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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가의 후손 허균
2. 오만한 신동 3. 스승 이달과 유성룡 4. 연이은 불행 5. 피난길에 아내를 잃다 6. 이어지는 출세와 탄핵 7. 여우나 뱀의 정령 8. 뜻대로 되지 않는 제 세상일인 것을 9. 애끓는 서얼들의 상소 10. 과거 부정 사건 11. 아아, 홍길동 12. 적과 손을 잡다 13. 불안한 상소문 14. 역적 허균 15. 사형에 처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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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곧바로 예문관 검열, 춘추관 기사관이 되었다. 기사관은 역사에 남길 여러 가지 일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거기서도 잠깐, 허균은 다시 세자 시강원 설서로 승진하였다. 설서는 정칠품 벼슬이었다.
세자 시강원은 장차 임금이 될 세자를 교육시키는 기관이다. 세자에게 경서와 장차 임금으로서 마음에 새겨야 할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게 허균의 임무였다. 세자 시강원에 들어가려면 인품과 학문이 뛰어나야 한다. 허균이 그 자리에 파격적으로 등용된 것은 그의 학문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학식과 덕망은 있었으나 실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균보다 4살 어린 세자 광해군은 총명하였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끝까지 파천을 반대했다. 몽진중에도 의병을 모집해서 싸우도록 했고 나라를 이끌어 가는 데 대한 나름대로의 복안도 가지고 있었다. 광해군은 허균의 탁월한 식견과 뛰어난 시문에 감탄했다. 특히 허균의 관리를 어떻게 뽑아 써야 할 것인가를 논한 '유재론'과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밝힌 호민사상에 크게 공감했다. 시강원의 일개 설서와 임금자리에 오를 세자는 하늘과 땅 같은 사이였지만 그들은 세자와 신하 사이를 떠나 젊은 의기로 투합했다. 그때 허균은 일찍이 '임금과 신하 사이는 수직이 아닌 수평이 돼야 한다'고 말한 남명 조식의 말을 상기하였다. ---pp.73-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