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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미소 009
바다를 향해 있는 계단 041 앵무조개, 만지다 087 캐츠 아이 123 먼지 161 냉담한 자세 197 초승달 233 조끼를 입은 여자 267 해설 정재훈 297 작가의 말 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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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음의 전율, 그 지독하고도 빛나는 몸짓
김영옥의 두 번째 소설집 『앵무조개, 만지다』는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일상이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존재의 한계를 시험하는 낯선 장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전작 『숲의 정적』에서 보여주었던 공포스러운 녹색과 기습하는 햇빛의 이미지는 이번 작품집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산, 바다, 황량한 땅과 같은 자연은 위안의 배경이 아니라, 불현듯 들이닥쳐 인간을 후려치며 ‘살아 있음’을 각성시키는 거대한 힘으로 등장한다. 평론가 정재훈이 짚었듯, 이 ‘우호적이지 않은 자연’은 결국 인간을 말하기 위한 장치다. 공간적 고립과 공포는 인물들에게 일종의 ‘윤리적 시험대’가 되며, 관습화된 일상의 패턴에 생긴 균열은 서사가 지닌 원초적인 힘으로 다가온다. 첫 번째 단편 「산의 미소」는 국화를 키우며 살아가는 은이의 삶과, 홀로 죽어간 노인의 백골을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는다. 가족이라는 보호 장치가 빈껍데기처럼 무너진 자리에서, 은이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몸짓을 통해 비로소 산이 보내는 미소에 응답한다. 이는 상투적인 자연의 너그러움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향한 자연의 준엄한 응답이다. 「바다를 향해 있는 계단」은 세상의 끝으로 밀려난 미정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상처 입은 존재들이 서로를 응시하며 삶의 ‘각도’를 새롭게 조정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들은 외부의 것에 떠밀려 생긴 고독이 칼이 되어 제 살을 찌르는 아픔 속에서도, 타인을 통해 자신의 생을 다시 견뎌낼 힘을 얻는다. 작가는 도시적 삶의 이면에 숨겨진 부조리와 불안의 무늬 또한 놓치지 않는다. 표제작 「앵무조개, 만지다」는 소음과 억압으로 가득 찬 현실 속에서 질서와 평온을 갈망하는 청년 인호의 내면을 따라간다. 그가 발견한 낯선 무늬는 예측 불가능한 운명을 암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생존의 디자인을 꿈꾸게 하는 동력이 된다. 「캐츠 아이」는 사랑의 기억과 상실 이후에도 이어지는 생의 의지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빛의 감각을 일깨운다. 이어지는 작품들 역시 인간 존재의 원초적 층위를 탐색한다. 「먼지」는 극단적 고립 상황에서 드러나는 생존 본능과 예술적 광기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주며, 「냉담한 자세」는 반복되는 사회적 폭력 속에서 무너져가는 자아를 통해 현대인이 처한 불안의 무한 반복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소설집의 후반부인 「초승달」과 「조끼를 입은 여자」는 사랑의 중력과 관습을 넘어선 여성 인물들의 단독자적 선택을 조명한다. 첫사랑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궤도를 찾아 나서는 길이나, 고독의 심연에 스스로를 결박하며 관습에 저항하는 몸짓은 김영옥 소설이 도달한 인간 이해의 깊이를 보여준다. 결국 김영옥의 소설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자명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낯설고 위태롭게 다가오는 감각이며, 일상의 균열 속에서 기어이 확인해야 하는 생존의 조건이다. 인물들은 대부분 고립된 단독자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욕망과 감정의 폭풍은 우리 시대의 견고한 질서에 대한 조용한 저항으로 읽힌다. 『앵무조개, 만지다』는 삶의 뒤통수를 때리는 냉혹한 시련 속에서도 끝내 자기만의 표현법을 찾아내려는 존재들의 기록이다. “냉혹한 삶이 소설로 완성되어 비로소 살아가고 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김영옥의 문장은 지독한 고독 속에서도 끝내 빛을 응시하며, 우리에게 삶을 다시 신뢰하게 만드는 힘을 전해 준다 작가의 말 두 번째 소설집을 내게 되었다. 삶이 뒤통수를 세게 때리고 나면 단편 하나를 주었다. 여덟 편 중 다섯 편이 그렇게 씌어졌다. 글을 매만지면서 더 세게, 더 자주 얻어맞았으면 작품의 질과 양이 더 풍부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도 느꼈다. 복잡하고 냉혹하고 차가운 삶이 소설로 간결하게 정리되고, 소설로 모여들고, 소설로 완성되어져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소설은 내게 생명이 있는 동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했고, 실행하게 했다. 그리고 내 삶을 신뢰할 수 있게 했다. 실천문학사의 윤한룡 대표님에게도 감사드린다. 추천사를 먼저 써주겠다고 하고, 아픈 말도 해준 윤순례 소설가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2026년 새달에 김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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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벌인 화훼농사에 갇혀 농촌 처녀가 되어버린 은이, 어머니가 보리쌀을 돈 사 사준 운동화를 신고 학도병으로 간 상이용사,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쉬러 내려온 고향 바다에 눌러앉아 식당 주인이 되어버린 여자, 마음속의 빛이었던 연인의 죽음을 뉴스 보도를 통해 알게 된 남자……. 김영옥 소설의 인물들은 세상 가까이 다가가다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나중에 보면 결국 혼자가 되어 있는” 이들이 풀어놓는 속울음은 사납게 몰아치는 밤바다의 파도 소리만큼이나 처절하다. “고양이 눈을 닮은 보석”을 붙잡고라도 건너가야 하는 생의 질곡에서 이들의 노래는 슬프지만 단단하다. 검은 밤바다의 어느 한 곳은 “달빛 쪼가리로 노랗게 반짝”이듯이, 생은 그렇게 좁디좁은 틈에서 일렁이는 빛이 있어 아름답고 장렬하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알았기 때문이다. - 윤순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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