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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견의 길
2. 새로운 이미지의 첫걸음(1839-50) 3. 사진의 도약(1851-70) 4. 19세기 세계의 사진적 탐사 5.첫번째 성숙기에 접어든 사진 사회의 이미지 과학사진과 의사과학사진 사진가 신문 아마추어 사진 현실을 넘어서 : 예술사진 6. 사진, 예술과 현대성(1970-30) 7.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사진 소비에트 연방 파시스트 이탈리아 독일 : 바이마르 공화국 독일 : 제3제국 미합중국 : 아메리카 사회 8. 자신감에 찬 사진(1930-50) 9. 회의에 빠진 사진(1950-50) 50년대 : 현대성의 창시자들 60-70년대 : 사진문화의 팽창 80년대의 문턱에서 : 모순의 결실 10. 현대미술과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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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부터 예술사진은 새로우 도약기를 맞이한다. 5개년 계획 초기에는 그것이 반소비에트적 경향, 그리고 산업화라는 명령에 부응하기 못함으로써 국가 관료주의의 공박을 받았었다면, 그로부터 3년 뒤, 이런 유형의 사진은 전적으로 예술의 대열에 뛰어들게 된다. 보도사진과의 대립은 "위대한 주제와 그 실현에는 위대한 형식이 요구되며, 소비에트적 현실에 대한 위대한 사상은 예술사진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예술적 도야를 요청한다"는 전제하에 잊혀져갔다.
현실에 대한 조화롭고 낙관적이며 해맑은 표현으로 대변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워리에 따르는 모든 예술 활동은 아무튼 1934년부터 현실 그 자체에 부딪치게 된다. 즉 식료품의 부족, 농경의 강제적 집단화, 그리고 수백만 농민들이 재교육 캠프로 입소한다는, 한마디로 훈련 및 처벌 수준의 점증적 악화와, 정치적 통제 장치의 조직적 정착에 따른 생활 조건의일반적 저하가 그것이다. 이렇듯 소비에트 노동자, 농민들은 단지 사진적 현실 속에서만 그들에게 약속된 사회를 보고 있었다. 갈등과 속박을 볼 줄은 몰랐던 이런 이미지들이 어느 정도 일상적 박탈을 보상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런 의문은 여전하다. 그 형상들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서, 모순에서 해방된 사회주의 공동체라라는 환상을 창조했던 새로운 지도 계층이 박탈해간 화합과 행복에 대한 소망을 예술로서 표현하지 않았던가? 1932년의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사회주의와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 인민들의 일치 단결"을 새로운 화학 원리로 공표한 바 있었다. --- pp. 246-2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