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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장 켈트 족과 로마인 [골 지방의 선사 시대]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켈트 문화의 성립과 발전] 골 지방의 새 주인, 켈트 족 켈트 족의 정치와 사회 숲의 희생 제의, 드루이드교 골 지방의 그리스 식민지, 마살리아 [로마의 진출과 갈로-로마 문명의 형성] 로마의 침입과 켈트 족의 저항 로마의 골 지방 지배 [도시와 농촌의 로마식 생활] 갈로-로마의 종교 라틴 문화의 보급 [게르만 족의 위협과 갈로-로마 지역의 개혁] [게르만 족의 위협] 황제들의 개혁 정치 기독교의 공인과 발전 프랑스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제2장 중세의 형성 [게르만 족의 침략] 게르만 사회 게르만 족의 침략 로마 제국의 붕괴와 갈로-로마 문명의 와해 [메로빙거 왕조] 클로비스의 개종 장원제와 봉건제의 맹아들 [카롤링거 왕조] 궁재의 성장과 카롤링거 왕조의 성립 샤를마뉴 대제 샤를마뉴 제국의 분열 [카페 왕조의 성립] 이민족의 침입 지방분권화의 촉진 카페 왕조의 성립 [봉건 사회의 완성] 봉건 사회로의 길 삼신분 사회 [교회의 세속화] 제3장 중세의 발전 [11세기의 경제 부흥] 위대한 개간 상업과 도시의 부활 [카페 왕조의 왕권 강화] 뚱뚱보 루이 6세 루이 7세 필립 오귀스트 루이 8세 루이 9세 필립 3세 필립 4세 왕권을 강화시킨 요인들 [기독교의 개혁과 팽창] 수도원의 개혁 교황들의 개혁 알비주아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 [신의 평화 운동] [문화와 학문의 발전] 중세의 대학 스콜라 철학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세속 문학의 발달 기사도 [중세의 소외 집단] 이단- 마녀와 마법사 유대인 매춘과 동성애, 문둥병 제4장 중세의 황혼 [중세 말기의 재앙들] 14세기 경제의 쇠퇴 흑사병 전쟁과 반란 [백년 전쟁과 왕권의 강화] 백년 전쟁의 원인 백년 전쟁 전기 백년 전쟁 후기 백년 전쟁 이후의 강화된 왕권 왕권을 강화시킨 요인들 [기독교의 쇠퇴] 교회의 대분열과 아비뇽 교황청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 신비주의와 경건주의 [조락하는 중세 문화] 부르고뉴 공국의 귀족 문화 죽음의 춤 종교극의 발전 제5장 새로운 시대의 시작 [경제의 발전] 16세기적 현상 도시의 생활 [절대왕정을 향해]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 대한 야망과 좌절 위그노 전쟁 위그노 전쟁의 종결과 왕권 강화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프롱드의 난 태양왕 루이 14세 무모한 대외 전쟁 절대왕정의 토대들 [종교적 갈등] 종교적 개혁주의와 위그노 얀센주의의 등장 가톨릭교회의 반동 종교개혁 갈리카니즘의 후퇴 [문화적 부흥] 세련된 귀족 문화의 형성 바로크와 고전주의 인쇄술의 발달과 지식 생활의 향상 인문주의와 속어 문학의 발달 제6장 이성의 시대 [경제성장] 국제 무역의 발달 가내공업의 발달 부르주아의 성장 중농주의 [무능한 왕들과 재정 위기] 오를레앙 공의 섭정 루이 15세 시대의 추락 루이 16세와 재정난 [가톨릭의 침체] [계몽 시대의 문화] 로코코 양식 계몽 사상가들 계몽 사상의 보급 제7장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국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 [대혁명의 발생과 경과] 삼부회의 소집 국민의회 시대 입법의회 시대 국민공회 시대- 공화국의 탄생 총재정부 시대 프랑스 대혁명은 사회혁명인가 정치혁명인가 [나폴레옹 제국] 나폴레옹의 국내 정책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 나폴레옹 제국의 위기 백일천하 [비기독교화 운동] [공화주의적 정치 문화의 등장] 제8장 공화제를 향한 시련들 [공화주의적 정통성의 확정] 복고왕정 7월 혁명과 7월 왕정 2월 혁명과 제2공화정 루이 보나파르트와 제2제정 파리 코뮌 제3공화정 공화제의 위기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의 성장] [19세기의 문화사조] 낭만주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제9장 세계대전과 오늘날의 프랑스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내외 정세 제1차 세계대전의 발생 전후의 정치적 혼란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의 발생 페탱의 비시 정부 드골과 레지스탕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재건] 제4공화정의 정치적 혼란 드골의 제5공화정 미테랑의 사회주의 정책 [20세기 프랑스 문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문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문화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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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프롱드 난을 겪은 루이 14세는 그로부터 많은 정치적인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강력한 재상은 국민의 저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과 국민의 저항 앞에서 약한 왕은 한없이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그래서 성년이 된 루이 14세는 재상을 두지 않고 직접 강력한 친정(親政)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그는 그 어느 왕보다 강력한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흔히 그를 ‘태양 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루이 14세에 의해 프랑스의 절대왕정 체제는 완성되었다. 절대왕정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지방 귀족들의 세력을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루이 14세는 그 점에 있어 유화정책을 사용하였다. 그는 지방 귀족들은 중앙 귀족으로 흡수하였다. 그는 그들을 베르사유 궁 주위로 불러들여 연금을 하사하고 매일 연회를 베풀었다. 루이 14세의 풍성한 대접을 받은 귀족들은 그 대가로 그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바치고 엄격한 예의를 지켜야 했다. 루이 14세는 그 외에도 하층민 출신의 장관을 임명해 장관해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봉인장 제도를 확립해 고문관 회의를 강화하였다.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절대적 권력을 휘두른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에 근거해 자신을 지상에서의 신의 대리자라고 장담하였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그의 주장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 말 그대로 그 개인은 국가를 대변하였다. 그의 개인적 취향이 그 시대의 취향이 되었으며 그의 사생활이 국가의 공적 기능이 되었다. -제5장, <새로운 시대의 시작>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