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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다시 ‘작은 문학’을 꿈꾼다
1. 두 여자를 품은 남자이야기 / 조갑상 2. 천년의 사랑 / 김하기 3. 노다지 / 강동수 4. 사레 / 박향 5. 그림자들 / 정인 6. 벽, 난로 / 이정임 해설 - 현(絃)의 울림: 약한 곳을 향한 응시 / 박형준 |
曺甲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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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한다면 미국통으로서 그녀 자신의 대외활동에 핸콕 의원이 도움이 된다거나, 은수와 옥희를 남북으로 여기고 핸콕의 미국과 어쨌거나 연결시켜 보려는 생각은 하찮거나 세속적인 것이라는 마음도 있었다. (중략) 도일 핸콕과 옥희의 결혼은 결국에는 도달해야 할 미북간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중략) 기왕 한반도와 동북아 전문가로 조명 받고 있으니 북의 여자를 새 아내로 맞이한 게 정치활동에 플러스가 되면 플러스가 되지 마이너스 요인이 될 확률은 극히 낮았다.” ---「두 여자를 품은 남자이야기」중에서
“그는 석불사에서 탑신석에 인왕의 부조를 새기는 일을 하다 잠깐 낮잠을 잤는데 꿈에 아름다운 한 여자가 나타났다. (중략) 인간의 집착은 바람을 붙잡아 새장 속에 가두어놓는 것만큼이나 허망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잊지 못해 망치질을 하고 또 했다. 배판수는 유한한 인간의 유한한 모습을 무한의 관세음보살상에다 새겨 넣는 모순된 작업을 했다. 달빛 같은 사랑과 별빛 같은 번뇌를 부처님의 얼굴에 새겨 넣었다. 배판수는 조각하는 손끝으로 끊임없이 그녀의 영육을 어루만지고 매만지면서 한 여인을 완성해갔다.” ---「천년의 사랑」중에서 “일주일 쯤 후 나는 주방장이 먼저 퇴근한 틈을 타 참치와 광어 스시에다 쇠고기 간장구이를 만들었다. 다음 날 주방장이 식재료가 축난 걸 알면 입에 거품을 물테지만 혼자서 요리 연습을 해봤다고 어물어물 둘러댈 셈이었다. (중략) 집에 와서 열어보니 북한식 수수부꾸미였다. 만든 지 여러 시간이 지나 겉이 딱딱하게 굳어있었지만 레인지에 데워 먹으니 고소한 게 먹을 만 했다. (중략) 어느 어두컴컴한 전각의 주춧돌 밑 땅 속에서 구렁이가 몸뚱이 사리듯 포개져 있는 금속 무더기도 꿈에 나타났다. 새알처럼 반짝이는 그 둥글고 노란 덩이들은 어느 날이고 부화를 기다리는 듯 꿈꾸는 모습이었다.” ---「노다지」중에서 “결혼생활은 대체로 무난했다. 결혼 6개월 만에 첫 아이를 유산하고 준석씨, 몸이 진흙 같아, 하고 흐느낀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아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내가 잘 쓰지 않는 말이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그는 곧 그 느낌을 지워버렸다. (중략) 단 한 순간도 그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은 이제 손바닥에 난 종기처럼 내내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중략) 고통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야기하지 않은 고통은 곪는다. 외면당한 상처도 곪는다. 곪기 시작하면 아프지 않은 곳까지 그 부위는 점점 넓어진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애도가 아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차를 몰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결국 어느 곳에도 주차를 하지 못했다.” ---「사레」중에서 “그녀는 끈끈한 둘 사이의 관계를 도대체 모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며 번이나 내게 말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전할 수는 없었다. 보리에 대한 노인의 마음을 알기도 했고, 남의 가정사이기도 했다. (중략) 늙는다는 것이 끔찍하기만 했다. 내가 받았던 사랑을 생각하면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지만 그땐 그랬다. 그래서 할머니가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죄책감이 없었다. (중략) 꽃밭을 가꾸는 정도의 적당한 노동과 편안한 휴식, 그로 인해 가졌던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나는 종종 앞집 할머니와 보리와 어울렸다.“ ---「그림자들」중에서 “산복이라고 하니까 말인데, 고대에는 인간의 ‘복부’에 영혼과 애정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대. 아마도 뱃속에 많은 것들이 들어있어서 그렇겠지.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는 일이 제일 중요하기도 했을 테고. (중략) 이미 꼭대기니까 여기서 더 올라가라 소린 못하겠네. 아무쪼록, 행님의 세계에서 잘 내려가시라고 해야 하나. (중략) 할머니들이 말한 ‘부모와 나라에 진 빚’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 빚을 갚지 않아도 부모와 나라는 내게 관심이 없으니까. (중략) 한 줄 가느다란 연기가 희미하게 굴뚝 위를 그으며 날아갔다. 연기 좀 그만 내보내라는 연기 할머니의 고함 소리가 곧 시작될 것만 같았다. 호양과 고무는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벽, 난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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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국가의 시스템 속에서 배제되거나 말살된 타자의 삶을 응시하다
‘사현금’ 소설무크 1 『두 여자를 품은 남자이야기』의 관심과 서사적 특징 및 내용은 다양하다. 네 편의 동인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네이션(nation)' 이라는 가상의 공동체 내부에서 배제되거나 말살된 타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단에서도 손꼽히는 중견 작가인 김하기, 강동수, 박향, 정인 소설가의 동인(同人) 활동이 새삼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네 작가는 ‘부산/한국’이라는 시좌(視座)를 통해, 국민국가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파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안전망 속에 안주하지 못한 채 내쫓긴 이들(outcast)의 삶의 양상을 응시하며 보듬고 있다. 이들은 권력에 의해 부서지고 찢어진 연인(「천년의 사랑」), 주방보조 청년과 탈북여성(「노다지」), 왕따와 폭력으로 상처받은 아이와 부모(「사레」), 외로운 노인과 약한 동물(「그림자들」) 등과 같이 상처받은 존재이다. 조갑상, 이정임 소설가의 초대작 역시, 비주류 혼혈 이민자와 탈북여성의 정치적 만남, 그리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여성청년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사현금 동인의 작품 세계와 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인간의 속물적 근성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고군분투하는 여성청년의 이야기까지 조갑상의 「두 여자를 품은 남자이야기」는 우리가 주장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이면에, 얼마나 세속적인 인간 욕망과 속물적 근성이 내재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하기의 「천년의 사랑」은 부산의 만덕사지 전설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로, 권력과 재력 앞에 좌초하고 부서진 상실의 사바세계는 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님을 상기시켜 준다. 강동수의 「노다지」는 고단하고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삶의 자원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는 작품으로, 우리 사회 내부에 만연해 있는 물신주의와 한탕주의가 나와 타인의 관계를 파국으로 내몰 수 있음을 경고하는 디스토피아적 징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박향의 「사레」는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거나 사유하지 않는 공동체가 얼마나 위험한지, 더 나아가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문학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성찰하는 ‘소설가 소설’이다. 정인의 「그림자들」은 우리 사회 내부의 가장 ‘약한 존재’를 응시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응시를 통해 포스트휴먼적 사유를 촉발하고 있다. 이정임의 「벽, 난로」는 근자에 자주 거론되는 여성/청년의 열악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특정한 문학적 이즘(ism)을 따르거나 쫓지 않으며, 오히려 불안정한 생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당당한 인간 유형을 창조하고 있다. ‘소설의 바다’를 항해하는 호밀밭의 소설, 사현금과 만나다. 사현금 동인의 『두 여자를 품은 남자이야기』는 소설의 바다로 향하는 호밀밭출판사의 첫 번째 소설 무크지이기도 하다. 호밀밭 문학편집부는 소설선 ’소설의 바다’와 함께, 한국 소설의 사회적 상상력을 탐구한다. 또한 문학과 예술의 미적 형식을 타고 넘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흔적을 새롭게 탐사하는 서사적 항해를 꿈꾼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또 때로는 서로를 보듬으며, 난파한 세상 속으로 함께 나아가는 문학적 모험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호밀밭의 소설은 미지의 세계를 발명하는 낯선 이야기의 조타수가 되기보다는 우리가 상실한 생의 가치와 존재 방식을 집요하게 되물으며, 동시에 우리 삶에 필요한 따뜻한 자원을 발굴하는 ‘사연의 고고학자’가 되고자 한다. 소설이라는 사회적 의사소통 방식은 분명 오래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정초할 수 있는 ‘여전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소설의 바다’로 나아가려는 이유이다. - 호밀밭 문학편집부 사현금, 잡화엄식(雜花嚴飾)의 세상을 꿈꾸다 ‘지역’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여기’이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작품을 생산해 내야 할 시간적, 공간적 토대이다. 그래서 중앙 중심 ‘문학판’의 패거리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지역’이라는 화두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 새로운 시대의 담론을 생산해 내고, 그것을 구체적인 작품의 생산으로 수렴해 나가는 노력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무어니 무어니 해도 결국은 매체운동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결국 우리는 ‘글 쓰는 자’들이고, 그 글은 매체를 통해 생산되고 배포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해법이 모색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소그룹 활동’과 ‘무크지 운동’도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동인 ‘사현금’은 소설가 김하기, 강동수, 박향, 정인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우리는 함께 소설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의 작은 매체를 가질 필요성에 공감했다. 문학의 섹터화를 부추기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거꾸로 문학의 섹터화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낸다면, 다른 누군가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시도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지역 문학, 나아가 한국 문학이라는 큰 꽃밭의 백화제방을 위한 꽃모종의 하나가 되려는 것이다. 우리는 ‘잡화엄식(雜花嚴飾)’의 세상을 꿈꾼다. 그 결실로 첫 번째 앤솔로지를 묶어낸다. - ‘사현금’ 문학 동인, 「책을 펴내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