 많은 역사가 잠겨 있기도 하다. 시인이 정색하며 “터무니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고단한 역사를 지나왔다 해도 사람의 살림이 이루어진 터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작품 곳곳에 날숨처럼 배치한 ‘숨비소리’는 이 살림을 만들어가는 생명의 소리이다. 이 소리의 주인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서 만드는 것이 바로 ‘터무니’가 아니던가. 시인은 “화산섬 숨비소리”(「바당할망」)가 살아 있는 한, 서러운 삶과 역사 속에서도 이 터무니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러운 몸국”(「돗 잡는 날」)이라 할지라도 “몸국이 되고 싶네”(「몸국」)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몸국은 다름 아닌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 바다/그마저 우려낸 몸국”이기 때문이다. ― 이홍섭(시인)의 해설 중에서 ■ 시인의 말 나의 시는 어머니 무덤가에 설핏, 다녀가는 봄눈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