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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기독교, 상호 이해의 길
얀 반 브라흐트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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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일반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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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차례

옮긴이의 글
영어판 편집자 서문
일어판 편집자 서문
〈난잔종교문화연구소 연구총서〉를 펴내면서

머리글 ― 영어판 편집자 해설
종교들 사이의 다리
철학과 신학 사이의 다리
교리와 종교적 현실 사이의 가교
신비주의에서 일상으로의 다리

1장╻기독교에 대한 불교의 기여
기독교의 어두운 모습
불교의 균형 요소들

2장╻불교로부터 배우는 기독교 신학
심포지엄의 의의에 대해서
이러한 신학의 동기 부여
‘불교적’ 신학에 관한 두세 관점
벌써 수확이 있는가

3장╻ 그리스도와 일본 불교
그리스도, ‘이방인’
부처상의 매력
그리스도상의 매력적인 특성
그리스도의 덜 매력적인 특징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4장╻ 종교 간 대화와 복음화
현대 세계의 종교
세상 속 기독교의 사명
종교 간 대화
선교 영성
그리스도론
일본의 기독교

5장╻ 종교 신학으로 나아가는 길
현안 문제
추가 고찰
예비적 명제 1
예비적 명제 2
예비적 명제 3
예비적 명제 4
예비적 명제 5
예비적 명제 6
예비적 명제 7
예비적 명제 8
예비적 명제 9
예비적 명제 10

6장╻ 종교 간 대화와 철학
종교 간 대화와 철학
철학과 종교의 상호작용
사회문화적 종교 간 대화
대화의 현상학
종교적 방식의 굴절
종교적 태도와 논리적 전제
비판적 상호 이해
철학적 방법론
돌아보며

7장╻ 동서 영성의 교류
종교 간 대화의 경험과 사상
요약
기획의 의미
상호 교류라는 꿈
영성 차원에서의 교류
트라비스토 및 베네딕트회 수도자와 함께 생활하며
교류 혹은 자신을 도전에 내맡기는 것
구체적인 문제점
명상
기독교의 분석
기도와 노동: 일원론인가, 이원론인가
수도 생활과 사회적 책임
수도 생활과 사랑
베네딕트 계율의 문자적 의미와 정신
로마에서의 종결

8장╻ 불교, 기독교, 정토진종에서의 욕망
욕망의 현상학
배경 문화적 수사학
정토불교와 욕망
불교에서의 욕망
욕망의 무엇이 나쁜가?
대승불교와 욕망
불교의 욕망 부정은 얼마나 일관되는가?
욕망이 아닌 깨달음
욕망이 수행의 동기가 아니라면, 무엇이 수행의 동기가 될 수 있는가?
배경을 찾다
인간의 본성과 처지
이론과 실천 사이의 욕망
인지적 측면과 욕구적(의지적) 측면의 평가
욕망, 시간 그리고 공
절대적 배경

9장╻ 정토불교의 해방적 요소들
질문의 전제 조건
해방적 요소와 불교
일본의 기본 문화 코드와 불교
정토진종 내 해방적 요소들
인간의 조건에 대한 관점
자비로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정토불교, 범부의 종교
정토에서의 생 개념
오로지 아미타불 한 분께만 헌신
후기

10장╻ 선(禪)과 윤리에 관한 성찰
종교와 윤리
불교와 세속적 현실: 불교와 윤리
서양의 선

일어판 편집을 마치면서
얀 반 브라흐트 이력과 학술 도서
편집자 및 역자 약력

저자 소개 4

얀 반 브라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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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Van Bragt

벨기에 출신의 가톨릭 사제이자 종교 철학자로, 교토학파 철학을 서구에 알리고 일본 철학과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난잔종교문화연구소(NIRC) 초대 소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 『종교란 무엇인가』(역서), 『Interreligious Affinities』 등이 있다.

제임스 W. 하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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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W. Heisig

신언회 사제로 난잔종교문화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50년간 동서양 철학 및 종교 간 대화에 헌신했다. 16개 언어로 90여 권의 저술·번역서를 출간했으며, 그 공로로 가나자와대학 국제상과 일본 정부의 서보중수장(瑞?中綬章)을 수여했다.

테라오 카즈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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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잔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조치(上智)대학 실천종교학연구과 교수이다. ‘무(無)’를 근거로 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 및 ‘나무 임마누엘’이라는 새로운 기도를 모색하고 있으며, 사생학(死生學)에 관한 다수의 논고를 발표했다.

편역김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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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89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 신학부에서 기독교 신학과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선불교 사상과의 대화를 다룬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 부산신학교에서 가르쳤다.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가 긴조가쿠인(金城?院) 대학 교수로 있다가, 2012년부터 난잔(南山) 대학 인문학부 교수, 난잔종교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이나 유전공학이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 연구하는 한편 기독교, 불교, 자연과학의 세계관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렇게 통합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89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 신학부에서 기독교 신학과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선불교 사상과의 대화를 다룬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 부산신학교에서 가르쳤다.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가 긴조가쿠인(金城?院) 대학 교수로 있다가, 2012년부터 난잔(南山) 대학 인문학부 교수, 난잔종교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이나 유전공학이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 연구하는 한편 기독교, 불교, 자연과학의 세계관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렇게 통합함으로써 이해되고 조형되는 실재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불교와의 대화를 통해서 형성되는 기독교 신학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한편, 또 한편으로는 기독교 문학에 관심을 갖고 관련서 저술과 번역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기독교와 종교의 대화, 종교와 과학의 대화 관련 연구서와 논문을 저술했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 세계에 관심을 갖고 2013년부터 현재까지 난잔대학교와 나고야NHK문화센터에서 [엔도 슈사쿠를 읽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일본 [엔도 슈사쿠 학회] 운영위원, [엔도 슈사쿠 사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엔도 슈사쿠의 문학과 기독교: 어머니 되시는 신을 찾아서』, 『엔도 슈사쿠, 흔적과 아픔의 문학』, 『沈?への道、沈?からの道: 遠藤周作を?む』, 『遠藤周作と探偵小?: 痕跡と追跡の文?』, 『벚꽃과 그리스도』, 『무주와 방랑』, 『神と遺?子(신과 유전자)』 등이 있고, 『침묵의 소리』(엔도 슈사쿠), 『바보』, 『장소적 논리와 종교적 세계관』(니시다 기타로), 『참회도의 철학』(다나베 하지메), 『예수의 역사 2000년』(야로슬라프 펠리칸)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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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3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152*224*30mm
ISBN13
9791176110082

책 속으로

반 브라흐트는 종교 신학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어떤 전문 분야로서의 종교 신학이 아니라 ‘신학 전반에 스며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 신학의 문제점은 다른 모든 종교를 기독교와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참된 신앙을 받아들이기 위한 예비적 ‘교육적 도구’로 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든 이유로 그는 대화의 핵심에 신학적 의제를 삽입하는 것을 분명히 거부하며, 목적이 없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고수한다. 그에게 있어… “종교 간 대화는 종교 세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 「머리글」 중에서

간단히 말해 우리는 두 가지를 인정해야 한다. 첫째, 현대적 인격 개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의 철학과 신학적 사고방식이 삼위일체 교리와 이타적 사랑 계명에 담긴 훌륭한 인격 개념을 지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기독교적 인격 개념과 불교적 무아無我 개념의 새로운 통합이 필요하다.
--- 「1장 _ 기독교에 대한 불교의 기여」 중에서

예수라는 인물과 일본 불교도들에게 친숙한 종교적 인물들 사이의 표면적 차이에 대한 우리의 짧은 분석을 요약하자면, 그리스도라는 독특하고 환원 불가능하며 물질적으로 실재하는 역사적 인격 안에서 신과 인간의 결합은 ‘국소화’된다(이로써 신성과 인간성의 타자성을 보존한다). 반면 복수적이고 잠재적으로 보편적인 대승불교의 부처에서는 인간과 절대자의 결합이 보편화되고, 그로 인해 절대자와 인류의 본래적 비이원성을 표현한다.
--- 「3장 _ 그리스도와 일본 불교」 중에서

종교 간 대화의 현재 상태는 어떠한가? 분명 초기 단계에 있으며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두 가지만 꼽는다면, 신학적 명확성이 대체로 여전히 부족하며 대부분의 다른 종교들은 아직 참여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로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권고한 대화의 정신이 실제로 가톨릭교회 내 모든 수준에 얼마나 스며들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솔직한 답변은 이렇다. 그리 깊이 스며들지 못했으며 오래된 사고방식과 관행은 여전히 강력하다. 로마 최고위층에서 종교 간 대화 교황청평의회(Pontifical Council for Interreligious Dialogue)의 태도와 활동은 이 점에서 훌륭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교황청 전체 분위기를 어느 정도 대표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위 인사들의 실언―예를 들어 라칭거 추기경이 불교를 영적 자위행위라고 언급한 것―은 이 점에서 좋은 징조가 아니다. 아시아에서는 균형이 더 긍정적으로 보인다.
--- 「4장 _ 종교 간 대화와 복음화」 중에서

우리의 문제는 기독교 역사의 상당 부분을 뒤덮은 어두운 그림자, 즉 오만한 불관용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는 사랑의 교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문화적 파괴와 유혈 사태를 보여준다. 우리 역사의 그 부분을 묻어버리기는 어렵고, 우리가 잊으려 할 때마다 다른 이들이 항상 그것을 상기시킬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는 종교사 전반에 걸쳐 인간의 신앙과 헌신의 위대한 힘과 동반된 파괴적인 증오와 상호 적대감의 치명적 후유증에서 자신이 바라는 이상을 추구해 왔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 영혼 속에 깊이 뿌리내린 분열의 역사적 존재를 인정하게 하며, 그러한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종교 신학의 핵심 과제임을 제안할 근거를 제공한다.
--- 「5장 _ 종교 신학으로 나아가는 길」 중에서

이제 우리는 제목에서 종교 간 대화와 철학을 중립적인 접속사 ‘그리고’로 연결함으로써 회피했던 문제에 이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종교 간 대화가 두 개 이상의 종교가 익숙한 경계를 벗어나 서로를 만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대화의 실천은 이러한 만남들이 사실 모두 동일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대화의 현상학은 아마도 다양한 대화 수준에 대한 질문에 답함으로써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만남이란 무엇인가? 왜 만남이 발생하는가?(동기) 만남의 목표는 무엇인가?(목적) 어디서 만남이 이루어지는가? 이 틀을 적용해 보자.
--- 「6장 _ 종교 간 대화와 철학」 중에서

욕망 평가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분명히 절대자에 대한 개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심장부에 자리한 바로 그 욕망을 통해 인간을 적극적으로 끌어당기는, 행동하고 욕망하며 사랑하는 인격체로서의 존재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욕망과 행동과 사랑이 완전히 투명한 지혜 속에서 중화되어 어떤 대상이나 계획, 목적에도 제한받지 않는 순수한 의식으로서 공空으로서의 존재가 있다. 이 의식은 끌어당길 수 없으며 오직 모든 행동과 욕망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Abgeschiedenheit)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 「8장 _ 불교, 기독교, 정토진종에서의 욕망」 중에서

꽤 오래전, 미국에서 급성장하던 선종은 미국 내 일부 선원에서 드러난 스캔들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선종 스승들의 성적 학대 행위와 재정적 문제 행위였다. 나는 이제 모든 세부 사항을 잊었지만, 그 사실들은 우리 모두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깨달음을 얻은 존재여야 할 선의 승려들이 어떻게 그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가? 선계에서는 곧 두 가지 다소 상반된 답변이 나왔다. 하나는 … “그러한 행위를 저지르는 선사는 그로 인해 자신이 깨달음을 얻지 못했음을 증명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초월적 지혜가 본질적으로 도덕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당연히 주체가 매우 윤리적인 삶을 살도록 이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

두 번째 답변은 첫 번째와 정반대다. “깨달음은 윤리와 무관하다” 혹은 “선은 윤리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가장 유사한 발언은 … 하나조노대학 총장인 니시무라에신(西村栄信)이 한 말이다. “선禪은 윤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향후 논의 가능성을 위해 이 발언을 들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바를 즉시 명확히 밝히겠다. 선이 단순히 공의 지혜로 상승하는 움직임이라면, 이 말은 완벽히 타당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동시에 자비로 하강하는 움직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10장 _ 선(禪)과 윤리에 관한 성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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