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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어린 시절의 슬픔
2.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3. 내 영혼의 연가 4. 그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5. 장애인도 다같은 삶의 구성원이다 6. 남기고 싶은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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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섞여 온몸을 돌아다니다 구석구석 파고든 석회는 말랑말랑한 젤리 상태가 되었다. 손톱과 잇몸까지 젤리형 석회가 차기 시작했다. 석회 축적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젤리가 된 석회는 시나브로 굳어갔다. 물에 버무려진 시멘트가 다져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증상이 진행되는 동안 온몸이 옥죄는 고통에 시달렸다. 내 몸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참는 것뿐이었다. 그럴수록 내 몸은 내게 살려달라며 더욱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 고통은 머리만 남기고 온 몸을 땅속에 묻어버린 듯한 폐쇄 공포증을 불렀다. 석회가 생성될수록 파묻히는 듯한 압박감이 심화되었지만, 나는 그 정도로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 않았다. 석회가 빠질 때면 뼈 위에서부터 피부까지 홍시처럼 헐었다. 멀쩡하던 새살이 그 지경이 되니, 칼로 뼛속까지 긁어내는 듯했다. 뼈마저 군데군데 하얗게 드러났다. 그런 아픔도 날 무너뜨리진 못했다. 특정 부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신에서 그러다 보니 아예 지겨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p.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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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픔으로 깨달은 건 감사였다. 밥을 삼키기 힘겨워졌을 때 단지 음식물을 삼킬 수 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고, 숨쉬기가 힘겨워졌을 때 단지 고른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고, 중장애인이 되었을 때 단지 한 손가락, 한 손이라도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고, 온 몸이 중증의 돌 인간이 되었을 때 단지 머리와 몸통만 정상이어도 감사하다는 걸 뼈에 새겼다. 하나 덧붙이자면, 평형기관 마저 손상되었을 때 난 어느 생명체에게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 절절히 깨달았다.
--- p.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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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나는 극도의 초조감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한참 생기 발발하게 자라야 할 나이에 돌이 되어간다니... 너무도 서글프고 두려운 현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석회물질이 발과 턱을 뚫고 나왔다. 색깔은 새하얗고 촉감은 아주 부드러웠다. 핏기가 조금밖에 없어서 마치 딸기즙이 묻은 생크림 같았다. 한 1분이나 지났을까. 수분이 증발되자 그것은 금세 까칠까칠하고 단단한 돌가루로 변했다.
몸 속에서 생긴 하얀 시멘트가 급기야 살갗을 뚫고 밖으로 흘러 나오는 모습은 참으로 끔찍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전울이 퍼졌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이 혈관을 타고 거세게 휘몰아 쳤다. 이미 사태는 심각해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나오게 되는 영구치가 나오지 않아서 X선 촬영을 해보았더니, 치아가 나와야 할 곳에 석회가 가득차서 굳어지고 있었다. 마치 씨앗이 심겨진 화분 위를 콘크리트로 봉해 버린 것과 같았다. 그 당시 부모님은 병원에서 아무런 희망도 찾지 못하자 주위에서 좋다는 것은 모두 하시려고 한다. --- p.3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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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진식씨에게 찾아든 병마는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의한 각피 석회화증'이다. 쉽게 말해, 과다생성된 칼슘이 몸안에 축적되어 온 몸을 돌로 만드는 참혹한 질병이다. 지은이는 이 병으로 7살 때부터 다리를 절기 시작하여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절름발이'라고 놀림을 당할 정도로 눈에 띄게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 병의 실체나 심각성을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12살 무렵부터 몸 안의 석회가 살갗을 뚫고 몸 밖으로 나오는가 하면 한 발짝도 걸을 수 없게 되면서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이후부터는 줄곧 자리에 누워 지내야 했다. 물론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도 없었다. 몸 안의 석회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치료 방법도 없으며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이런 과정에서 지은이는 '죽음의 악령'과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정신병까지도 앓게 되었다. 그 모든 고통을 견뎌내면서 끝내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병마로부터 벗어날 가망은 전혀 없었다. 이미 폐를 잠식하고 있는 몸 안의 석회가 심장이나 혈관까지 마수를 뻗칠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일을 알 수 없는 절망과 불행 속에서도 지은이는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 속에서나마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몸부림쳤다. 독학으로 영어와 한문 공부를 하는가 하면 다방면의 독서와 시 습작에도 정성을 쏟았다. 또 컴퓨터도 열심히 익혔다. 3년 전부터는, 굳어버린 손에 볼펜을 끼고 컴퓨터 키보드를 한 자 한 자 눌러가며 인생기를 쓰기 시작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마침내 2년만에 초고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1년 가까이 그 원고를 다듬었다. 이 책에는, 짧으나마 행복했던 유년 시절, 다리를 절면서도 꿈만은 잃지 않았던 소년 시절, 죽음의 악령과 처절한 사투를 벌인 십대 후반부터 20대, 연탄 배달부와 청소부 등으로 묵묵히 일해온 아버지, 병원비 대느라 농사 품앗이, 식당 주방 보조 등 온갖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지켜준 어머니, 신앙을 갖게 되면서 겪은 마음의 변화,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힘이 되어준 사람들 이야기가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섬뜩하게 펼쳐지고 있다. 지은이는 "이제 죽고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한다. 죽음에 맞서 싸운 자신의 의지와 용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격려와 위안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0여 년 동안 누워서 잔혹한 병마와 싸워온 사람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절제되고 감성적인 문장이 돋보이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적잖은 감명을 안겨줄 듯 싶다. 여러 모로 살아가기에 힘든 세상이지만 박진식씨의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절망'을 입에 올리기 부끄러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