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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위문화로서의 대중음악
TV를 꺼라 : 위험한 꿈 문화, 관계, 이데올로기 하위문화의 조건 2. 서울, 1992년, 스타 탄생 심의번호 9509-6862-6870 : 공륜 VS 서태지 누가 서태지를 두려워하는가 한국의 대중음악 : 무력했던 과거 난 알아요 : 서태지의 1차 변신 우리들만의 추억 : 공감대 만들기 교실 이데아 : 강을 건너다 3. 1990년대 초반,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 새로운 정부와 새로운 TV 배금주의, 일류주의,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적대주의 신세대의 출현 : 또 다른 교착 4. 서태지식 표현법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닮을 순 없네 : 규칙위반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 서태지와 패션 Come Back Home : 낙오자 정서에의 어필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부정 내 맘이야 : 내 생각은 다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도 다르다 이미지 메이킹 : 자기관리인가 마케팅 전략인가 교실 이데아와 여고괴담 넌 왔다 갔어, 이런 날벼락이 : 서태지식 은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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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는 또한 우리 가요계에 몇 가지 새로운 패턴을 도입하였다. 우선 '앨범 발표 → 일정 기간 활동 → 잠적 → 새 앨범 발표'라는, 이제는 거의 공식이 되어버린 연예활동 사이클을 처음으로 극명하게 보여준 것도 서태지였으며, 텔레비전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추는 것이 인기 유지에 마이너스가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니 오히려 끊임없이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도 서태지였다. 또한, 무리한 스케줄에 맞추어 이러저러한 음악 외적인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도 인기 유지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도 서태지였다. 오히려 서태지의 경우엔 그토록 충실한 자기관리가 끝까지 그를 '신비한 존재'로 남아 있도록 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절대적인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 pp.12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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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서태지 이전에도 공륜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며 건재해 왔다. 또한 물론 서태지 이전에도 공륜과 마찰을 빚었던 음악인들도 있었다. 최근의 예로써, 1992년 가수 강산에의 데뷔 앨범 <돈> 역시 공륜의 심의 때문에 가사 없이 반주만 발표된 적이 있으며, 가수 정태춘은 사전 심의를 아예 거부한 채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음악인의 창작성을 고려치 않는 공륜의 관료주의를 비난하는 소수의 진보적 언론도 존재해 왔다. 그리고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에 의하여 여하튼 공륜의 음반 사전 심의는 곧 폐지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점에서 서태지와 공륜의 시끌벅적한 전면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하여 우선 사건의 내용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지극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이 사건은 공륜의 기존 제도에 서태지라는 음악인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음반의 제작이 모두 끝난 시점에서 공륜의 몇몇 근엄한 담당자들이 노랫말 몇 부분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라고 지시한다. 작곡, 작사, 제작자인 서태지는 공륜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발하지도 않는다. 그가 택한 방법은 문제가 되었던 노랫말 전체를 조용히 삭제한 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만일 서태지가 당시 서태지의 위치에 있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공륜에 의하여 피해를 입은 또 하나의 예로 끝났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서태지는 스타였으며 일부 10대들에게는 영웅과 같은, 대통령과 같은 존재였다. 또한 그전 음반인 3집 앨범을 통하여 서태지는 '아이돌 스타(idol star)'의 위상을 벗어 던지고 실험적이며 진보적인 음악인으로서의 평가를 받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서태지로 대표되는 특정 문화가 특정 10대 팬들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이곳저곳에 있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이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 pp.5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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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또 한 번의 '금지된 도전'이 시작된다!
이 책은 딕 헤브디지의 하위문화 이론을 차용하여 과연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도 그러한 모델을 적용하여 설명할 수 있는가를 시도한 것으로, 그 대상은 '서태지'이다.
서태지는 1990년대 대중문화계의 한 사건이자 상징적인 존재이다. 서태지의 등장은 대중문화 안에서의 대중음악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이른바 '신세대'의 부상과 때를 같이한 서태지의 출현은 그로 대표되는 신세대 취향의 음악을 대중음악의 주류로서 자리잡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탄탄한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대담한 실험성을 보여준 서태지의 음악적 편력은 서태지 한 개인의 음악적 성취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뛰어난 실험 정신은 그때까지 성인 취향 가요를 주류로 하고 있던 우리 대중음악계의 변방에서 명맥을 유지해가던 비주류 음악의 전면 부상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서태지 현상을 하위문화의 입장에서 조명해본 대중문화서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딕 헤브디지는 하위문화를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험된 모순과 반대가 간접적으로 나타내어지는 저항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였다. 하위문화에 대한 헤브디지의 정의는 두 가지 논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특징 사회에서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것이며, 또 하나는 그에 대한 모순과 반대 입장의 '간접적인 표현'의 문제이다. 서태지가 등장하던 1990년대 초반은 우리 사회 변화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군사정권이 문민정권으로 교체됨으로써 당시의 젊은 세대들은 반군사정권 시위나 이념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경제적 팽창은 사람들의 정서를 극단적인 물질 숭배주의로 이끌어 갔으며, 여기에 뿌리 깊은 일류주의가 더해짐으로써, 사회 여러 계층들 사이에 반목을 초래하였다. 또한 신세대의 등장은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간의 격차를 한층 더 넓혀 놓았다. 데뷔 앨범에서부터 은퇴를 발표할 때까지 4년 동안 서태지가 보여준 것은 신세대적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서태지는 하위문화의 본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전설적인 성공을 이룸으로써 사회적 편견에 도전하였다. 그는 이른바 '낙오자' 정서에 어필하였으며, 동시에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대항하였다. 국가의 통일정책이나 교육정책에 대한 서태지의 '공개적'인 의견 발표는 대중음악에 무관심했던 국내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태지는 한국 사회에 '하위문화'라는 새로운 이슈를 부상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