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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7
1. ‘격몽(擊蒙)’의 의미 맥락·15 2. 『격몽요결』「서문」·63 3. 입지(立志) - 뜻을 세우다·100 4. 혁구습(革舊習) - 낡은 습관을 혁신하다·123 5. 지신(持身) -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다·137 6. 독서(讀書) - 글을 읽는 이유와 방식을 고민하라·159 7. 사친(事親) - 부모를 올바로 모시고 살다·176 8. 상제(喪制) - 장례를 엄숙하게 행하다·186 9. 제례(祭禮) - 제사의 예절을 경건하게 하다·197 10. 거가(居家) - 집안 관리 운영을 합리적으로 하다·202 11. 접인(接人) -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 교양을 설명하다·215 12. 처세(處世) - 교육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하다·226 |
Shin,Chang-Ho,申 昌 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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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을 독해하면서, 율곡 이이와 동시대인 1500년대를 살았던 철학자의 사유를 들추어 보았다. 다름 아닌,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이다. 몽테뉴의 『수상록』 가운데 「학식이 있음을 자랑함에 대하여」라는 단상(斷想)이 있다. 이 글이 율곡의 『격몽요결』과 직접적으로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우스갯소리로 말하면, 몽테뉴의 ‘몽’과 몽괘의 ‘몽’이 같은 발음 아닌가! 「학식이 있음을 자랑함에 대하여」라는 글을 보면서, 지식인의 무용(無用)과 유용(有用)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무엇이 스친다. 문득, ‘몽(蒙)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조언할 수 있는 언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몽테뉴의 말 가운데 몇몇 언표를 군데군데 발췌하며 독해해 본다.
--- p.19~20 최고선으로서의 학문(學問), 그 배우고 묻는 과정은 인간의 전체 삶 가운데서 진행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끝이 없다. 인생의 여정 자체인 생활(生活)이나 평생교육(平生敎育)의 차원에 자리한다. 그것이 몽괘(蒙卦)의 ‘발몽(發蒙)에서 격몽(擊蒙)에 이르는’ 무지몽매의 깨달음이나 깨우침의 역정(歷程)이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으로 표현되는 칠정(七情)의 변증법적 지속 가운데 진행을 거듭하는, 개인의 인격 완성, 그리고 사회의 유지·개혁으로 이어지는, 교육의 본질이다. 배우고 물어라! 교육은 그것의 역동성에 기반한다! 그 교육을 바탕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탄생한다. 서구 대학 최초로, 독일의 쾨니히스베르그대학에서 ‘교육학 강의’를 개설하여, 직접 강의했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도 율곡과 유사한 의미의 교육론을 설파했다. 칸트의 『교육론』은 다음과 같은 교육의 핵심 의미를 강조하면서 시작된다. 인간은 교육받아야 할 ‘유일한 피조물(被造物)’이다! Man is the only creature that needs to be educated! --- p.67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좋은 사람’과 관련한 자신의 사유를 전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관련하여 몇몇 의견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습관’에 의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가르침’에 의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본성’에 의해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노력에 달린 사안이 아니다. 어떤 신적(神的)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분명, 진정으로 운이 좋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다. ‘가르침’은 모든 경우에 힘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듣는 사람들의 영혼이 ‘습관’을 통해 기뻐하며 고귀하게 되도록,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만 한다. 곡식의 씨앗이 자라는데 적당하도록 땅을 준비하듯이 해야 한다. --- p.127 천주교의 장례는, 연옥의 영혼을 위한 기도, 즉 ‘위령 기도’인 ‘연도(煉禱)’와 ‘위령 미사’인 ‘연유(煉?)’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연도’는 독특한 운율이 있는 노래 형태로 바치기도 한다. ‘연유’는 성당에서 신부(神父)의 집전 하에 진행되고, 고인이 하나님 곁에서 안식을 얻도록 간청한다. 한국의 가톨릭에서는 유교 전통을 존중하고 수용하여, 분향(焚香)이나 고인에 대한 절을 허용한다. 개신교는 죽음을 ‘이 땅에서 수고(受苦)를 마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기쁜 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장례 의식이 간소하고 밝은 분위기를 띠기도 한다. 장례식은 대부분이 예배 중심이다. 임종(臨終) 때의 예배를 비롯하여, ‘입관’ 예배, ‘발인’ 예배, ‘하관’ 예배 등, 모든 절차가 목사(牧師)의 집행 아래, 예배로 이루어진다. 절을 하는 대신, 국화꽃을 영정 앞에 놓는 ‘헌화(獻花)’와 ‘묵념(默念)’으로 예의를 표한다. 또한 슬픈 노래보다는 하나님의 품, 천국 길로 가는 소망을 담은 찬송가를 부른다. 불교의 장례식은 천주교나 개신교와 상당히 다르다. 불교는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생(生)으로 나아가는 ‘윤회(輪廻: Samsara; rebirth, cyclicality of life)’의 과정이자 삶의 집착을 놓아주는 의식으로 생각한다. 윤회는, 해탈(解脫)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 그 깨달음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이 세상으로 재탄생한다는 의미이다. --- p.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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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거대한 저술, 『격몽요결』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기 저자는 기존의 『격몽요결』 번역서를 보면서 고마움과 아쉬움을 느꼈다. 한문(漢文) 권위자들의 책은 때로는 쉽고 때로는 버거웠다. 쉬운 부분은 저자가 유학을 공부하였기에 원문과 내용을 동시에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고, 버거운 부분은 저자가 유학을 공부했는데도 부분 부분 다시 검토하며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쉬움과 버거움의 교차 지점에서, 유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느낄까? 『격몽요결』이라는 명저를 선뜻 읽으려고 할까? 특히, 교육이나 교육철학, 서구의 교육학에 물들어 있는 독자들에게 환영받으며 다가갈 수 있을까?를 저자는 고민하였다. 그리고 조선 성리학(性理學)과 교육철학을 가로지르는, 이 작지만 거대한 저술, 『격몽요결』을 독자들과 폭넓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저자는 이 책에 담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는 공유 방법에 대한 두 가지 원칙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아니 미래의 교육조차도, 한국 교육은 서양 교육학의 이론을 뿌리에 두고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 사유와 서양의 교육 이론은 ‘대대(待對)’와 ‘교착(交錯)’을 필연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 교육의 현재이고, 광장에서 논의되면서 미래로 재생(再生)되는 지속가능성이다. 이에, 자자는 글을 쓰면서 두 가지의 큰 원칙을 정했다. 첫째, 『격몽요결』이라는 조선 성리학의 교육 이론을 서양의 교육 이론에 빗대어 독해한다. 동아시아 유학과 구미(歐美) 철학의 특성상, 이 둘의 조합은 모순 상태가 많다. 천문·지리적 차이를 위시하여 사회 문화적 배경, 사상, 논리, 종교, 신관(神觀), 삶의 지향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질성이 존재한다. 그런 상이성(相異性)에도 불구하고, ‘교육(敎育)’이라는 화두를 앞에 두면,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인간 성장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에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근대의 칸트, 몽테뉴, 현대의 화이트헤드, 듀이 등 교육을 언급한 몇몇 사상가들의 목소리를 율곡 이이의 시선에 오버랩해 보았다. 둘째, 『격몽요결』의 원문 해독에서, 직역(直譯)을 기본으로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과감하게 의역(意譯)으로 처리했다. ‘의역’은 단순하게 한문(漢文)의 글자 하나하나를 한글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문맥과 상황을 고려하여 뜻을 옮기는 일이다. 원문의 특정 용어나 구절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뜻과 분위기를 살려, 현대적 의미나 시대정신을 담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식의 단락도 나누고, 표점의 위치나 번역의 주술 구조나 연결이 원문과 달라지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고유용어가 현대식 개념어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다. 인용한 서양 사상가들의 교육론도 이에 준하여 해설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