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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 5
제1장 도 입 Ⅰ 헌법재판의 의의와 기원 | 29 1. 의의 29 2. 기원 31 Ⅱ 헌법재판소와 국회와의 관계 | 32 Ⅲ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관계 | 35 1. 일반법원의 헌법재판 35 2. 재판소원의 문제 36 3.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 37 4. 헌법재판소의 구성 40 Ⅳ 헌법재판소와 행정부의 관계 | 40 Ⅴ 통치 구조 안에서의 헌재의 역할 | 41 제2장 헌법재판소 Ⅰ 헌법재판소의 지위 | 47 Ⅱ 헌법재판소의 조직과 구성 | 48 1. 헌법재판소 재판관 48 2. 헌법재판소장 58 3. 재판부 61 Ⅲ 참고 | 62 1. 사건번호 62 2. 통계 63 제3장 전제되는 논의 Ⅰ 법단계설 | 67 Ⅱ 위헌과 기본권 침해 | 70 Ⅲ ‘법률’과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 | 73 Ⅳ 합헌과 비위헌 | 75 제4장 일반심판절차 Ⅰ 당사자와 대리인 | 81 1. 당사자 81 2. 변호사강제주의 85 3. 대리인과 당사자의 소송행위 85 Ⅱ 심판의 청구와 보정 | 86 1. 심판의 청구 86 2. 보정 86 Ⅲ 주장책임과 입증책임 | 88 Ⅳ 변론 | 89 Ⅴ 평결 | 89 Ⅵ 심판비용 | 93 Ⅶ 심판기간 | 94 Ⅷ 규범 심사에 있어서의 심판 대상 특정 | 96 제5장 가처분 Ⅰ 의의 | 103 Ⅱ 요건 | 104 1. 형식적 요건 104 2. 실체적 요건 105 Ⅲ 결정 | 107 제6장 종국결정 Ⅰ 결정서의 작성 | 113 Ⅱ 결정의 효력 | 117 1. 확정력 117 2. 기속력 119 3. 법규적 효력(일반적 구속력) 124 Ⅲ 결정의 실효성 확보 | 127 제7장 재 심 Ⅰ 의의 | 133 Ⅱ 재심의 허용 여부 | 133 1. 위헌법률심판·헌재법 제68조 제2항의 헌법소원심판 133 2. 탄핵심판 134 3. 정당해산심판 134 4. 권한쟁의심판 135 5. 헌재법 제68조 제1항의 헌법소원심판 135 Ⅲ 재심사유 | 136 제8장 위헌법률심판 Ⅰ 의의 | 141 Ⅱ 위헌법률심판제청 절차 | 142 1. 개관 142 2. 당사자의 신청 143 3.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 149 4. 재판의 정지 151 5. 재판의 재개 151 Ⅲ 심판의 대상 | 152 1. 헌법 152 2. 법률 152 3. 관습법 154 4. 긴급조치 157 5. 조약 163 6. 긴급재정경제명령·긴급명령 166 7. 입법부작위 166 Ⅳ 재판의 전제성 | 169 1. 도입 169 2. 재판이 계속 중일 것 169 3. 적용될 것 179 4. 다른 내용의 재판을 할 것 181 5. 특수 문제 199 6. 재판의 전제성 요건의 심사 200 7. 헌법적 해명 또는 반복침해 가능성 201 Ⅴ 심사기준 | 203 1. 모든 헌법 규정 203 2. 현행 헌법 204 3. 직권주의 207 Ⅵ 헌재법 제68조 제2항 헌법소원심판(헌바소원) | 208 1. 본질 208 2. 적법 요건 212 3. 재판의 불정지 220 4. 병합청구 가능성 220 Ⅶ 종국결정 | 225 1. 종류 225 2. 단순위헌 결정 225 3. 한정위헌 결정 246 4. 헌법불합치 결정 260 제9장 헌재법 제68조 제1항의 헌법소원심판 Ⅰ 개요 | 285 1. 헌법재판소법 제68조의 구성 285 2. 의의 287 3. 법적 성격 287 Ⅱ 기본권 주체성 | 292 1. 도입 292 2. 국민인 자연인 292 3. 외국인 295 4. 법인 299 5. 공무원 303 Ⅲ 공권력 행사성(심판의 대상) | 305 1. 도입 305 2. 헌법(부정) 305 3. 법률 307 4. 행정작용 323 5. 사법작용 342 Ⅳ 기본권침해가능성 | 352 1. 도입 352 2. 기본권 353 3. 침해가능성(기본권 제한) 361 4. 공권력 행사성과의 관계 364 5. 주장책임 365 Ⅴ 자기관련성 | 367 1. 원칙 367 2. 예외 370 Ⅵ 현재성 | 375 Ⅶ 직접성 | 377 1. 의의와 취지 377 2. 구체적 검토 380 3. 특별한 사례들 392 4. 정리 402 Ⅷ 보충성 | 405 1. 의의 405 2. 법령소원 407 3. 원행정처분 412 4. 예외 414 5. 각하 사례 421 6. 정리 423 Ⅸ 권리보호이익 | 425 1. 의의와 취지 425 2. 존속시점 427 3. 심판의 이익 427 4. 집행행위가 있는 경우의 법령소원 432 5. 정리 436 Ⅹ 청구기간 | 438 1. 일반론 438 2. 적용 438 3. 날짜 계산 440 4. 정당한 사유 443 5. 국선대리인 선임 신청과 청구기간 445 6. 법령소원과 청구기간 446 Ⅺ 변호사강제주의 | 455 1. 의의 455 2. 국선대리인 선임제도 455 Ⅻ 종국결정 | 458 1. 주문 458 2. 구체적 검토 461 3. 부수적 위헌 결정 466 4. 정리 469 제10장 권한쟁의심판 Ⅰ 도입 | 473 Ⅱ 유형 | 474 1. 도입 474 2. A형 권한쟁의(권한확인형) 474 3. B형 권한쟁의(처분취소형) 478 4. 결론 486 Ⅲ 요건 | 490 1. 당사자 490 2. 처분 또는 부작위 502 3. 권한의 침해 또는 침해할 현저한 위험 510 4. 청구기간 512 5. 심판의 이익 515 Ⅳ 결정 | 519 1. 변론 519 2. 가처분 519 3. 심판정족수 520 4. 주문 522 5. 결정의 효력 534 Ⅴ 행정소송법상의 기관소송과의 관계 | 535 Ⅵ 정리 | 542 제11장 탄핵심판 Ⅰ 도입 | 551 1. 의의 551 2. 성격 551 3. 대상 552 4. 탄핵 사유 554 Ⅱ 탄핵소추 의결 | 555 1. 발의 555 2. 의결 555 3. 탄핵소추 의결의 효과 558 Ⅲ 심판절차 | 560 1. 탄핵심판의 청구 560 2. 당사자 560 2. 변론 563 Ⅳ 결정 | 565 1. 인용 결정 565 2. 기각 결정 567 3. 각하 결정 568 Ⅴ 재심 | 569 제12장 정당해산심판 Ⅰ 도입 | 573 Ⅱ 절차 | 574 1. 청구 574 2. 가처분 575 3. 심리 575 Ⅲ 해산 사유 | 576 Ⅳ 결정 | 578 Ⅴ 결정의 효력 | 579 Ⅵ 재심 | 581 |
鄭柱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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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정한다. 국민이 다 모여 결정하지 못하니 대표로 구성된 국회를 만들었다. 그러면 그들의 결정을 믿어야 한다. 그들의 결정이 헌법이 정한 범위 안에 있으면, 그들의 결정이 옳다고 믿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공동체의 근본 가치로 결단한 귀결이다.”
---「서문」중에서 “재판문서는 ‘논리적으로’ 멋진 문장이어야 한다. 재판의 대전제가 되는 법으로부터 결론에 이르게까지 논리적인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앞말이 정확한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의 부름을 정확히 따라가는 그 엄정함이 없으면 재판문서가 아니다. 이런 문서의 결론만이 재판관의 의지가 아니라, 법의 의지의 실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서문」중에서 “필자의 주장이 딱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할 수 없다, 필자는 말랑말랑한 감정을 생산하여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머리로 생각한 것을 세상에 팔고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다. 실무를 하는 사람들은 좀 더 세상에 따스한 시선을 가져도 좋겠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절충설은 실무가의 것일 수 있으나 이론가의 것일 수 없다.” ---「서문」중에서 “필자는 교과서가 법학을 망친다는 생각을 한다. 팔리는 교과서를 지향하는 순간, 자신의 아이디어보다는, 어떤 것이 다수설이고, 판례가 무엇인가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무난한 결론이 지향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법학을 망친다. 대학은 어느 선생에게 배우는가에 따라 다른 것을 배우는 곳이다.” ---「서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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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서문 ]
이 책을 쓰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다룰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수준에서 논의를 마칠 것인가, 아니면 학리적으로 필자가 다루고 싶은 논점을 모두 다룰 것인가. 대개의 세상사가 그렇듯이 타협점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느 쪽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어정쩡한 책으로 되고 말았다. 거기에 필자의 말재주가 부족하니 더욱 그렇게 되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필자는 헌법재판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 일이 많다. 재판은 법을 실현하는 절차다. 법을 만드는 절차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념이다. 국회는 국민의 뜻을 좋아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이를 집행한다. 사법기관은 그 법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를 체크한다. 크게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권력분립은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헌법재판은 주로 헌법의 규범력을 보장한다. 국민이 헌법재판소에 건네준 헌법을 들고 재판을 하면 필요하고도 충분하게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거기에 관습헌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을 창조하는 것은 헌재에 주어진 역할이 아니다. 나아가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판하면 필요하고도 충분히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절차법이 없어서 헌법을 실현해 낼 수 없으면,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입법자에게 호소하여야 한다. 이런저런 절차적 흠결로 인하여 헌법을 실현해 낼 수 없다. 그 호소를 듣고 입법자가 새로운 법을 만들어 주면, 재판소는 그 절차법을 들고, 헌법의 실현을 도모할 수 있다. 헌법재판을 안 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걱정은 지나친 것이다. 헌법재판이 없는 나라가 그것을 이유로 망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도리어 과잉된 헌법재판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진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수도이전 사건을 예로 든다. 거기서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창조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까지 끌려 나왔다. 그래도 위헌이라는 결론을 낼 수 없음을 파악하고는, ‘법률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는 그 전에 듣지 못하였고, 그 후로도 듣지 못할 법리를 만들어 내고, 이를 원용하여 위헌 결정을 하였다. 그래서 그 뒤에 우리가 어떤 비용을 치르고 있는가는 모두가 아는 것이어서 말을 보태지 않는다. 필자는 헌재가 법령을 대상으로 하는, 헌재법 제68조 제1항의 헌법소원을 전부 부적법한 것으로 본다. ‘법률’은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다.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것’이 공권력의 행사라고 보는 입론은 지금의 헌재 이론보다는 낫다. 필자는 우리 법공동체의 최고 원리라 할 민주주의적 결정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명확하고 분명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해석을 방해하는 법률이 있다면 그 주장은 나아가기를 멈추고 그 해석이 옳은가를 재검토하여야 한다. 그리고 법률이 정한 바를 준수하지 못하면 또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그 해석을 뒷받침할 법률이 부족하다면 다시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있는 법률은 정해진 대로 적용하면서 재판을 하지 못하면 다시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법률’은 ‘공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공권력 행사의 결과물’ 아닌가 하고 누가 물으면 다시 멈추어서 생각하고 대답하여야 한다. 왜? 민주주의는 법률가가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우리 공동체의 근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권한쟁의심판은 또 어떠한가? 이 부분은 이 책에도 상세히 실려 있다. 필자가 보기에 헌재가 다루고 있는 권한쟁의 사건 중 90% 이상은 부적법한 것이다. 왜 그런가? 헌재법이 예정한 권한쟁의심판은 ‘권한의 유무 또는 범위’의 확인을 구하는 확인의 소에 해당한다. 그런데, 헌재가 심판하고 있는 권한쟁의심판의 대부분은 ‘권한의 유무 또는 범위’에 관해서는 다툼이 없고, 단지 피청구인의 ‘처분’의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구하는 항고소송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질적인 두 가지가 하나의 이름,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다루어지고 있다. 혼선이 없으면 이상하다.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나라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재판’을 하였다고 칭찬받기는 어렵다. 원칙과 예외에 관하여 한 마디를 보탠다. 헌법재판소의 거의 모든 재판이론에는 예외가 있다. 예외가 없는 재판이론이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이렇게 예외이론이 왕성하면 재판은 예측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기본적인 판례이론을 가지고 판단해 보면 각하될 것으로 보이는데도 헌재는 당해 사건에는 예외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르겠다. 물론 필자가 아는 바가 적으니 언제 그 예외가 적용되는지를 짐작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누가 그 예외 이론의 적용을 짐작할 수 있는가? 필자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예외들의 많은 수가 재판관이 결론을 탐낼 것 같은 사건들에 도입된다. 그러면 의심받는다. 큰 사건일수록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위에서 든 수도이전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른 통상의 사건이라면 100번을 청구해도 100번 모두 각하되었을 것이다. 모든 이론적 가능성을 친절히 검토하여, 이러저러한 입론이 가능하다면 적법할 수도 있으므로 본안에 나아가 심사를 해 보겠다고 판단한 사례가 이 결정 외에 달리 있는가? 이 친절함을 발휘한 사례가 달리 있는가? 이 친절함의 원천은 어디인가? 판례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중에 있을 재판의 결론을 예측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원칙과 예외가 서로 몸을 섞고 춤을 추면, 그 자식을 알아보기 어렵다. 재판관의 입을 통해서만 그 결론을 알 수 있다면, 법학은 業을 廢하여야 한다. 위헌법률심판의 적법요건을 이루는 재판의 전제성 요건은, 그냥 ‘위헌 여부에 따라 재판의 결론이 달라지는가’, 이것 하나를 물으면 필요하고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복잡한 말을 왜 섞는지 모르겠다. 그 말들이 결론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정한다. 국민이 다 모여 결정하지 못하니 대표로 구성된 국회를 만들었다. 그러면 그들의 결정을 믿어야 한다. 그들의 결정이 헌법이 정한 범위 안에 있으면, 그들의 결정이 옳다고 믿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공동체의 근본 가치로 결단한 귀결이다. 재판관은 그냥 국민 중의 9명일 뿐이다. 그 9명의 결정이 국민의 대표들에 의한 결정보다 더 낫다는 것을 어떻게 보증하는가? 그들이 법 해석의 전문가일지는 몰라도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역량에 관해서는 전혀 심사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제로 그들이 임명된 것도 아니다. 재판관은 헌법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선출되었다. 그것뿐이다. 헌법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이성,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다. 그것뿐이다. 그들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것을 전제로 하였다면 그것을 결정할 능력들을 소지하고 있는가가 검토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헌법 나아가 법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 외에, 그들은 그냥 국민들 중의 9명일 뿐이다. 이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법률가는 테크니션이다.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그들의 과업이 아니다. 재판문서는 ‘논리적으로’ 멋진 문장이어야 한다. 재판의 대전제가 되는 법으로부터 결론에 이르게까지 논리적인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앞말이 정확한 뒷말을 부르고, 뒷말이 앞말의 부름을 정확히 따라가는 그 엄정함이 없으면 재판문서가 아니다. 이런 문서의 결론만이 재판관의 의지가 아니라, 법의 의지의 실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필자는 헌재의 결론에 의심이 많다. 본안에 관한 헌재 결정은 거의 과잉금지원칙 또는 평등권의 심사로써 결판이 난다. 그 심사 기준들은 논리적으로 정교하고, 헌재에 의하여 잘 운용되고 있는가?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과잉금지원칙은 논리적으로는 정교할지 모르나, 그것을 잘 운용하기는 어렵다. 과잉금지원칙을 잘 운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이 필요한데, 헌재는 전혀 그 자료들을 확보하지 아니하고도 척척 결론을 내놓는다. 그 결론은 어디서 나오는가? 입법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입법목적을 확정한다. 달성될 공익의 양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침해되는 기본권의 양이 얼마인지도 확정하지 아니하였는데, 전자가 크다거나, 전자가 작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소수자 보호를 재판의 이념으로 삼으면서, 다수의 이익이 소수의 불이익보다 크므로 소수자의 불이익이 정당화된다는 논증을 어떻게 옳다 할 수 있을까? 다수가 잘 살 수 있으면 소수자의 고통은 정당화된다고 하면서 어떻게 소수자보호가 헌법재판의 이념이라 웅변할 수 있을까? 평등은 또 어떠한가? 평등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처우하는 것이라 한다. 아름다우나 하나 마나 한 말이다. 내용이 없는 말이다. 같게 취급하여야 할 것과 다르게 취급하여야 할 것은 누가 정하는가? 헌재가 정하는가? 법은 같게 취급할 것과 다르게 취급할 것을 정해 놓은 문장이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가 같다고 보거나, 다르다고 본 것을 헌재가 그르다고 보아도 좋은가?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표가 결정한 것을, 선출되지 아니한 9명의 재판관이 틀렸다고 부정하여도 좋은가? 같고 다름이 논리적으로 추론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9명의 재판관 앞에서 이리 위태로워도 좋은가? 재판관은 헌법을 지키면 필요하고도 충분하게 자신의 과업을 수행한 것이다. 정의를 지킨다고 나설 일이 아니다. 법은 정의라는 말이나 정의는 법이라는 말이나 다 틀린 말이다. 정의롭지 않은 법이 적지 않고, 정의로운 것 중의 많은 것이 법으로 되지 않았다. 정의는 논리적으로 확정해 낼 수 없다. 정의는 달성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법과 법에 관한 생활은 그것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만약 재판관이 정의를 안다면 당장 내일 국회를 폐지하고 나라의 운명을 그에게 맡길 일이다. 왜 국회가 따로 있어야 하는가? 헌법이 금지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결정하면 된다. 그러다 나라 망하면, 그 대표들이 책임질 일이고, 그들을 뽑은 국민이 책임질 일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나는 지극한 마음으로 우리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를 신뢰한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그들이 우리의 운명을 정할 자다. 필자의 주장이 딱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할 수 없다, 필자는 말랑말랑한 감정을 생산하여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머리로 생각한 것을 세상에 팔고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다. 실무를 하는 사람들은 좀 더 세상에 따스한 시선을 가져도 좋겠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절충설은 실무가의 것일 수 있으나 이론가의 것일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자. 이 책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였다는 말을 하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이 읽기는 어렵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가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군데군데 필자의 생각들을 뿌려 두었다. 이런 것들이 학생들에게 더 부담스러운 것으로 되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필자는 교과서가 법학을 망친다는 생각을 한다. 팔리는 교과서를 지향하는 순간, 자신의 아이디어보다는, 어떤 것이 다수설이고, 판례가 무엇인가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무난한 결론이 지향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법학을 망친다. 대학은 어느 선생에게 배우는가에 따라 다른 것을 배우는 곳이다. 이 책은 판례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하였다. 되도록 멀어지려고 노력하였다. 억지로라도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처음 책을 쓸 때는 그렇지 않았으나 뒤로 갈수록 그렇게 되었다. 이것이 이 책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리라 생각한다. 필자의 논문은 필자의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책 날개의 QR Code로도 연결된다. 여기에 이 책의 수정사항도 올려 두겠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 책의 출간에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임은정 학생의 노고가 컸음을 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꼼꼼히 읽고 오류들을 지적해 주었다. 그 노고가 없었으면 이 책의 모습이 무척 초라하였을 것이다. 아내(민영)과 아들(기준), 딸(유연)의 이름을 남긴다.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늘 영양의 일을 걱정한다. 어려운 사정 아래에서 출판을 허락해 주신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박수연 원장님, 양광준 과장님, 이재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이 연구에 충남대학교 학술연구비의 지원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