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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맞서는 부드러운 저항
저자는 과거의 폭력을 은유로 포장하지 않는다. “백 대를 맞았다 어디를 맞아야 다시 발이 작아지는가”라는 처절한 물음을 던지며, 폭력이 남긴 비정상적인 ‘성장’의 흔적을 직시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고통에 매몰되는 대신, 연필그림이라는 따뜻한 터치를 통해 “나를 그리는 기억의 유령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치유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 대화의 시작과 끝은, “응”이다. 긍정이면서 부정이면서 모두인. 작품 속에서 폭력은 단순히 사람 사람 사이의 일이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검은 물체들이 엉켜 싸우는, 신화 시대로부터 비롯된 오래된 사태로 표현한다. 저자는 “그만 때려요, 도망쳐”라고 외치며 이 대물림되는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한다. 날카로운 칼날이 아닌, 종이 위에 질문처럼 그어 내려간 연필 선들은 그 어떤 선언문보다 세게 구조의 벽을 흔든다. 전쟁 같은 삶을 평화로 되돌리는 연필그림, 흑연의 미학 “가만히 누워 있어도 죄와 벌이 헷갈리는” 혼돈의 순간에도 저자는 연필을 놓지 않는다. 물감의 화려함 대신 흑연의 무채색을 선택한 것은, 모든 독(毒)을 걸러내고 삶의 가장 순수한 바탕인 ‘평화’로 돌아가겠다는 작가의 깊은 고민과 의지다.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리는 행위는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 위에서 새로운 삶의 문장을 시작하겠다는 미학이다. 연필로 선과 면이 닿다 보면 종이 위에 손자국이 남는다. 군데군데 작품에 피는 희미한 지문의 자국을 고스란 남겼다. 그 노이즈에 깃든 멈춤, 숨, 구멍, 틈이 작가가 말하려는 ‘세계’이다. “응, 이제 알 것 같아. 그래.” 『독과 나』는 “등은 뒷면 같은 앞면”이라고 말하며 보이지 않는 곳을 살피는 화가의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태어나 이루기 시작한 수많은 관계의 치명적 독으로 인해 숨죽이고 사는 이들에게, 한주연 작가의 연필, 흑연 터치는 “응, 알 것 같아” 하며 건네는 짧고 긴 위로이다. [펴내는글] 어떤 기억은 나를 스쳐 지나갔고 어떤 기억은 삼십년 만에 내 방문을 두드렸다. 어느 날은 수많은 기억들이 바람처럼 나를 통과했고, 며칠 전에는 기억 하나가 종일 그림자처럼 발밑을 따라다녔다. 2024년 11월 21일부터 기억의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감 없이 흰 종이 위에 연필과 지우개만으로 매일 그려나갔다. 열세 살 어느 저녁, 처음 겪은 이별과 불화, 상처, 나의 악행과 공중분해된 감정들. 지키지 못했던 마음들이 나도 모르는 내 생의 이면이 되어 기록의 형식으로 쌓였다. 매일 질문처럼 그었던 연필 선들이 300점을 넘어서 작업실 벽을 모두 채웠을 때, 나는 그림을 더 붙일 빈 벽을 찾고 있었다. 그때 보았다. 사방을 둘러싼 내 기억의 유령들이 나를 그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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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필 그림에는 그가 쓴 수많은 시들이 인유되어 있다. 시의 언저리에서 끌어온 제유와 시의 언어로부터 상상된 은유가 날줄과 씨줄로 얽혀 그림의 형상 속에 은닉된다. 흑연의 고졸 담백한 무채색이 그 결의 심오한 깊이를 더욱 가늠할 수 없게 한다. - 송효섭 (기호학자·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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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연은 누에고치다. 자기 안에서 실을 짜며 머문다. 그 실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지나 환영과 실재를 교차하고, 말 없는 유토피아로 우리를 데려간다. 텍스트는 그림으로 스며들고, 그림은 다시 텍스트로 되돌아온다. 한주연 작가의 고유한 문법은 존재가 스스로를 변주하는 노래이다. - 박성태 (에그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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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경계를 파괴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하고는 한다. 위험하고 불편한 존재다. 젊은 날 쏟아지던 뮤즈를 잃고 겨우 연명해 가는 시인에게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작품을 만난 전시장에 서 있었다. 몰매를 맞았다고 해야 하나. 언어로 그림을 그리듯. 그림으로 시를 짓는 한주연 작가를 전시장이 아닌 책으로 만나게 되다니 내가 나에게 먼저 박수를 보내야겠다. - 박남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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