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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Paul Dubois
장폴 뒤부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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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폴 블릭이다. 나이는 54세, 삶에 대한 두 가지 전망 사이에서, 모순되는 두 세계 사이에서 망설이는 거북한 나이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에는 세월에 따라 주름이 늘어간다. 규칙적으로 칼슘과 협심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다 그렇듯이 담배를 끊었다. 나는 혼자 살며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늙어간다. 두 아이와 손자를 자주 만나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손자가 어린 나이(이제 곧 다섯 살이 된다)인데도 나는 이따금 그 아이의 얼굴에서 형에게서 보았던 어떤 표정을 발견한다. 뱅상이 길지 않은 삶을 통해 드러내 보였던 그 확신과 침착함 또한 발견한다. 내 형을 쏙 빼닮은 아이는 평온한 에너지를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탐색하는 듯 빛나는 그의 눈빛과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당혹스런 경험이다.
--- p.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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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두 권의 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프랑스의 나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주요 품종을 총 망라하는 겁니다. 두 번째 ‘세상의 나무’는 컨셉은 같지만 이번에는 지구 전체로 확장시켜 작업을 하는 겁니다. 이 작업의 매력은 무엇보다 사진이 훌륭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에 달렸죠. 예전에 스타들이 스튜디오에서 사진 찍을 때 작가들이 얼마나 공들여 찍습니까? 그런 거랑 똑같죠. 나무 하나하나를 그만큼 공들여 찍어주기를 바랍니다. 내 말 알겠죠? 빛과 촬영 각도와 원근의 중요성을 말하는 겁니다. 장이 선생 작품을 보여주었죠. 그게 바로 내가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부분의 사진 작가는 천분의 일 초 동안에 일어나는 움직임의 이미지를 찍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안목이나 재능은 아주 드물거든요.”
“나무를 선택하는 사람은 누구죠?” “바로 선생입니다. 나무를 직접 찾아다니고 수집하는 엄청난 작업일 겁니다. 선생은 탐색 여행을 통해 계절에 따라 침엽수와 낙엽수와 즐겁게 놀아야 할 겁니다. 한 종류의 나무를 작업할 때, 아마 며칠이 걸려서라도 종류는 같으나 모습은 다른 각각의 나무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전형을 찾아내야 할 겁니다. 선생에게 하나의 증거처럼 인정되는 것을 말이죠. 매번 선생은 숲을 아우르고 압도하는 나무를, 오로지 한 그루의 나무만을 찾아야 할 겁니다. 그래서 마침내 진주와도 같은 귀한 나무를 찾아내면, 우리의 멋진 나무가 그 무리에서 돋보이도록 주변이 탁 트인 공간이어야 할 겁니다. 인내와 까다로움을 요구하는 아주 긴 노역입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끌어당길 수는 없었다. 내가 보기에 이런 발상은 완전히 비현실적 이어서 내 야심으로만 끝날 것 같았다. 세상을 바라보고 감탄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것,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 숲의 은신처에서 사는 나무를 알고 대지를 배울 것, 시간의 태엽 감는 장치를 잊고 다만 그 흔적 위에서 어슬렁거릴 것,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둘러싼 것들의 아름다움을 초월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모든 것으로 사진 하나하나를 가득 채우는 것에 대해 그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벌써 내가 잘 알고 있던 서양삼나무 아래에서 프레임과 햇빛을 찾고 있었다. --- p.22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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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살 드러낸 프랑스, 그들의 상처뿐인 자화상! - 페미나 문학상 수상작, 장 폴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
2004년을 장폴 뒤부아의 해로 만든 소설 『프랑스적인 삶』이 출간(도서출판 밝은세상 간)되었다. 작가의 열두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으며, 그 해 연말 프랑스 사상 처음으로 공쿠르, 페미나, 르노도, 앵테랄리에 상 후보에 동시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결국 이 소설은 100년 전통의 페미나 문학상을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만큼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소설이 프랑스 독자들로부터 압도적인 공감을 얻어낸 비결은 무엇인가? 아마 그것은 프랑스 인들이 겪어온 격변의 시대를 이 소설의 주인공 폴 블릭의 반세기를 통해 다시금 더듬어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골 장군의 등장과 함께 암울했던 어린 시절, 1968년의 퐁피두 대통령과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성의 충동에 사로잡혔던 청소년기, 성인이 된 1970년대와 지스카르 대통령, 결혼과 비밀스런 혼외정사로 점철된 1980년대와 미테랑 대통령, 죽음으로 종결되는 아내의 배신, 어머니의 임종, 딸의 정신착란과 시라크 대통령 시대까지, 폴 블릭의 삶에는 프랑스의 정치 역정이 그대로 투영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비정치적이다.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한 대통령의 이름들은 오직 시대와 상황을 대변할 뿐이다. 폴 블릭은 공화국 대통령의 이름들처럼 영웅화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조류에 휩쓸리는 난파선처럼 시대의 이끌림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무능력자에 가깝다. 삶의 길을 찾는 무정부주의자, 사주의 딸과 결혼하는 스포츠 지 기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무 사진을 찍어서 유명한 사진가가 되지만 무력한 남편, 게으른 연인, 있으나마나 한 아버지, 피곤에 지친 봉급 생활자로서의 삶이 폴 블릭의 생애를 가로지른다. 뒤부아는 왜 이토록 무능한 인물에게 애착을 보이게 된 것일까? 그것은 우울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주인공 폴 블릭의 삶에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폴 블릭이라는 인물 안에는 모든 흐름에 삶을 떠맡기는, 그러면서도 모든 삶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는 그런 꼭두각시가 내재해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여러 번 포복절도할 만큼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때로는 화가 나서 웃고, 때로는 연민 때문에 웃는다. 뒤부아가 부조리하고 하찮고 비겁한 이 세계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폴 블릭처럼 우울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결여된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폴 블릭의 동급생인 14세 소년의 황당하고 기발한 자위장면에서는 눈물이 쏙 빠지게 웃음이 나는가 하면, 비행기 사고로 죽은 아내 곁에 나란히 누워 있는 그녀의 숨겨진 정부의 모습을 바라보며 삶의 기가 막힌 아이러니에 한방 얻어맞기도 한다. 아들의 친구를 유혹하는 여자, 남편 몰래 외도해 낳은 자식을 고집스럽게 키우는 여자,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가는 남편, 아내와 자식을 쏘아죽이고 자살하는 정신분석학자 등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끝없이 망가지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극적인 환경으로 내몬다. 마치 욕망과 사랑, 이별과 상실의 아픔 속에서 존재의 위기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 우리의 삶임을 말하는 듯하다.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폴 블릭은 완전히 버림받은 느낌과 고독 속에 있게 되지만 지푸라기 같은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이 프랑스 남자의 아름다운 초상을 들고 뒤부아는 우리에게 말한다. 결국, 삶에는 아직 미래가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