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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두 장의 그림 009
| 1 | 북변의 겨울 갑자년(1804년 - 순조 4년) 섣달 열흘 026 | 2 | 명기집략 신묘년(1771년 - 영조 47년) 오월 스무날 050 | 3 | 도망 신묘년 오월 스무날 082 | 4 | 감위수 신묘년 오월 스무하루 오전 099 | 5 | 세심당회맹 기축년(1769년 - 영조 45년) 사월 초나흘 128 | 6 | 임오화변 임오년(1762년 - 영조 38년) 윤오월 열사흘 156 | 7 | 의혹의 그림자 신묘년 오월 스무사흘 183 | 8 | 함정 신묘년 오월 스무사흘 203 | 9 | 호구 신묘년 오월 스무닷새 228 | 10 | 부대시참 신묘년 오월 스무엿새 243 | 11 | 책비 신묘년 오월 그믐 264 | 12 | 응징 병신년(1776년 - 정조 즉위년) 삼월 스무이레 292 | 13 | 문체반정 계축년(1793년 - 정조 17년) 정월 316 | 14 | 연경 신유년(1801년 - 순조 1년) 정월 338 | 15 | 죽음 을축년(1805년 - 순조 5년) 사월 보름 342 작가의 말 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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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지만, 문학은 그 승리의 기록 아래 짓눌린 패자들의 숨소리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강동수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백탑의 달』은 조선의 문예부흥기라 일컬어지는 영·정조 시대, 그 화려한 조명 뒤편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침묵해야 했던 천재들의 열망과 개혁 군주 정조의 처절한 고독을 묘파한 수작이다.
1.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된 소설 강동수의 장편소설 『백탑의 달』은 18세기 조선의 지식인 사회를 뒤흔든 ‘명기집략 사건’과 그 여파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작가는 실록과 문집의 기록 사이에 남겨진 균열에 주목한다. 표면에 드러난 것은 책 한 권을 둘러싼 필화 사건이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과 사상,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긴장이 응축되어 있다. 소설은 바로 그 균열의 틈에서 출발한다. 2. 세심정의 약속과 그 파국 1769년 봄, 마포 세심정. 세손 이산과 박제가, 박지원을 비롯한 백탑파 지식인들이 맺은 은밀한 모임은 새로운 조선을 향한 열망의 표지였다. 그러나 이 약속은 곧 ‘명기집략 사건’이라는 피의 기록과 맞물리며 파국으로 향한다. 자유를 꿈꾸던 문장은 국가 권력의 감시 아래 놓이고, 지식인은 사상과 양심의 경계에서 흔들린다. 3. 개혁 군주와 지식인의 비극적 연대 이 작품의 중심에는 개혁 군주 정조의 고독이 있다. 정조는 누구보다 새로운 질서를 꿈꾸었으나, 동시에 왕조의 질서를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 결과 그는 끝내 동지들의 문장을 단죄해야 하는 선택 앞에 선다. 소설은 이 모순을 단순한 정치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으로 정교하게 그려낸다. 4. 두 장의 그림이 말하는 것 소설의 미학적 핵심은 두 장의 그림에 있다. 박제가가 유배지에서 복원해낸 〈세심정계회도〉가 찬란했던 출발을 상징한다면, 연경에서 그려진 〈연평초령의모도〉는 그 모든 열망의 종착을 보여준다. 특히 등을 보인 인물의 뒷모습은 표면적으로는 대만의 정성공(연평군)을 그리고 있으나, 그 실체는 좌절된 조선의 꿈을 어깨에 짊어진 채 홀로 돌아선 정조, 곧 이산의 고독한 실루엣이다. 이 뒷모습 하나에 실록이 차마 기록하지 못한 정조의 눈물과 고립무원의 처지가 집약되어 있다. 5. 사료와 문학의 결합 강동수는 『영조실록』, 『정조실록』, 『정유각집』, 『열하일기』 등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18세기 한성의 공간과 권력 지형을 촘촘하게 복원한다. 동시에 과도한 해설을 피하고 절제된 문체를 유지함으로써, 독자가 역사적 긴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도록 유도한다. 이 작품은 사료의 사실성과 문학의 상상력이 균형을 이루는 드문 성취를 보여준다. 6. 지금, 여기의 문제로서의 역사 『백탑의 달』은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를 통해 독자에게 현재를 묻는다. 영조 말기의 책화 사건과 정조의 고뇌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겹쳐지며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지켜야 할 문장은 무엇이며, 무엇이 금지되어야 하는가. 7. 백탑 아래서 스러진 약속 이 소설은 결국 한 시대의 약속이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를 기록한다. 백탑 아래에서 시작된 열망은 달빛처럼 빛났으나, 끝내 제도와 질서 속에서 소멸한다. 강동수는 그 소멸의 과정을 애도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한다. 작가의 말 내가 영조 때 일어났던 ‘명기집략’ 옥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십여 년 전이었다. 어떤 계기에 조선왕조실록을 뒤지다가 우연히 이 사건이 눈에 띄었는데, 무심코 그 대목을 찾아 읽다가 소설쟁이로서의 촉이 발동했다.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보니 관련 논문이 두어 편 눈에 띄었을 뿐 일반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었다. 장편소설로 써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손에 닿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틈나는 대로 읽긴 했지만 쉽게 착수하지는 못했다. 사건 자체야 복잡한 건 아니었지만 그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당대의 권력 지형도와 부수적인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업과 이런저런 일에 밀려다니느라 그동안 긴 글을 쓸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그러다가 마음을 다잡은 것은 재작년이었다. 머리 한 귀퉁이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이 이야깃감을 가둬두기만 해선 안 되겠다는 자각이 들었던 거다. 두어 달 동안 자료를 체계적으로 다시 읽고 보충하면서 머릿속에서 소설의 얼개를 짰고, 여름 내내 전남 해남의 작은 방에 틀어박혀 초고를 썼다. 방대한 자료의 숲을 헤매는 것은 때로는 고통이었지만 즐거운 노역이었음을 고백한다. 수선전도(首善全圖)를 벽에 붙여 놓고 궁궐과 관아, 도로를 골목골목까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당대 한성의 풍경을 상상하기도 했다. ‘명기집략’ 사건이 작가로서의 내 촉수를 건드린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조선의 문예부흥기라 일컬어진 영조 시대에 일어난 이 책화 사건은 정조 때의 문체반정(文體反正)과 더불어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야말로 근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 아닌가. 우리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최근까지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굴레가 씌워졌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완전히 보장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 않나. 그렇게 보면 영조 말년에 일어났던 이 사건 자체가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자신의 삶과 연결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팩션 소설이 단순한 스토리텔링에 머물지 않고, 당대의 권력 지형도, 북학파들의 사상적 동향, 그리고 왕조 질서를 떠받치는 성리학적 사상 체계를 모은 인문적 읽을거리가 될 수 있도록 쓰고 싶었다. 나름대로 실록의 내용을 충실히 옮겼으며, 요즘 독자들에게 난삽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문장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본래의 의도가 제대로 실현됐는지 자신할 수는 없다. 혹시 있을 수 있는 오류는 전적으로 작가의 무지 때문이라고 해량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소설이 직간접적으로 인용한 자료가 적지 않아 일일이 들기는 어렵다. 그래도 특히 신세 진 몇 권의 자료는 밝히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영조실록』과 『정조실록』, 박제가의 『정유각집(貞蕤閣集)』,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등을 저본으로 삼았고, 정민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 공화국』, 이덕일 『당쟁으로 읽는 조선 역사』 등 단행본도 참고했다. 이밖에 정길수 「이희천론-18세기 후반 노론청류 지식인의 운명」, 장민영 「영조대 명기집략 사건의 정치적 성격」 등 논문도 참조했다. 자료를 찾아 읽고 이야기를 꾸미며 초고를 쓰고 고친 지난 2년은 되돌아보면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집필 공간을 마련해준 해남의 백련재와 이 난삽한 작업을 잘 마무리해 준 실천문학사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2026 초봄 강동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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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아래 모였던 북학파 천재들의 열망,
그 위로 차갑게 뜬 달, 그리고 스러져간 개혁 군주의 꿈. 1769년 봄, 마포 세심정. 세손 이산과 백탑파 지식인들이 맺은 은밀한 모임은 새로운 조선을 향한 열망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들을 ‘명기집략 사건’이라는 피의 기록으로 되돌린다. 한강 가에 내걸린 책괘들의 목, 그리고 자유를 꿈꾸던 문장은 ‘문체반정’의 칼날 앞에서 침묵을 강요받고, 개혁 군주 정조는 끝내 동지들의 문장을 단죄해야 했다. 그 비극의 중심에서 박제가는 유배지 종성에서 피를 토하듯 그려낸 〈세심정계회도〉와 또 다른 그림 〈연평초령의모도〉 속에는 실록이 기록하지 못한 정조의 고독과 좌절된 조선의 꿈이 서려 있다. 역사가 지우려 했던 문장, 정조의 눈물이 고인 그림들이 비로소 독자를 만난다. 강동수 작가는 치밀한 사료와 절제된 문체로, 18세기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사상적 긴장과 연대를 복원한다. 이 책은 백탑 아래서 시작된 한 시대의 약속이 어떻게 달빛처럼 스러졌는지를 끝내 외면하지 않는다. - 윤한룡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