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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권
혼일강리도 ― 9 고래태몽 ― 11 하얀 소금밭 ― 14 도마름 천막개 ― 24 명남당의 그림자 ― 35 서추재 김석주 ? 43 천막개의 고변 ― 46 윤보향의 회임 ― 50 박기산의 몰락 ― 52 천막개의 금의환향 ―58 업둥이 어둔 ― 76 천막개의 변신 ― 83 박기산의 습격 ― 87 스승 이동영 ― 101 스승 박창우 ― 109 만파식적(萬波息笛) ― 112 안용복과의 만남 ― 114 울릉도행 ― 122 한양 상경 ― 131 세자 이순 ― 133 누이 천시금 ― 137 세자와의 만남(1) 145 세자와의 만남(2) ― 148 세자와의 만남(3) ― 152 북촌 홍루 ―160 하멜의 딸 하영 ― 171 고향 울산 ― 176 안핑 해전 ― 187 누이 천시금의 편지 ― 198 대과 합격 ― 202 허적의 유악사건 ― 207 아버지의 편지 ― 214 어둔의 생모(生母) ― 223 시련 ― 228 울릉도 탐사 ― 239 숙종과 장희빈 ― 242 가문의 복권 ― 252 숙종과의 알현 ― 257 대한선 건조 ― 271 동래 죽성 이인성 ―275 일본 여인 하나코 ― 289 독도출정 ― 292 울릉도 정벌 ― 306 독도 정벌 ― 314 이치로와 월희 ― 319 울릉도 독도 태수 박어둔 ― 329 일본 에도로 가다 ― 335 에도 담판 ― 340 막부 장군의 서계 ― 349 초량 왜관 ― 363 숙종의 친국 ― 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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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울산 앞바다를 보아라. 두려워하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저 바다 너머에 있는 울릉도와 우산도가 너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울릉도와 우산도는 꿈과 전설이 있는 섬이기에 소중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신문왕이 꺾었다는 만파식적 대나무를 찾아서 울릉도와 우산도를 온통 돌아다녔다.” --- p.110 “왜인들이 울릉도와 우산도를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데 큰일이군. 반드시 우리 손으로 몰아내야 할 텐데.” 어둔은 울릉도 숲속에서 전설 속의 만파식적과 금척, 천사옥대와 불사자를 찾아다녔다. 어둔은 울릉도에서 돌아와서도 내내 귀신고래와 만파식적, 천사옥대와 불사자의 전설을 잊지 못했다. --- p.125 어둔은 울진 연안 일대와 울릉도, 자산도(子山島, 독도)에서 불법어로에 시달리는 해척들 전원에게 자신의 수결이 있는 도해면허증과 채복공문을 발부했다. 조선지도에는 대부분 우산도를 울릉도보다 안쪽 혹은 나란히 그려놓았다. 그것은 오류라기보다는 우산도를 우리 땅이라고 느끼기에 심리적으로 그만큼 가까운 곳에 그려놓은 것이다. --- p. 229 장희빈이 궁궐에 들어와 황음한 왕을 낚아 올리는 일은 양어장에서 고기를 낚는 일보다 쉬웠다. 첫날밤 왕은 그녀의 옥문을 경험한 뒤 곧바로 처녀성을 의심했다. 왕은 차마 말로 못하고 지필묵을 꺼내어 글로 썼다. ‘모심내활필과타인(毛深內闊必過他人: 털이 깊고 안이 넓어 허전하니 필시 타인이 지나간 자취로다)’ 그러자 장희빈이 배시시 웃으면서 붓을 들어 대구를 적었다. ‘후원황률불봉탁 계변양유불우장(後園黃栗不蜂坼 溪邊楊柳不雨長: 뒷동산의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무성하게 자랍니다)’“ --- p.247 “울릉도가 우리나라에 소속되었음은 삼국사기 이사부조에 기록되어 있고 또 최근의 기록인 여지승람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조에 들어서도 울릉도에서 방물을 거두기도 하고 도민을 조사 정리하기도 한 전고가 명확히 있거늘 왜노들은 무슨 망발을 하고 있는 것이냐.” --- p.259 박어둔의 발사 명령이 떨어지자 서화립이 부시를 쳐서 약선에 점화했다. 약선 화승이 타들어가 가더니 장약에 점화되었다. 쾅!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구리와 철정과 화약으로 뭉친 30근의 거대한 탄환이 포구멍에서 하늘을 향해 포물선으로 날았다. 포성에 놀란 물새 떼들이 하늘을 날았고, 작은 갈대 섬에 거대한 포연이 일었다. --- p.296 박어둔은 울릉도를 점령한 뒤 항왜(降倭, 항복한 왜인)들은 조선인으로 귀화시켜 울릉도에 계속 거주하게 했고, 저항하는 일본인들은 뇌옥을 만들어 포로로 잡아두었다. --- p.313 대한선에 안용복 김가을동 서화립 등 100여 명이 승선해 울릉도에 당도해 왜선 4척을 만나 3척을 격파하고 사흘 뒤 자산도에서 호키주 함대 7척을 격파한 뒤 오야가의 두목 오야 타로와 무라카와가의 두목 무라카와 이치베에를 비롯해 포로 7명을 사로잡고 나머지 거주 왜인들을 모두 일본으로 돌려보냈습니다. --- p.338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노중(老中, 가신의 우두머리)을 불러 말했다. “울릉도와 자산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문구를 써주어라. --- p.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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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 바다의 제왕 박어둔은 누구인가?
장편 역사소설 『독도전쟁』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숙종(1661년) 전후이다. 박어둔은 안용복과 함께 일본의 막부 도쿠가와에게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인정한 서계를 받아온 역사적 인물이다. 이미 독도는 고대로부터 우리나라의 영토였으며, 이후 그의 전쟁으로 독도는 우리나라의 영원한 영토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다의 제왕 박어둔은 1661년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해외로 망명하면서, 종인 천막개의 업둥이로 자랐다. 그 후 스승 이동영과 박창우, 송시열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소과·대과에 합격해 울진현감으로 부임한 그는 숙종의 명을 받고 울릉도와 독도 탐사에 나선다. 왜적들을 소탕하고 안용복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막부의 서계를 받는 활약 끝에 양도를 조선의 땅으로 회복했다. 숙종 22년 울릉도와 독도에 침입한 왜적을 소탕한 뒤 숙종의 밀명을 받고 아시아 해상항로를 항해했으며 일본, 현재의 대만, 중국, 베트남, 인도,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 교황을 최초로 알현했다. 이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해외로 망명한 부친과 상봉하고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귀국해 동양인 최초로 세계일주를 했다. 박어둔은 그 뒤로도 울릉도와 독도에서 열 차례 이상 왜적을 물리쳤다. 또한 안용복과 더불어 일본으로 도해해 막부 장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담판하여, 일본인의 양도 도해를 금하는 최후의 금제를 받아내 마침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땅으로 다시 한 번 확정지었다. 말년에는 아메리카 대륙 등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바다와 섬을 탐험했으니 국내외 사람들이 그를 외경하여 바다의 제왕인 해제(海帝)라고 불렀다. 그는 1720년 60세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의 생애는 우연하게도 조선의 임금 숙종의 생애와 똑같았는데, 사람들은 육지의 임금이 숙종이라면, 바다의 임금은 박어둔이라고 했다. “박어둔과 안용복은 들어라. 너희들이 잘한 일이 있다. 도쿠가와의 서계를 받아와 울릉도와 독도가 아방(我邦)의 영토임을 확실하게 증빙한 것이다. 그 일은 자손 대대로 칭찬받고 존경받을 일이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