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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뛰는 개가 행복하다
시나위 신대철의 음악 인생 그리고 바른음원 협동조합 EPUB
신대철
알마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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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장 1986년, 시나위 1집이 발매되던 그해
2장 크게 라디오를 켜다
3장 시나위, 새가 되어 가다
4장 명반의 조건, 그리고 새로운 도전
5장 여정의 시작 그리고 시민 신대철
6장 아틀란티스의 꿈을 말하다
7장 바른음원 협동조합

저자 소개 1

1967년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상징적 존재인 신중현의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수집한 다양한 컬렉션의 LP를 듣는 게 취미였던 그는 마침 ‘대마초 파동’으로 칩거 중인 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뛰어난 기타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시나위’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1986년 한국 헤비메탈 1호 앨범으로 기록된 시나위 1집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록음악계에 뛰어들었고, 2014년 발표한 디지털 싱글까지 포함해 시나위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10여 장의 앨범을 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비롯
1967년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상징적 존재인 신중현의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수집한 다양한 컬렉션의 LP를 듣는 게 취미였던 그는 마침 ‘대마초 파동’으로 칩거 중인 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뛰어난 기타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시나위’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1986년 한국 헤비메탈 1호 앨범으로 기록된 시나위 1집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록음악계에 뛰어들었고, 2014년 발표한 디지털 싱글까지 포함해 시나위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10여 장의 앨범을 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비롯해 많은 뮤지션들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다. 몇 년 전부터 대중음악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놓고 SNS를 통해 활발하게 발언해왔으며, 의제 설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거대 통신 자본이 음원 유통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괴멸 상태에 놓인 ‘음악 생산-유통-소비’라는 음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재건하겠다는 ‘다윗’과 같은 의지를 가지고 ‘바른음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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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6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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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8.2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0.4만자, 약 3.4만 단어, A4 약 65쪽 ?

책 속으로

1장 1986년, 시나위 1집이 발매되던 그해
시나위 1집이 한국 1호 메탈 앨범이라는 칭호를 획득한 1986년은 위에서 언급한 시기와 이어진다. 슈퍼밴드의 시대가 지나고 록음악계의 주류로 등장한 영미권 메탈음악이 자연스럽게 세계 대중음악계의 변방 중 변방인 한국으로 흘러들던 바로 그때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대마초 파동’으로 한국에서는 ‘슈퍼밴드’ 시대가 부재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후 한국 록씬의 움직임은 앞 세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자생적으로 나타났다. 같은 이유로 한국 메탈의 탄생과 전개는 영미권이나 다른 나라와 달리 태생적으로 그 출발과 파급력이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록음악 같은 ‘젊은이들의 음악’을 금지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던 반면, 록음악이 본연의 ‘체제 저항적’인 것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막아야 했던 군사독재 정권의 딜레마가 메탈의 탄생 지점에 위치했다. 또한 조용필의 천년왕국과 그 유사품들, 그리고 비제도권 민중가요로 양분된 음악의 향유에서 벗어나 ‘거지 같은 세상’에 대해 울분을 토하는 좀더 다르고 ‘쎈’ 것에 대한 갈구가 자연스레 꿈틀거리던 때이기도 했다. 바로 시나위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시대적 조건이었다._22~23쪽

2장 크게 라디오를 켜다
철영학창시절에 형님 매무새를 누가 제일 처음 체크하던가요? ‘저 새끼 범상치 않은데?’ 이런 느낌?(웃음)
대철중학교 2학년 때 축제였나? 운동회였나? 아무튼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어떤 애가 학교에 일렉기타를 가져와서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연주를 하고 있는 거야. 속으로는 치지 말자 그랬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줘봐” 하고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했지. 무슨 곡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조금 했을 거야. 그런데 난리가 났지. 그러고는 ‘어! 치지 말아야 되는데…’ 하고 후회한 거야. 그런데 고등학교 갔는데 이미 소문이 나 있더라고. “저 새끼, 기타 진짜 잘 쳐” 이렇게. 그래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진 안 쳤어. 2학년 때 수학여행 갔을 땐가 장기 자랑 하는 시간인데 선생이 부른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누가 “신대철이 기타 좀 친다며? 빨리 나와봐” 그러는 거야. 그래서 엉겁결에 나갔지. 통기타를 누가 가져왔는데 치라는 거야. 어떻게 해. 생각나는 것도 없고 해서 아무거나 쳤어. 그냥 즉흥적으로 연주한 거지. 그날 이후로 ‘기타 잘 치는 애’가 돼버렸어.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학교에서 뭘 하는데 너 좀 해야 되겠다, 하는 거야. 낚인 거지. 그때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율화를 했던 시기거든. 행사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학교마다 음악 서클 활동이나 취미 활동 같은 걸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의 행사였어. 그래서 서울고도 밴드를 하나 만든 거야. 그게 ‘센세이션’이었어._44~45쪽

3장 시나위, 새가 되어 가다
철영2집 멤버들은 어떻게 구했어요? 김종서는 The End 멤버였잖아요.
대철The End에서 하는 걸 보니까 전에 나랑 같이 할 때보다 잘하더라고. 갑작스럽게 공석이 생기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딱 그 사람밖에 없는 거야. 녹음이나 공연 스케줄이 이미 나와 있으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쓸 수밖에 없잖아. 오디션하고 그런 시스템이 아니니까.
철영그래도 엄연히 다른 팀의 보컬이잖아요. 빨대로 쪽 빨아오는 건 어떻게 했어요?
대철시나위라는 메리트가 있었지. 난 지금도 그래. 시나위 멤버 할래? 안 할래? 싫어? 관둬.(웃음)_84쪽

4장 명반의 조건, 그리고 새로운 도전
철영 뭐가 그렇게 눈에 띄었어요? 박자감? 록 스피릿?
대철 감이라는 게 있잖아. 식스센스.(웃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괜찮은 거야. 뽀글뽀글 파마를 했는데 귀여웠어. 어려 보이긴 하더라고. 끝나고 중산이 형한테 물어봤지. “쟤네들 누구예요?” “내가 연습하려고 데리고 다니는 애들이야.” “베이스 치는 애는 뭐예요?” “그냥 베이스 치는 애야. 어린앤데 괜찮아서 데리고 다녀.” “저한테 좀 빌려주세요.” “맘대로 해. 데려다 써.” 이렇게 됐지. 그래서 끝나고 불렀어. “이리 와봐. 너 이름이 뭐니?” “정현철인데요.” “몇 살이야?” “사실 제가 어려요.” 고등학교 2학년인가 그렇다는 거야. “왜 머리는 기르고 다녀?” “학교 그만뒀어요.” 왜 그만뒀냐니까 음악 하고 싶어서 그만뒀대. 그래서 “내가 시나위 다시 하려고 그러는데 생각 있으면 해볼래?” “정말요?” 그러는 거야. “시나위 곡 중에 아는 거 뭐 있니?” “다 알아요.” 얘가 시나위 레퍼토리를 다 알고 있어. “혹시 연착 할 줄 알아?” “알죠” 하더니 바로 연착을 치는 거야._123~124쪽

5장 여정의 시작 그리고 시민 신대철
철영 부담감은 어떤 형태로 느껴져요? 아버지 곡인데 연주하다가 틀리면 안 되겠구나, 이런 거예요? 아니면 아버지가 쳐다보고 있는데, 이런 것?
대철 설명하기가 어렵네. 일단은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거든. 옛날 분이시고 표현 방법이 조금 다르잖아. 음악이라는 것 자체는 공통적이지만 그 안에서 음악을 어떻게 표현해나가느냐 하는 부분에서 접근 방법이 굉장히 달라. 나는 내가 굉장히 익숙한 기술적인 방법을 택하는데 아버지가 연주하는 자리에 가면 그걸 다 버리고 거기에 맞춰야 돼. 거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 몇 번을 했는데도 항상 거기 가면 똑같아. 그런 데서 오는 부담감? 그리고 노인이니까 깜빡깜빡 하시거든. 나도 나이 먹으면 저렇게 될 것 같단 생각도 들고. 쉽지 않아. 예를 들면 선배나 친구, 후배, 누가 됐든 같이 무대에 서면 동료라는 느낌이 있잖아. 그런데 아버지랑 연주하면 그런 느낌이 아니야. 도 닦아야 되는 느낌이야.(웃음) 어디 도 닦는 데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런 느낌. 계속 뭔가를 배워야 될 것 같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좀 있어. 또래나 선배들하고 할 때는 무슨 말을 하면 대충 알아듣는데 아버지한테 ‘어떤 느낌으로 하자’ ‘어떤 형태로 만들자’ 그러면 다른 걸 얘기하셔. 또 우리들 음악은 일정한 템포를 계속 유지하는 음악인데 아버지 음악은 그게 아니야. 빨랐다 느렸다, 잭슨 폴록 같은 그런 느낌. 아버지는 그게 자유롭게 표현한 거거든. 뒤에서 맞추는 우리는 고도로 그걸 따라가야 되는데 쉽지 않지. 예상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나오고 폭주하니까…._165쪽

6장 아틀란티스의 꿈을 말하다
철영 지난 25년간 형님의 음악 인생은 어떤 것 같아요?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 해온 셈이잖아요.
대철 싫었던 것 중 하나가 도 닦는 그런 모습이거든. 그런데 나도 그래왔더라고. 그래도 하나는 지켰어. 일관성이라는 면에서는. 성공이나 승패를 떠나서 기웃거리지 않았다는 자부심은 있어.

철영 그럼, 형님 음악에 대해서는 만족하나요?
대철 만족할 수 없지. 실패작이 더 많은 것 같아. 한다고는 했는데 지금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어떻게 이렇게 했을까, 싶은 생각도 많이 나고. 지금은 앨범을 만들 때 나름 스태프들이 많잖아. 요즘은 프로듀싱하는 것도 도와주고 방향성을 잡아주기도 해. 그런데 내가 처음 했을 때만 해도 그런 게 전무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아쉽지. 옆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을 터주는 게 있어야 되는데 내가 그런 게 부족한 것 같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까지도 손에 꼽을 만큼 몇몇 사람 외에는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 보이진 않더라고._215~218쪽

7장 바른음원 협동조합
철영 실제로 음원 사이트에서 꽤 많이 팔린다 하더라도 실제작자, 뮤지션한테 돌아가는 몫이 터무니없이 적은 상황이라는 거죠?
대철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야. 단품 스트리밍의 경우 권리자 정산액이 7.2원으로 책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 이용하는 상품은 무제한 스트리밍이야. 이 경우 곡당 스트리밍 가격이 3.6원이지. 그러니까 3.6원을 그 음원을 제공해준 유통사에게 정산해줘. 그러면 유통사는 거기서 수수료 20퍼센트를 떼고 약 2.1원을 제작사로 정산해주지. 저작권료는 0.6원, 실연권료는 0.36원이 발생하는 거야. 그런데 생각해봐. 세상 어디에서 10원도 안 되는 2원대 심지어 영점 몇 원 하는 물건 본 적 있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싼 물건이 한국 음악일 거야.
음악을 물건이라 해서 좀 그렇지만, 어쨌든 음원 하나 만드는 데는 돈이 들어가잖아. 작곡, 작사, 편곡, 연주, 가창, 프로듀싱, 스튜디오 대여, 마스터링 등등이 직접적인 제작비가 될 것이고, 거기에 사진 촬영비, 스타일리스트비, 진행비, 기타 경상비에 밥도 먹을 거 아니야.
뮤비라도 만들면 어찌 되겠어? 곡당 소위 제작 단가라는 게 천차만별이겠지만 채산성이 담보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본인이 다 해결해서 만드는 인디의 경우 수십 만 원밖에 안 들어가는 것도 있을 것이고 수백, 수천 만 원 대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곡도 있을 텐데 가격은 음원 사이트가 정해준 대로 팔아야 하는 거야. 음악을 만드는 생산자가 가격을 못 정해. 거기다 다운로드 가격도 원래 600원인데 묶음상품 같은 각종 할인혜택으로 60원 대까지 떨어진다고. 쉽게 비교하면 스트리밍 가격은 이쑤시개 하나 가격이고 다운로드 가격은 면봉 하나 가격에 불과해. 이건 음악 하지 말라는 거지. 그러니 수많은 제작사 음악가들이 음원 수익은 아예 포기한 거야. 행사 수익에 의존하는 거야_233~234쪽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 대중음악계를 뒤흔든 수많은 스타 뮤지션을 배출해낸
그룹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
그가 이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신대철은 누구인가

1967년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상징적 존재인 신중현의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수집한 다양한 컬렉션의 LP를 듣는 게 취미였던 그는 마침 ‘대마초 파동’으로 칩거 중인 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뛰어난 기타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시나위’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1986년 한국 헤비메탈 1호 앨범으로 기록된 시나위 1집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록음악계에 뛰어들었고, 2014년 발표한 디지털 싱글까지 포함해 시나위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10여 장의 앨범을 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비롯해 많은 뮤지션들의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다.

몇 년 전부터 대중음악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놓고 SNS를 통해 활발하게 발언해왔으며, 의제 설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거대 통신 자본이 음원 유통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괴멸 상태에 놓인 ‘음악 생산-유통-소비’라는 음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재건하겠다는 ‘다윗’과 같은 의지를 가지고 ‘바른음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뛰는 개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신대철,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메탈 밴드로 1986년 데뷔 당시 대중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록그룹 ‘시나위’의 리더다. 임재범, 김종서, 서태지, 김바다 등 수많은 스타 뮤지션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시나위는 지금까지 10여 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19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가 본격적으로 부흥하던 시기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시나위, 그리고 시나위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신대철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한 번도 거부하지도 벗어나지도 않았다. 최근에는 거대 통신자본에 맞서 ‘바른음원 협동조합’을 설립해 뮤지션들의 ‘생존권’ 보장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한국 대중음악계, 더 나아가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대중과 유리된 채 살아가는 절대 다수의 연예인, 뮤지션들과 달리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관심과 시선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삶의 양태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확고하게 정립하고 있는 ‘깨시민’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인간’ 신대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신대철은 ‘목줄’로 대변되는 ‘안락한 체제’에 순응하며 편안하게 사는 삶보다는 자유롭게 뛰어 다닐 수 있는 ‘개’가 행복하다며 그런 삶의 자세를 음악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두운 시대를 관통해 지금의 신대철이 있기까지 그의 삶과 음악 세계를 오롯이 보여주는 이 책은 자본에 잠식되어가는 대중음악계와 점점 왜소해져가는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색다른 귀감을 줄 것이다.

험난하면서도 화려했던 신대철의 음악 여정
신대철이 체제 저항적인 장르로 대표되는 록음악에 발을 들이게 된 건 그의 아버지이자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씨의 내적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의 삶에 처음으로 찾아온 외적 ‘고난’이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면서 겪었던 일련의 탄압을 목도하면서 록음악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재즈 뮤지션이 될 수도 있었고 클래식도 할 수 있었어. 그런데 록이 나한테 왔거든. 그러니까 그때부터 한 거야”라며 결과론적이지만 운명처럼 록음악을 받아들였다고 회고한다.
우연한 기회에 시나위라는 이름으로 1집을 발매한 신대철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인기를 업고 록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멤버들 간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고, 앨범 수록곡이 방송 금지곡으로 묶이면서 활동에 제약을 받은 적도 있다. 30여 년간 ‘시나위’라는 팀을 이끌면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는 ‘음악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선악의 문제로 음악을 바라보는 순간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지금도 신대철은 ‘음악을 선택의 문제로 바라볼 때라야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순간순간 자신을 타이른다.

시나위, 멈추지 않는 도전
시나위는 2013년 7년 만에 신보인 6곡짜리 미니앨범 《Mirrorview》를 발매한 데 이어 2014년에는 2곡짜리 디지털 싱글 《밤이 늦었어》를 발매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고 있다. ‘시나위의 음악이 달라졌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하지만 그는 ‘머물러 있는 것’을 음악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만의 색깔은 녹이되 그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음악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는 것이다.

“시나위가 변했다고 말하는 팬들도 있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이게 참 좋은 말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 굴욕적인 말이거든. 음악 하는 사람들이 옛날에 좋아했던 것을 간직하는 건 좋지만 결국 발전형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바른음원 협동조합,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바른음원 협동조합’은 ‘음악 생산-유통-소비’라는 음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재건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신대철은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부당한 음악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아무도 나서서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상황이 안타까워 ‘다윗’과 같은 의지를 가지고 앞장섰다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의 생존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음악 생태계를 ‘상식’적으로 바꾸자는 것뿐이다.

“음악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의미 없는 작업을 매일 반복하면 얼마나 시간 낭비야? 인생 낭비지. 그래서 그들이 만든 소중한 음악이 합리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해. 한 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뭔가 숨통이 트이고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그쪽을 향해 갈 거 아니야.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이 사회에 증명해보고 싶은 거야. ‘음악이 그렇게 가치가 없는 거냐? 그렇지 않다’고.”

이 책의 인터뷰어 김철영 피디는 “‘깨시민 신대철’은 나이가 들면서 ‘시민’이기를 포기하거나 점점 왜소해져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지금 자유롭게 살고 있는지, 내가 가진 알량한 것들을 잃을까봐 조바심내고 있지는 않은지, 진정한 시민으로 살 각오가 되어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면서 지금처럼 ‘시민’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에 이 책이 하나의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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