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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망자가 산 사람을 만나게 하다 1972
그해 여름 1950
유족회 1960
표적 1961-1968
긴 하루 1972
밤하늘에 새기다 1979
해설
작가의 말
개정판에 부쳐

저자 소개 1

曺甲相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웃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병산읍지편찬약사』,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을 냈다. 일반 저서로는 『이야기를 걷다』 『소설로 읽는 부산』 등이 있다. 요산문학상과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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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140*210*21mm
ISBN13
9791168617537

책 속으로

1950년 전쟁 때 당한 고통을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고초는 결코 남에게 내세울 수 없는 것인 데다, 아직도 진행 중이기에 기억은 더욱 생생할 수밖에 없다. 한용범은 찬바람 속에 몸이 어슬해 옴을 느끼면서, 지금보다 몇백 배 오장육부와 머릿속이 새파랗게 떨려 왔던 그 여름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 p.21

몇 사람이 소리치며 몸을 일으키고, 같이 묶인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땅! 하는 소리가 울렸다. 한용범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달을 보았다. 밤의 눈. 허벅지인지 옆구리인지가 뜨끔하다 싶더니 앞사람들이 벼 가마니 쓰러지듯 풀썩 몸을 덮었다. 그는 달이 공포가 아니라 밤의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을 놓기 직전에야 알았다.
--- p.162

아침에 만난 옥구열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어깨 곁에 붙어 서서 “긴 하루였지예?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다른 세월 오는 안 오는지 지켜보입시더.”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한용범은 어둑해 오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당장은 견디고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견디며 기다리는 그 자체도 희망일 것이었다.
--- p.386

“사람이 살면서 말입니다, 사는 목적을 어데 돌에 새겨 놓듯 그렇게 유별나게 새기고 사는 경우는 안 드물겠습니까. 근데 제가 자꾸 그리 사는 거 같아 맘이 되고 고달픕니다.”

어느 날 그의 말에 구씨 할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그기 다 원망이 자라 그런 기지. 그걸 우찌 지우고야 살 수 있겠노만은 그래도 지 몸 상할 일 말고 딴 사람 미워 마소.”
--- p.395

옥구열은 가까스로 길을 막고 선 사람들을 헤집고 앞으로 나갔다. 스크럼을 짠 시위대의 머리가 보였다. 선두는 어깨동무를 하고 충무동 육교 쪽으로 뛰어왔다. 몰려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옥구열도 박수를 쳤다.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유신 철폐, 독재 타도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사람의 시민이면 되었다.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할 말을 하는 국민이고 싶었다.
--- p.409

출판사 리뷰

▶국가폭력에 대한 조갑상 소설가의 천착을 응축해낸 문제작

『밤의 눈』이 출간되기까지, 저자 조갑상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국가폭력과 집단학살의 역사에 대해 천착해왔다. 단편소설 「사라진 하늘」(1989)과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2009)에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이후 마침내 도달한 『밤의 눈』은 학살이 벌어졌던 1950년대 당시의 현장을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은 4·19 혁명 이후의 유족회 활동,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정권의 유족 탄압과 체포, 그 이후 다시 민주화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1979년의 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을 경유하며, 폭력 이후에 남겨진 이들이 사건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인물들은 폭력이 남긴 구체적 상흔과 함께. ‘불순분자’라는 정치적 낙인과 함께 정신적 고통 또한 짊어져야 하는 현실에 처한다. 소설의 눈은 역사적 서술이 담아내지 못하는 이러한 개인적 기억의 영역으로 파고든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는 서술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정치적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학살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고, 과거는 고착되는 대신 현실로 이끌려온다.

▶“시절을 탓하자니 분노가 가슴을 찢고,
운명이라기에는 너무나 허망했다.”


1972년 겨울, 소설의 두 주인공 한용범과 옥구열은 유신헌법 국민투표를 마치고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근 10년 만에 조우한다. 잠깐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지만 드러내놓고 아는 체할 수도, 반가워할 수도 없는 이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며 1950년의 여름을 회상하는 데서 소설은 시작한다.

한용범은 조부 대에 대진읍에 정착한 지주 가문의 셋째다. 부유하고 학식과 인품이 뛰어나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온 탓에 그는 대진읍의 터줏대감이자 권력자인 지서주임·부읍장·방위대장·의용경찰대장 등 ‘사인방’에게 은근한 미움을 사 왔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대진읍에 해군첩보대가 파견되자, ‘사인방’을 비롯한 대진의 권력자들은 첩보대 대장 권혁 중사와 합세해 눈엣가시인 한용범을 사상범으로 몰아세운다. 감금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보도연맹 가입자들과 함께 학살 장소로 끌려갔던 한용범은 간신히 목숨을 구하지만, 그를 대신해 여동생 한시명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대진읍 학살 사건으로 보도연맹 가입원이었던 아버지를 잃은 옥구열은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피해 마산에서 운수업을 하며 살아가다, 4·19 혁명 이후 보도연맹 가입자 행방 공개를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보고 대진읍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유족회를 결성하기로 마음먹는다. 사건의 생존자인 한용범을 자문으로 초빙하고 자신은 유족회 회장을 맡은 옥구열은 유족들을 모아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해 애쓴다. 그러나 5·16쿠데타로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사망한 좌익분자를 애국자로 가장하고 군경이 양민을 학살한 것처럼 왜곡 선전하여 국민을 오도’했다는 명목으로 한용범과 함께 체포되어 고초를 겪는다. 유족회 역시 국가의 탄압을 받으며, 두 인물은 자신들이 마주한 두 번의 국가폭력에 대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긴 침묵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전쟁 나고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국가는 전장에서 죽은 이들을 분류하여, 어떤 이들은 기억하고 어떤 이들은 망각할 것을 요구한다. 적과 싸우다 전사한 이들은 국민의 이야기로 기념되지만, 대진에서 죽은 이들은 국가가 결정하는 ‘국민’의 자격 바깥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로 남게 된다. 『밤의 눈』은 명예와 희생의 이야기로 기념되지 않고 잊혀 가던 국가적 폭력 사건 속 인물들을 소설의 형식으로 되살려내 우리 앞에 데려다 놓으며, ‘좋은 국민’과 ‘바람직한 국가’라는 기준은 과연 누가 규정하는 것인지 묻는다. 주둔 초반에는 주동자들의 말에 비판적이었다가 점차 학살 참여에 무감각해지는 권혁 중사, 남편은 전사하고 시아버지까지 좌익 성향을 띠었다고 잡혀가자 방위대장에게 의존하게 되는 한시명의 친구 양숙희, 아들의 입대를 볼모로 재산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는 용주골 이 부자, 학교를 세우고 약자들의 권리를 지키려 애쓰다 대진읍 실력자들의 눈 밖에 나 살해당한 남상택 목사 등 시대 속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들의 양상은 사건이 좌와 우,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대립적 구도로만 해석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 밝음이 있을 것이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두려운 눈길과 그들을 지켜보는 하늘의 달이 소설 속에서 문득 ‘밤의 눈’으로 목격될 때, 우리는 목격자이자 증언자가 되어 이웃의 고통에 관한 ‘밤의 눈’을 떠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밤의 눈』은 역사적 폭력과 그에 따르는 침묵과 낙인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응시하며, 소설의 형식을 빌려 그 가장 내밀한 상처를 다시금 우리가 모두 볼 수 있는 자리에 가져다 놓는 작업이다. 나아가 국가의 가장자리를 탐문하고 그늘을 드러내며 국민의 공간이 지닌 분열과 양가성을 제시하는 문제적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1979년, 유신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인 옥구열이 ‘내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겠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미래의 시점에서 소설 속 과거를 바라보는 독자로서 우리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밤의 눈』은 계속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증언의 목소리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삶을 이어 나가야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가져도 된다는 말을 건넨다. 삶과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진실을 되찾을 방법은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밤의 눈』은 문학의 방식으로 그 증언을 수행하는 노력의 일환이자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고통의 기록이며, 침묵 속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도록 받치는 단단한 위로이다. 등장인물이 ‘따뜻한 가슴을 지닌 독자들을 많이 만나 위로받고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라는 저자의 바람은 곧 『밤의 눈』을 잊지 않는 독자들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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