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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하차피의 달
개정판
조갑상
산지니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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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테하차피의 달
통문당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
‘그린파파야 향기’를 보는 부부
아내를 두고
오어사(五魚寺) 가는 길
섣달그믐날
작가의 말
개정판에 부쳐

저자 소개 1

曺甲相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웃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병산읍지편찬약사』,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을 냈다. 일반 저서로는 『이야기를 걷다』 『소설로 읽는 부산』 등이 있다. 요산문학상과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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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40*210*15mm
ISBN13
9791168617544

책 속으로

아들은 언제나 몸과 마음을 다친 그런 모습으로만 나타났다. 그토록 소망했던 명문대학 세 곳의 입학 허가서를 흔들며 뛰어드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시우는 머리를 흔들었다.
---「테하차피의 달」중에서

먹감나무처럼 자기 가슴에도 진작부터 빗물이 스며들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B가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는 비를 맞아야 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쇼윈도 너머로 비 오는 거리를 보고 있는 그의 내면은 이제 무엇으로 가득 차올라 넘칠 지경이었다. 비가 그치지 않고 언제까지나 저렇게 끝없이 내릴 것 같은 절망스런 착각에 빠져들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쓸고 내려가는 급류나 강물 같은 게 눈앞을 희뜩희뜩 지나쳐갔다.
---「통문당」중에서

오모니로 불리던 첫날, 밤이 새도록 울고 있는 나도 그림자로 보인다. 그리고 그림자가 걷히고, 비 내린 오후의 여름 저녁노을 속으로 새떼들이 날아간다. 그 순간 실같이 가느다란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그 공기에는 구봉산에서 불어오는 아침 바람과 갯내가 스며든 비안개의 냄새가 난다.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중에서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내가 무슨 상념에 잡혀 있는지 마주 보고 있는 부부도 서로 모른다. 알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알 뿐이다.
---「‘그린파파야 향기’를 보는 부부」중에서

그게 시작이었다. 아내는 지난 일을 들춰내며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눈 하나 깜작 않고 이민가는 걸 보면 자기가 외롭게 살 팔자인가 보다, 라는 소리까지 하고 있었다.
---「아내를 두고」중에서

동행을 자청하는 사내의 언행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러워서 상대방의 의사나 기색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 퍼질러 앉아버린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절까지는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수밖에 없다고 민후는 생각했다.
---「오어사(五魚寺) 가는 길」중에서


역 구내를 벗어나자 옆구리를 적시듯 바로 강이 다가왔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기울어 머리를 내민 열차 앞머리가 보였다. 강이 휘돌면 철길도 휘돌았다. 타고 가는 기차의 앞길은 보이는데 정작 자신이 가는 길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냉기처럼 종표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족의 반대야 어느 정도 예상한 바지만 모친부터 이토록 마음까지 상해 가면서 완강하게 나올 줄을 종표는 짐작지 못했다.
---「섣달그믐날」중에서

출판사 리뷰

▶ 망각과 회상의 굴레 속에서 겨우 움켜쥐는‘나’

「통문당」과 「오어사(五魚寺) 가는 길」은 ‘회상’의 문법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각각 대학 때 사귀었던 여인의 부고를 듣는다. 하지만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빈소를 찾는 대신 병원 주차장 한 구석에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거나, 병원이 있는 도시를 빙빙 도는 것으로 조문을 대신한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에 대해 「통문당」의 주인공은 “차라리 들은 이야기나 지어낸 이야기라고, 누군가 딱 한 사람에게만 말하는 게 그때 그 시간을 위한 일이 되지는 않을지.”(73쪽)라며 의미를 부여하지만, 끝내 자신을 누르는 하중을 벗어날 수 없음을 느낀다. 「오어사(五魚寺) 가는 길」의 주인공 역시 낯선 사내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 두 작품에서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자아를 통합하는 데 있어 ‘회상’이 중요한 양식임을 말한다.

▶ 먹빛에서 잿빛을 아우르는 부부의 눈빛을 담다

「아내를 두고」, 「‘그린파파야 향기’를 보는 부부」는 예기치 않은 삶의 균열을 겪는 노년 부부와 젊은 부부의 심리를 담담하고 차분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아내를 두고」는 노후에 접어든 부부가 종교문제로 갈등을 빚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리라던 주인공의 생각은 아내의 입교(入敎)와 사고사를 맞아 여지없이 깨어진다. 「‘그린파파야 향기’를 보는 부부」는 살아가는데 그리 중요하지는 않으나 진지하게 이야기되는 부부의 대화를 먹먹하게 풀어냈다.

“왠지 기분이 안 좋아.”
문득 아내가 말한다. 걸음을 멈출 정도의 문득은 아니다.
“왜 통금 때문에?”
“그것도 조금은.”
“싸울 일은 아니야.”
“싸울 일도 그냥 지나가는데 영화 보고 왜 싸워요.”
부부의 걸음이 정상을 되찾고 지하철 입구에 다다른다.
-「‘그린파파야 향기’를 보는 부부」(143쪽) 중에서

▶ 골목마다 새겨진 이름 없는 목소리, 소설로 되살아난 부산

『소설로 읽는 부산』(1998), 『한국소설에 나타난 부산의 의미』(2000), 『이야기를 걷다』(2006) 등 부산에 관한 책들을 꾸준히 펴내온 조갑상 소설가는 문학작품 속에서도 꾸준히 부산의 색(色)을 내며 ‘부산의 문화지리지’를 부지런히 그려나가고 있다.

일인칭 독백체로 헤어진 남녀의 사랑을 술회하는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에서는 남선창고가 주 배경이다. 실제 있었던 ‘조선인 오모니 살인 사건’을 토대로 하며 1930년대 중반 부산의 모습을 복원한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꿈꾸며 살아간 조선인 오모니에게는 순간의 사랑, 멈추고 싶은 시간이 있다. 입은 있지만 열 수도, 말할 수도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소설을 마무리한다.

표제작 「테하차피의 달」의 배경 미국 모하비 사막에 온갖 모양의 인물들이 모여들듯 소설집을 읽으면 부산 또한 온갖 모양의 인물들이 켜켜이 침전되어 있는 도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야기’로 지역의 문화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조갑상은 지역문학에 여전히 발화되지 않은 목소리를 묻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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