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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 시각과 과제 9
1. 문제의식과 연구대상 10 2. 연구사의 정리와 본 연구의 의의 17 3. 시기 구분과 각 장의 연구과제 24 제 I 부 한말 한국경제의 식민지적 재편과 한상룡의 활약 27 제 1 장 문명개화론의 수용과 대일본 인식 29 1. 문명개화론의 수용 29 2. 일본 유학과 대일본 인식 36 3. 귀국과 관력: 일본의 유학생 이용 정책 50 제 2 장 한성은행의 개조와 대한제국기의 기업활동 59 1. 한성은행의 개조와 은행업의 재개 60 2. 각종 식민지 금융기관의 설립과 한상룡 76 제 3 장 일본 실업시찰과 한말의 재계활동 87 1. 한말 상업회의소와 한상룡 87 2. 1907년 일본 실업시찰과 한상룡의 대일 인식 94 3. 일본재계의 대한 진출과 한국 실업가의 대응 115 제 II 부 일제강점기 식민지적 성장과 그 한계 129 제 4 장 한상룡의 식민지적 성장과 한성은행 131 1. 1910년대 한성은행의 확장과 한상룡 131 2. 제1차 세계대전기 한상룡의 해외시찰과 조선사회 인식 141 3. 1910~20년대 중반 한상룡의 기업활동과 그 특징 178 4. 소결 214 제 5 장 조선실업구락부의 조직과 활동 219 1. 조선실업구락부의 조직 222 2. 조선실업구락부의 활동 234 3. 소결 252 제 6 장 성장의 한계와 기업활동의 위기 255 1. 1920년대의 장기불황과 한성은행의 정리 257 2. 식민지 기업가 한상룡의 몰락 267 3. 소결 279 보론 : 일제하 조선신탁주식회사의 설립과 신탁업 통제체제의 확립 283 1. 머리말 283 2. 조선신탁업령의 시행과 조선신탁업계의 동향 285 3. 신탁합동정책의 변화와 조선신탁주식회사의 설립 297 4. 신탁합동의 전개와 신탁업 통제체제의 확립 306 5. 맺음말 319 제 III 부 (준)전시기 조선재계와 한상룡의 정치적 귀결 323 제 7 장 1930년대 전반 조선재계의 동향과 한상룡의 재계활동 325 1. 조선에 있어서 ‘만주붐’의 전개와 재계 325 2. 조선미이입제한문제와 한상룡의 활동 371 제 8 장 전시기 조선재계의 동향과 한상룡의 정치적 귀결 385 1. 전시기 조선재계의 동향 385 2. 전시기 한상룡의 활동과 정치적 귀결 402 종장 : 결론과 전망 413 1. 각 장의 요약 413 2. 결론과 연구사적 의의 424 후기와 부록 429 후기 429 초출 논문 435 참고문헌 435 한상룡 연보 458 조선실업구락부의 단체 회원 명부 470 조선실업구락부의 개인 회원 명부 475 찾아보기 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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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에서) 한상룡은 1920년 3월에 조선실업구락부라는 조선인 실업가들의 친목단체를 조직해 1945년까지 동 구락부를 이끌었다. 조선실업구락부의 조직이 3 · 1운동 이후 전개된 문화정치의 전개 과정에서 ‘친일단체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사실 1913년부터 이미 조선인들에 의한 실업구락부 설립 움직임이 있었음은 기억할 만하다. 설립 후에는 제한된 공간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실업가(기업가)의 ‘소통의 장’으로서 기능했다. 조선인 실업가 상층부의 친목단체였지만,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각종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직적, 수평적 네트워킹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1930년대 조선공업화, 만주국 성립, ‘선만일여’ 정책, ‘일선만’ 경제블록 등이 추진되면서 동 구락부 또한 회원구성에 큰 변화가 생겼고,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조선인들 재계단체가 아니라 조선인 실업가(기업가)를 비롯해 조선총독부 관료, 재조일본인 기업가, 일본 국내 조선 관계자, 그리고 일본 기업가가 참여한 조선재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조선실업구락부 명부에는 해방 이후 한국경제를 짊어질 다양한 분야의 청년 기업가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들은 월례회, 좌담회, 간담회, 환영회, 사회사업 등을 통해 식민지기 한국 사회의 주요 의제를 논의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 따라서 조선실업구락부는 한국경제의 기업가적 기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 한상룡이 롤모델로서 일본재계의 후원자 시부사와를 상정하고 일생 본받고자 노력한 것은, 조선재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그가 어디로 상정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활약상을 보고 당대인들이 한상룡을 ‘조선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 칭한 것이고, 본 논고의 검토를 통해 한상룡을 ‘조선재계의 코디네이터’로서 평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일본재계의 조선 진출의 선구자적 존재인 시부사와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식민지 권력의 지원 아래 기업가로 성장한 한상룡은 그 처한 상황이 너무 비대칭적이었음을 지적해야 한다. 많은 주식회사의 발기인 ·주주 ·이사가 된 시부사와는 자립적인 입장에서 재계와 관계를 연결하고 일본재계의 코디네이터가 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한상룡은 미성숙한 조선인 경제계와 식민지 권력 사이의 ‘긴장관계’를 이용하는 ‘재계인’에 불과했다. 여기서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동시대 인식이 갖는 한상룡에 대한 과대평가를 엿볼 수 있다. ... 조선재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그 가운데서 성장해간 ‘친일’ 기업가와 재계인을, 식민지의 조선경제와 해방 후의 한국경제를 연결하는 담당자로서, 그 역할을 평가할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하면, ‘친일’ 기업가의 존재는 대한제국기(한말)의 상인 ·실업가와, 해방 후의 기업가를 역사적 역할을 수행한 매개적 존재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인식에 서서 한국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을 상정하게 되면 각 국면에서 활약한 주체를 일관된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말의 조진태, 백완혁, 조병택, 백윤수 등을 맹아기 한국자본주의의 제1세대 기업가로 인식한다면, 식민지기 전반에 성장해 1930년대에 조선재계의 중심에서 활약한 뒤 해방후 한국재계를 주도한 박흥식, 김연수, 백낙승 등은 제2세대 기업가로 인식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 의하면, 한상룡은 김한규, 민대식 등과 함께 맹아기 한국자본주의의 1.5세대로서 양 세대를 연결하고, 제2세대 기업가를 키워낸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