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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 평전 : 언론의 길을 묻다
순한글신문을 마든 독립운동가
김상웅
소동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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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차례

추천사 | 이종일 선생의 평전을 추천하며 004
책머리에 010

1장 잊혀선 안 되는 인물
묵암 이종일을 찾아서 021
충남 태안에서 유학자의 아들로 030

2장 성장기
과거급제, 다산 정약용 실학사상에 심취 035
수신사 박영효의 수행원으로 일본 다녀와 039
실학과 동학사상으로 무장 043

3장 언론 활동
여성과 서민 대상의 『제국신문』 창간 051
직접 쓴 『제국신문』 창간사 055
자주독립의 논설 집필 058
여성들에게 인기 높아 3천 부 증간 064

4장 독립협회 시기
최초의 사회 정치단체 ‘독립협회’ 후원 071
여성 해방에 선구적 역할 075
‘대한제국민력회’의 조직과 활동 079
독립협회 폐쇄, 비판 사설 작성 084

5장 시련기를 맞아
필화와 구금, 검열의 수난 겪어 091
국치 직전 『제국신문』 폐간 096
학교 설립과 강의, 일진회 경계 101
국치 전야 각종 사회단체 참여 106

6장 나라는 망했으나
천도교 기관지의 책임 맡아 113
동학, 그리고 손 교주와의 도타운 인연 118
천도교, 종교단체여서 해체 면해 122
일제의 ‘작위’ 거절 126
손병희의 신뢰로 구성된 비밀 조직 130

7장 민족운동의 묘판
민족문화수호운동본부 결성 137
무장투쟁을 위한 천도구국단 조직 142

8장 민족사의 거화(巨火) 3·1혁명
국제 정세의 변동을 주시하며 거사 준비 149
독립운동 기금 모으기 154
장총 10여 정과 실탄 200발 준비 157
이종일이 쓰려던 독립선언서, 최남선에게 161
독립선언서 인쇄 중에 등장한 악질 형사 165

9장 총독부 법정에 서다
민족사의 대전환, 3·1혁명 173
경무 총감부 거쳐 서대문 감옥에 수감 179
경찰 신문조서 183

10장 옥고, 그리고 새로운 항쟁
3년 형 선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195
3년여 만에 출옥, 감옥 안팎이 다르지 않아 201
투옥 대비 『조선독립신문』 발행 준비 205

11장 최후의 저항과 순국
제2의 독립선언 준비 중 적발당해 213
여성 해방의 선구자, 가정보다 국가와 민족 220
향년 68세, 셋집에서 굶어 죽다 225

저자 소개 1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는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이회영 평전》, 《노무현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이승만 평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박정희 평전》, 《신영복 평전》, 《현민 유진오 평전》, 《리영희 평전》, 《송건호 평전》, 《외솔 최현배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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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3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48*210*15mm
ISBN13
9791193193204

책 속으로

‘역사의 길’은 험난하다. 곳곳이 가시밭길이었고, 생계는 막혔고 당사자뿐 아니라 자손들까지도 낙오되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들은 투옥, 유배, 고문, 사회로부터 매장 등을 당하거나 목숨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념을 지키고 정도를 걷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마땅히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의 행적이 널리 알려져야 하고 후손을 찾아 대접해야 옳다. 그런데도 해방 80년이 다 되어 가는 동안 ‘역사의 길’을 택한 소수의 지도자급 인사들만 조명될 뿐 주연급에 못지않은 역할을 한 조연급은 대부분 묻히거나 잊혔다.
--- p.11

개화운동으로 시작해 언론을 통한 국권회복운동, 민중계몽운동, 한글운동, 천도교 비밀단체 천도구국단 조직 등 조국해방운동에 이르는 67년의 험난했던 생애는 우리 겨레의 시련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는 평생을 무거운 시대적 소명을 짊어지고 고빗길을 촌보의 양보도 없이 걸었다. 그 길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 p.25

우리는 지금 3가지 종류의 도적 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생활이 도탄에 빠져 할 수 없이 도둑으로 나선 국민, 국민의 재산을 권력으로 강탈하고 국가 재산을 횡령하는 탐관오리들, 그리고 이 나라의 땅과 재산을 모두 삼키려는 열강들. 이 중 가장 급하게 퇴치해야 할 도적이 어느 것이며, 퇴치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국민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 p.68

그는 문명개화와 외세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신문의 공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것이 그가 『제국신문』을 내려놓을 수 없는 당위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안팎에서 시련이 따랐다.
--- p.91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언론 탄압에 철저했다. 일제는 반일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1907년 7월 24일 언론·출판의 자유를 금지하는 신문지법을 제정 공포했다. 그리고 사전검열을 통해 이를 통제했다. 이종일은 검열에 걸린 1907년 2월 7일 자 기사를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발행했다가 2일간 정간 처분을 받았다.
--- p.99

그는 대단히 활동적이었다.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상황에서 지식인으로서 느낀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문사 사장으로 있던 1906년 3월 31일, 윤효정, 장지연, 심의성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조직에 참여했다. 회장은 윤치호가 맡았다. 을사늑약으로 국운이 기울어진 때였지만, 우국지사들이 모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의지였다.
--- p.106

이종일의 국문(한글) 사랑은 남달랐다. 『대한협회회보』 제2호(1908년 5월 25일 자) 〈논국문(論國文)〉에서 국문 진흥을 강조했다. 한문만을 진서로 생각하고 외국 문자는 문자가 아니며, 국문은 부녀자나 아이들이나 배울 문자라고 천시하는 사회 풍조를 개탄하면서 우리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p.110

일제는 1911년 천도교의 재원인 ‘성미제’를 폐지했다. 자금줄을 끊어서 고사시키려는 술책이었다. 그리고 데라우치 총독이 직접 손병희를 관저로 불러 천도교가 민족주의 사상을 버리고 순수 종교 활동만 하라고 경고했다. 총독부는 손병희와 천도교를 탄압하는 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기관지 『매일신보』를 통해 손병희를 ‘최면술사’, ‘일대괴물’, ‘과대망상에 걸린 정신병자’, ‘사이비 교주’ 등 온갖 음해를 퍼부으며 비방했다. 지방의 신도들을 손병희와 천도교에서 갈라놓기 위한 술책이었다.
--- p.124

1910년 10월 7일 ‘조선귀족령’을 공포해 병탄에 공이 있는 자나 왕족과 구한국의 대신이나 고위 관료 등 76명(4명 반납)에 게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의 작위를 주었고, 전국의 유생 수천 명에 게는 거액의 은사금을 살포했다. 민심을 달래고 여론을 회유하며, 반일주의자들을 장차 친일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종일에게도 미끼가 던져졌다. 그러나 … (중략) … 옥파는 나라를 도적질해 간 그들로부터 작위를 주겠다는 말이 나온 것부터가 구역질 날 일이라며 일축했다. 그에게 보기 좋게 거절당했지만 일본 정부가 만만하게 후퇴할 리 없었다. 그들은 이 손 저 손을 써가면서 옥파에게 작위를 받으라고 끈질기게 교섭해 왔다. 그러나 제 나라의 관직인 중추원 의관까지 팽개쳐 버린 옥파가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작위를 받을 인물이 아니었다. 부대끼다 못해 옥파가 병을 핑계로 그들의 수작에 거절 의사를 밝히자, 일본 정부는 이 작위를 받지 않으면 일본의 천황을 모독한 불경죄를 적용할 작정이며, 재미없을 줄 알라는 둥 공갈 협박을 해왔다. 그러나 옥파는 그같이 불순한 제안을 끝끝내 거절했다.
--- p.126~127

독립을 선언한 민족대표들은 총독부 경찰 총감부에 끌려가 혹독한 수사와 고문을 당했고 악명 높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일제는 이들을 내란죄로 엮어 중형을 선고하려고 시도하면서 가족 면회조차 일절 금지하는 등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지방에서 상경한 지사 3명도 함께 가뒀고, 33인 외에 〈독립선언서〉에는 서명하지 않고 뒷일을 맡기로 했던 지사들까지도 구속해서, 재판에 넘겨진 독립지사는 모두 48인이었다.
--- p.177~178

이종일은 악명 높은 서대문형무소에서 힘겨운 옥고를 견디다가 만기를 3개월 앞둔 1921년 12월 22일에 가석방되었다. 오세창, 권동진, 최린, 김창준, 함태영, 한용운과 함께였다.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바깥 세상도 감옥 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 (중략) … 그의 말대로 ‘반도 3천 리가 모두 감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일제는 조선에서 무단통치를 하기 위해 막강한 병력을 투입하고 각종 법제를 통해 조선을 얽매었다.
--- p.201~202

19세기에서 20세기 초 반봉건·민족해방운동에 나선 이들은 이중 삼중의 굴레에서 싸워야 했다. 낡은 봉건주의 폐습과 이에 종속된 권력 그리고 국권을 침탈한 외세와의 싸움이었다. 그러다 보면 가정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해외 망명자들은 대부분 단신으로 떠났고, 국내에서의 항일투쟁 역시 ‘불고가사(不顧家事)’의 처지였다.
--- p.220

국치 이래, 그리고 3·1혁명이 좌절된 이후 수많은 매국노와 친일파들이 일제에 빌붙어 귀족이 되었고, 은사금을 받거나 감투를 쓰고 호의호식하면서 부귀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고 되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굶어 죽었다. 감옥에 가고 수배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조선 후기 학자 김득신이 억만 번이나 외웠다는 사마천의 『사기』 〈백이열전(伯夷列傳)〉에 이런 글이 나온다. “백이와 숙제는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였건만 굶어 죽었다. 춘추 시대 말기에 나타난 도적인 도척(盜跖)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회쳐 먹었다. 잔인한 짓을 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하늘에서 내려 준 자신의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 어째서인가.” 어째서일까.

--- p.228~229

출판사 리뷰

전 독립기념관 관장 김삼웅 선생의 신간 『언론의 길을 묻다 | 순한글신문을 만든 독립운동가 이종일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 이름조차 낯선 독립운동가 이종일(1858~1925)의 삶을 통해 우리가 놓쳐 온 근현대사의 또 다른 흐름을 보여 준다 이종일은 문과에 급제한 관료이자 개화사상가였고, 언론과 출판을 통해 민중을 깨우려 했던 언론인이었다. 그는 한글을 통해 여성과 민중, 사회적 약자들까지도 아우르며 순한글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해 근대적 공론의 장을 열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와 함께 독립운동의 핵심 실무를 맡았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의 인쇄와 배포를 도맡았던 실천가였으며, 3·1혁명 이후에도 제2의 독립선언을 준비하는 등 항일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지조 있는 지식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고, 안타깝게도 늘 역사 속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의 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언론의 길을 묻다 | 순한글신문을 만든 독립운동가 이종일 평전』은 이제껏 묻혀 있던 그의 삶을 따라가며 3·1혁명의 이면과 독립운동의 또 다른 축이었던 ‘언론의 길’을 본격적으로 조명한다.

저자 김삼웅 선생은 방대한 사료 조사와 치밀한 고증을 통해 이종일의 생애를 복원하며 언론과 출판, 그리고 교육과 종교가 어떻게 거대한 독립운동의 큰 흐름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특히 이종일의 순한글신문 발행과 민중 계몽 활동은 오늘날 우리 언론의 공공성과 책임, 그리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언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묻고 돌아보게 한다. 개인의 영달을 뒤로 하고 ‘역사의 길’을 선택했던 참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종일이 가난과 고문, 옥고와 굶주림 속에서도 끝내 신념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가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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