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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928년 제1부 • 조선 평안도
제1장 1928년 8월
제2장 1928년 9월
제3장 1928년 9월
제4장 1928년 10월
제5장 1928년 10월
제6장 1928년 겨울
제7장 1930년 3월
제8장 1930년 7월
제9장 1930년 8월

1930년 제2부 • 일본 교토
제10장 1930년 교토
제11장 1930년 9월
제12장 1930년 10월
제13장 1931년~1933년
제14장 1933년~1935년
제15장 1935년 3월
제16장 1935년 6월
제17장 1935년 여름
제18장 1935년 가을, 겨울
제19장 1936년 3월
제20장 1936년 4월

1936년 제3부 • 일본 교토
제21장 1936년 6월
제22장 1936년 6월
제23장 1936년 6월
제24장 1936년 6월
제25장 1936년 7월
제26장 1936년 11월
제27장 1937년 3월
제28장 1937년 4월
제29장 1937년 12월
제30장 1938년
제31장 1939년~1941년
제32장 1941년 12월

1943년 제4부 • 일본 오사카
제33장 1943년 4월 12일 월요일
제34장 1943년 4월 13일 화요일
제35장 1943년 4월 14일 수요일
제36장 1943년 4월 15일 목요일
제37장 1943년 4월 16일 금요일
제38장 1943년 4월 17일 토요일
제39장 1943년 4월 18일 일요일
제40장 1943년 4월 19일 월요일
제41장 1943년 4월 19일 월요일
제42장 1943년 4월 19일 월요일
제43장 1943년 4월 20일 화요일

작가의 말
《화이트 멀버리》 독자들을 위한 독서 가이드

저자 소개 2

로사 권 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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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 Kwon Easton

로사 권 이스턴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자 변호사이다.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저자와 그녀 가족의 역사는 복잡한 현대사 자체다. 저자의 아버지는 등장인물 ‘순호’처럼 1940년대에 중일전쟁의 참혹함을 피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고, 또 1970년대에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는 저자가 대학교에서 국제학과 공공정책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의 데뷔소설 《화이트 멀버리》는 1930년대 일본에서 간호사이자 조산사로 일하며 아들을 홀로 길러낸 저자의 할머니에게서 실제 이야기를 끌어내 쓴 소설이다. 영미 출간 후 아마존 역사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그 외
로사 권 이스턴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자 변호사이다.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저자와 그녀 가족의 역사는 복잡한 현대사 자체다. 저자의 아버지는 등장인물 ‘순호’처럼 1940년대에 중일전쟁의 참혹함을 피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고, 또 1970년대에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는 저자가 대학교에서 국제학과 공공정책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의 데뷔소설 《화이트 멀버리》는 1930년대 일본에서 간호사이자 조산사로 일하며 아들을 홀로 길러낸 저자의 할머니에게서 실제 이야기를 끌어내 쓴 소설이다. 영미 출간 후 아마존 역사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그 외 여성소설 등 3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아마존 ‘퍼스트 리즈’ 에디터 추천작과 <북리스트>, <퍼레이드매거진>, <북버브>, <북라이엇> 등의 매체가 꼽은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아시아의 국지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북미와 유럽의 4개 언어로 번역된 바 있다.

로사 권 이스턴 작가는 보스턴 칼리지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두 자녀를 낳고는 남편과 반려견과 함께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둘째가 태어난 뒤 변호사로 일하기를 그만두고 습작을 시작해서 자녀들이 모두 성인이 되고 나서야 집필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 이 데뷔작과 후속작 《레드 씰》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서울시청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통역사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라디오 PD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옮긴 책으로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민주주의 공부』, 『미국이 불타오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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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494g | 134*200*21mm
ISBN13
9791193904749

책 속으로

결혼 준비가 착착 진행되면서 보배 언니를 붙들어둘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도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언니마저 순순히 가기로 마음먹은 마당이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 와중에도 미영은 자신이 양일수에게 시집간다는 사실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 뾰족한 수가 도통 떠오르지 않지만, 어떻게든 그 팔자는 벗어날 것이다.
“어머니 말씀이 옳아. 일본으로 시집가면 더 잘살게 되겠지.” 보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게 뭐니? 내가 진짜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 사랑이 뭔진 몰라도, 있는 거라고 믿을래.”
미영은 언니의 말을 곱씹어보았지만, 이내 사랑 따위 알 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배 언니는 언제나 세상만사에서 밝은 면을 찾아내고 너무 빨리 자신의 팔자를 받아들이는 쪽이다.
미영은 중얼거렸다. “나는 절대 양일수를 사랑하지 않을걸.”
--- pp.51-52

아예 결혼을 안 할 수는 없을까? 김 선생님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산다. 읍내에서 하숙집을 드나드는 김 선생님을 본 것도 여러 번이었다. 토요일이면 선생님은 혼자 시장에 나와 학생들에게 나눠줄 연필을 사기도 했다. 보통 김 선생님 나이의 여자들에게는 대부분 남편이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되고, 스스로 돈을 벌면 남편이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새 옷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살 때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어머니와 달리,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p.59-60

“정 씨 아저씨가 우릴 속였어. 아저씨 동생은 전기기사도 아니고, 계량기 검침원이야. 사는 데도 구질구질한 동네야.”
미영은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어떡해.” 언니도, 나도 어떡하면 좋지?
“그이 이름은 하라모토야. 큰 집은커녕 방 두 개짜리 판잣집에 살아.”
“정 씨 아저씨는 몽땅 거짓말만 했네?”
“부자도 아니고, 술주정뱅이야.”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속여 땅을 팔게 했다던 신 씨가 떠올랐다.
--- p.84

자그마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이름을 바꾸면 사람 속도 달라질까? 속이 바뀌면 좀 어때? 일본 이름을 쓰면 일본 애들의 대접도 조금은 달라질지 모른다.
“그냥 마음대로 이름을 지으면 되는 거야?”
“그럼. 어차피 신분증에는 진짜 조선 이름이 나와 있으니까, 아무도 뭐라 안 해.”
사실이다. 보배 언니와 집 근처 관청에 가서 받은 신분증에는 ‘서미영’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어디 보자……. ‘미영’은 아름답고 용감하다는 뜻이지? 미요코 어때? 일본말로 ‘아름다운 아이’라는 뜻이야.”
썩 괜찮은 이름 같다. 아름답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런 이름을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미영을 그렇게 봐줄지 모른다. 용감해지는 건 다음 일이다.
--- p.115

미요코는 자신이 둘로 갈라진 것 같았다. 하라모토 말대로 겉으론 일본인 행세를 하지만, 핏줄은 여전히 조선 사람이다. 사람이 이름을 바꾸면 속도 바뀌는지 오랫동안 고민해 왔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고, 어느 쪽도 온전한 사람은 아닌 것만 같았다.
일본 사람 행세를 하면 할수록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과 고향 맹정리의 기억은 사라져갔다. 거울 앞에 서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자기 모습을 살피다 보면 얼굴의 윤곽마저 희미해져 가는 듯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얼핏 일본 사람처럼 보이는지 몰라도, 미영이 보기에는 뭔가가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고향집과 어머니, 그리고 오디나무 가지 위에 앉은 어린 미영 때문일까? 달라진 겉모습 아래에는 과거의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렸다.
--- p.121

미요코는 성경책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성경책을 갖게 된 건 처음이다. 누군가에게 빌려서 읽어본 적도 없었다. 목사인 혜원의 아버지가 설교하는 동안 성경책을 소중히 끌어안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성경책을 펴보니 일본어와 한글이 나란히 쓰여 있었다. 미요코는 일본어로 성경을 베껴 적으며 일본어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랑은 변치 않으며, 언제나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준다는 문장을, 조용히 앉아서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이를 그냥 두시는 걸까?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왜 그냥 두시는 걸까?
--- pp.125-126

1931년 만주 침공 이후에는 만주에 일본군 정부가 들어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본은 조선뿐 아니라 중국에까지 손을 뻗고 있었는데, 만주에 ‘만추쿠오’라는 일본식 이름을 붙인 뒤 만주를 조선처럼 다스리려 하고 있었다.
미요코는 만주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복희 언니가 떠올랐다. 일본의 탐욕과 군국주의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을 회복할 수 없이 망가뜨렸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백작의 집에 사는 동안 미요코의 가슴속에서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났다. 이쪽 세계의 삶은 풍요롭다. 음식이 남아돌고, 여흥과 부가 넘친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무서운 병을 앓으며 끼니 걱정을 하는데, 이곳에선 모두가 즐겁고 건강하다.
--- p.146

호준과 함께 있으면 스스로를 너무 의식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외로워도 혼자서도 잘 지내왔는데…….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를 시시콜콜 해버렸고, 너무 많이 웃어버렸다.
나가노와의 일 이후, 미요코는 조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숨겨야 한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에는 이미 딱지가 앉았지만, 딱지는 언제든 뜯겨나갈 수 있고 상처는 언제든 덧날 수 있다. 호준이 나타난 뒤로 미요코는 그 상처를 새삼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일본인 행세를 하기로 한 것, 사랑을 포기하기로 한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다가는 상처받을 일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호준이 신경이 쓰이는 걸까?
--- p.163

“신분증도 외국인만 발급받아야 하죠. 목적이 감시라서 그렇습니다. 조선인이라면 응당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쓰고 싶은 법인데 왜 일본 이름을 써야 합니까? 우리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야죠.” 호준이 힘주어 말했다.
미요코에게도 바로 그 외국인 신분증이 있고, 바로 그 일본인 행세를 하고 있다. 호준은 두 세상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미요코를 분명한 한쪽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삶으로. 미요코도 실은 호준처럼 살고 싶었다.
--- pp.184-185

미요코는 앞으로 펼쳐질 삶을 그려보려 애를 썼다. 혼자서 천천히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처음에는 흐릿해 보이지만, 점차 또렷해진다.
관계란 애초에 부서지기 쉽다. 호준을 잃는 고통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어쩌면 이별이란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예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인연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미요코의 인생에 강변을 따라 누군가와 나란히 걸을 일 같은 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풀을 뽑아 누군가의 윗옷 안으로 들어가게 던지는 장난 같은 것도 더 이상 치지 않을 것이다. 미요코의 손금이 그리는 미래에는 사랑도, 남자도 없다.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할 것이다.
--- pp.204-205

아기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지?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딸들을 먹고살게 하겠다고 모조리 멀리 보내려고 고집부리던 절박한 모습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미요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한번은 미요코가 일하는 병원에 임산부가 탈수로 의식을 잃고 실려 온 적이 있었다. 보호자로 따라온 친구 말로는 아기를 유산시킨다는 독초를 먹었다고 했다. 아기를 없애기 위해 더 끔찍한 방법을 쓰는 여자들도 있으니 그만하길 천만다행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여자는 목숨을 걸고 그런 짓을 벌인 셈이다. 미요코는 몸서리를 쳤다. 마음속 한구석에는 아이가 저절로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제 손으로 자신과 아기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자신은 도저히 없었다. 그러다가 죽을 뻔한 여자들과 실제로 죽은 여자들을 병원에서 너무 많이 보았다.
--- p.230

“책을 좀 사야 하지만, 공부하면서 시간제 간호사 보조 일을 구해서 살림에 보탤게요.”
“우리가 돈을 대줘야 하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시어머니가 잘라 말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책은 제가 모아둔 돈으로 살 수 있어요.” 호준이 생전에 신문사 일로 번 돈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때 여비로 쓰려고 모아둔 돈도 조금 있었다. “그래도 코짱은 당분간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미요코는 손을 뻗어 아들의 뺨을 어루만졌다. 아기를 두고 일을 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 눈에 밟혔다.
“내 손주는 당연히 내가 봐야지.” 할머니가 아기를 안아 올려서 등을 두들기자, 아기가 크게 트림했다.
아기를 더 봐달라는 부탁에 시어머니는 오히려 기뻐하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에게 사랑이란 가까이 두고 어마어마한 애정을 퍼붓는 것이었다. 미요코가 경험한 어머니의 사랑은 달랐다. 어머니는 농사를 짓고 하숙집을 운영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세 자매를 먹여살렸다. 물론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미요코가 보고 배운 부모의 사랑은 곧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 pp.300-301

출판사 리뷰

톨스토이문학상 수상 작가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추천
영미 독자 서평 2만 건
아마존 소설 3개 분야 1위


미영, 미요코, 미영을 둘러싼 메아리
“네가 어디서 왔는지, 절대로 잊지 마.”


조선인들이 일제 치하에서 논밭을 빼앗기고 소작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신세로 전락한 1928년, 소설은 평양 근처 시골 맹정리에 사는 과부의 막내딸이 품은 맹랑한 꿈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미영’의 어머니는 과부였다가 부인이 있는 남자와 재혼한 첩실이다. 만주로 시집간 첫째 언니는 만주로 생사도 알 수 없고, 이젠 둘째 언니마저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여자에게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라곤 흰쌀밥을 먹인다는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뿐. 하지만 똑똑한 미영은 다르다. 학교를 계속 다니고 선생님이 되어서 누구에게도 시집가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꿈을 꾸는 중이다. 미영은 교토에 사는 둘째 언니 집에 얹혀살며 중학교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삶은 빠르게 뒤바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조선인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그로부터 15년, 삶은 미영에게 외로움도 자존심도 억눌러야만 하는 무엇이었다.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사랑은 속수무책으로 찾아오고, 태평양전쟁의 기운이 감돌면서 미영은 운명을 영원히 바꿔놓을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생존, 그리고 때로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
상흔처럼 새겨진 트라우마와 정체성에 대한 우아하고도 강렬한 소설
“이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바로 우리의 이야기(history)다”_ 작가의 말


“이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바로 ‘우리의 이야기(history)다. 한번은 친구가 내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냐고 물어서, 그 이야기는 나의 첫 책에 담겨 있다고 말해주었다. 《화이트 멀버리》는 나의 할머니가 일제강점기에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자 내 데뷔작이다.

‘로사’는 나의 첫 이름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을 때 내 이름은 ‘해원’이었는데, ‘우아한 공주’라는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그 이름은 사라졌다. 부모님은 내가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를 바라셨고, 이방인이었던 나 역시 소속감을 간절히 바랐다. ‘권’조차 태어났을 때의 성이 아니다. (중략)

가족은 우리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형성한다. 지금 내가 꾸린 가족은 나의 원가족과는 외모, 생각, 감정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르고, 내 미래의 가족들도 아마 다를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곳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지, 가족과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다.”
_작가 인터뷰

로사 권 이스턴은 일곱 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그녀와 가족의 역사는 복잡한 근현대사 그 자체다. 작가의 할머니는 소설 속 미영처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떠났고, 태평양전쟁의 참혹함을 피해 조선으로 돌아왔다. 남북이 분단된 뒤에는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하지만 3대에 걸친 이주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작가가 일곱 살 되던 해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떠난다. 이주는 항상 살아남기 위해, 지금보다 잘살기 위해 결정되었지만 생존이 꼭 행복을 뜻하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끊임없는 외로움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화이트 멀버리》에서 일본인들이 재일조선인에게 가하는 차별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그 단어조차 무색할 정도다. 제대로 된 집 없이 판자촌에 살고, 조선인 구역 주소지만으로 일자리가 제한되며, 육체노동밖에는 허락되지 않는 현실. 모든 모임이 감시당하는 한편, 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인이 가장 먼저 징집된다. 이중에서 미영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흔들리는 자기 정체성과 외로움이다. 살아남기 위해 출신을 숨기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를 선택한 미영은 자신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타국의 풍요로운 타자들과 절박한 동포들, 두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죄책감을 감내하는 것 자체가 미영에게는 형벌이었음을, 소설은 ‘미요코’로 불리는 문장 마디마디마다 일깨우고 있다.

이름과 꿈을 누일 단 하나의 ‘집’을 찾아서
시대와 싸워 한 타래 운명을 움켜쥔 한 여성의 오디세이


《화이트 멀버리》가 디아스포라 소설로서 특별한 점은 역사적 사실에 천착하기보다 그 시대 재일조선인들이 보편적으로 느꼈을 ‘영원한 이방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과 조선인 모두에게 거리를 두는 미영에게,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면서도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삶을 개척하는 미영은 그 끈질긴 생명력이 한국인을 똑 빼닮았다. 《작은 땅의 야수들》로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 작가는 이를 두고 “ 미영의 회복력과 자기결정 의지가 한국이 걸어온 궤적을 생생하게 비춘다”고 평하기도 했다.

또한《화이트 멀버리》는 현실적이고 정직한 여성 소설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에서 미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돈’이다. 미영은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어 어머니의 치료비를 대고, 기모노가 아닌 양장을 사 입으면서 자존감이 올라가는 경험을 한다. 아들의 양육비를 돈을 벌고, 여비를 모아 조선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꾼다. 엄마와 거리감을 느끼던 아들도 미영의 직업을 보며 어렴풋이 그 강인함을 깨닫는다. 미영에게 여성의 인권이 표현되는 무대는 오롯이 ‘돈’이었다. 돈이 여성을 자립하게 하고, 누군가를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할 자유를 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서미영의 이야기는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과 꿈을 누일 단 하나의 집’을 찾아가는, 험난하지만 가치 있는 오디세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추천평

제2차 세계대전과 식민 지배가 쓸고 지나간 격랑의 시대, 조선인 소녀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린 아름답고도 날카로운 소설. 주인공의 끈질긴 생명력과 결단력은 주인공의 조국이 보여준 놀라운 궤적과 닮아 있다. -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 작가)
아름다운 소설이자 철저한 고증의 산물. 한 여성이 어떻게 가족을 지켜내고, 정체성을 이어가며,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가? 《파친코》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반드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 리사 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해녀들의 섬The Island of Sea Women》의 작가 )
작가는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한 용감한 자기 할머니의 과거를 유려하게 재구성해 재일조선인의 잊힌 역사를 조명한다. - 알카 조시 (베스트셀러 《헤나 아티스트The Henna Artist》, 자이푸르 3부작Jaipur Trilogy 작가)
빛나는 데뷔작.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작가는 생생한 디테일과 팽팽한 서스펜스가 살아 있는 감동적인 여정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 한지민 (《사과The Apology》 작가 )
단숨에 읽히는 작품이다. 세밀한 시대상 묘사가 돋보이는 설득력 있는 역사 소설. 미영의 굴하지 않는 영혼이 빛난다. - 마거릿 이주혜 (《별이 빛나는 들판Starry Field》 작가 )
일본으로 가서 미요코가 되고, 자신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가는 미영의 여정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수준 높은 역사 소설이자, 고향의 의미를 탐색하는 아름다운 서사다. - 린지 헌터 (핫 스프링스 드라이브Hot Springs Drive》)
이 데뷔작은 여러 국가와 시대, 종교와 전쟁을 아우르는 대하소설로, 묘사가 풍부하고 고증은 철저하다. 조선에서의 가난한 삶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결국은 조국을 식민지로 만든 제국에 봉사해야 할 운명에 처하는 미영의 파란만장한 여정이 놀라울 만치 생생하고 강렬하다. 이스턴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릴랜드 척 (《쓸모없고 아주 나쁜 아시아인No Good Very Bad As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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