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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장 침식 - 어느 가족의 이야기 제2장 가을의 틈 제3장 심령사 S 씨 제4장 사당 제5장 동쪽에서 오는 것 제6장 종언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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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창 너머, 너도밤나무의 가느다란 줄기와 잎사귀가 사락사락 흔들리고 있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너울너울 춤추는 그림자가 천장을 뒤덮었다.
오늘로 끝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껏 후련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어쩌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랬는지도 모른다. --- 「첫 줄」 중에서 끝 간 데 없이 줄지은 나무의 행렬을 따라 형성된 길목은 어느 순간 툭 끊겼다. 끊기는 지점 위에 우뚝 선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무 사이사이로 불빛을 연신 쏘았다. 그러다 문득 반대편에서 빛이 넘어오는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방향을 따라 실제로 길이 얕게 나 있는 듯 보여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걸음걸음마다 음습한 기운이 불어닥쳤다. 잎사귀의 술렁거림이 누군가가 비웃어 대는 것처럼 들렸다. --- p.12 연유를 알 수 없는 공기의 현격한 변화에 서현이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였다. 아스라한 곳에서부터 두꺼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신경을 거슬리게 할 정도의 울음 다발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의미로 신경에 거슬리는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두꺼비의 울음소리가 오직 하나라는 것이었다. --- p.17 곧 하늘엔 악의를 눌러 담은 듯 시꺼멓고 기이한 형태의 구름이 연줄 나타난다. 그 속에서 섬광이 뒤틀린다. 이내 그 힘을 감당치 못했는지 일부를 바깥으로 뿜어낸다. 터져 나온 섬광 직후, 그 음습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고급스러운 독채에 서서히 내려앉았다. --- p.38 어머니가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매우 느릿하게. 어둑한 그림자가 어머니의 안면에서 꿈틀거렸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동공엔 광이 없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모습 자체가 어스름으로 뭉개진 흑백 그림처럼 보였다. 입을 굳게 다문 어머니는 무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 p.81 직감이 닿는 거리는 아득히 멀어져 버린 지 오래였다. 그만큼 시간이 지난 사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기형적인 사회엔 연민의 유통 기한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건 기억과 직결되어 상대성을 지닌다. 기억이 희미해져 갈수록 연민은 무뎌지는 것이다. 그 말인즉, 비슷한 경험이 없는 사람일수록 연민이란 어려운 법이다. 기억이 없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모르는 것이다. --- p.128 인두겁을 뒤집어쓴 짐승이 경석의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따금 인간을 흉내 내기라도 하듯 미소 짓고 소리 내어 웃으며 공감하기도 하고 의사소통을 위한 구체적인 언어 체계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인류의 사회적 약속을 보란 듯이 내뱉는다. --- p.169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장소에 있는 것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렇기에 여성의 얼굴이 뻥 뚫려 있는 꺼림칙한 모습이었어도 세령은 그리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대개 이런 폐건물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아지겠지. --- p.237 돌연 배 신부가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령이 고개를 끄덕거리려던 찰나, 귀에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고막을 바늘로 쑤시는 통증도 나타나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귀를 찔러 댔다. 세령은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귀를 막았다. --- p.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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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샤머니즘과 서구적 공포의 습하고 기괴한 만남
전작인 『귀우』와 『괴조도』에서 훌륭하게 일본 스타일의 오컬트 호러를 구현한 이다모 작가.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 『바엘의 집』은 실제 사건인 ‘시흥 악귀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한국 특유의 토속적 무속 신앙과 서구 오컬트의 상징인 ‘솔로몬의 72악마’ 설정을 파격적으로 결합한 초자연 미스터리 호러입니다. 숲속에 버려진 기괴한 사당에서 시작된 비극은, 한 가정을 잠식해 들어가는 악령의 전이와 퇴마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숨 막히는 공포를 선사합니다. 소설은 입시 스트레스와 가족 내 정서적 학대에 시달리던 소녀 서현이 산속 사당의 금기를 깨뜨리며 시작됩니다. 이 과정은 샘 레이미 감독의〈이블 데드〉에서 고대 서적을 읽어 악령을 깨우는 설정처럼 강렬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며, 이후 가족의 일상으로 파고든 악령이 신체적 변이와 기괴한 행동을 유발하는 묘사는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엑소시스트〉가 보여 준 압도적인 공포를 연상시킵니다. 특히 빙의된 서현이 뿜어내는 비린내와 두꺼비로 상징되는 토속적 괴이함은 한국적 정서와 결합하여 더욱 습하고 끈적한 공포의 질감을 만들어 냅니다. 서사 구조 측면에서 이 작품은 미스터리의 조각을 맞추는 치밀함을 보여 줍니다. 심령사 세령과 구마 사제 도결, 배 신부가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은 오노 후유미의 『고스트 헌트』처럼 전문적인 팀플레이의 묘미를 살리면서도, 동양의 무속과 서양의 구마 의식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지점에서 독보적인 개성을 획득합니다. 또한 장르적 전형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적 공간이라는 현실적 배경 위에서 생생하게 구현됩니다. 『바엘의 집』은 단순한 오컬트 호러를 넘어, 한국 사회의 병폐인 과도한 교육열과 가정 내 소외라는 묵직한 주제를 악령의 침식 과정과 병치시킵니다. 부모의 욕망이 빚어낸 정서적 빈틈을 타고 들어온 악마는 결국 정의를 위해 불의를 저지르고 진실을 피하기 위해 목을 매다는 인간의 모순을 비웃으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적 샤머니즘의 기괴한 미학과 서구 오컬트의 파괴적 공포가 완벽하게 융합된 이 소설은, 현대 장르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보여 주는 수작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여러분은 귓가에 맴도는 두꺼비의 울음소리와 코끝을 스치는 서늘한 비린내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