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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소녀 / 9쪽
해제 아제르바이잔 아동 문학의 유산, 「검은 소녀」를 가로지르는 정치·교육·문학 정책의 역학 / 10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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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카스의 어느 도시에 ‘제이날’이라는 이름의 구두장이가 아내 샤라프니사와 함께 살고 있었다.
--- 「첫 문장」 중에서 “검은 소녀는 물에도 가라앉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을 만큼 독한 구석이 있다니까요!” --- p.10 “유시프, 지난 4년 동안 당신의 아내로 살면서 내게 남은 건 매질과 욕설뿐이었어. 내 젊은 시간을 그렇게 허비했어… 당신이 내게 준 그 모든 고통은 이제 다 용서할게. 다만 마지막으로 내게 약속해 줘. 앞으로는 검은 소녀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그 아이를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 p.22 이내 곰은 몸부림치며 굴레를 머리에서 벗겨 내더니 번개처럼 유시프에게 달려들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격분한 곰은 주인을 찢어발겼다. 검은 소녀는 이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 p.30 이 두 아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한 아이의 부모는 베이였고, 다른 아이의 부모는 가난했다. 한 아이는 연약하고 섬세하며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반면, 다른 아이는 강철처럼 단단한 몸으로, 어린 나이에도 많은 일을 겪었으며 오로지 제 힘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아이였다. --- p.38 검은 소녀는 가발을 들고 아그자 하늠과 함께 뛰어갔다. 두 소녀는 손을 맞잡고 과수원을 누비며 뛰놀기 시작했다. 아그자 하늠은 그간 겪은 일을 이야기했고, 검은 소녀는 ‘할아버지의 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들려주었다. 두 소녀는 기회가 닿는 한 그 방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 pp.68-69 그곳에서 검은 소녀가 울타리 근처에 앉아 노래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조용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찰나, 햇볕을 쬐며 똬리를 틀고 있던 독사가 갑자기 튀어 올라 아그자 하늠의 팔을 물었다. --- p.92 특히 주목할 점은, 작품이 아동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 머물면서도 죽음, 차별, 폭력과 같은 현실을 은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동을 현실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하지 않고 현실을 이해하도록 이끌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작가의 근본적인 시각을 보여 준다. --- p.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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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저 부인은 왜 자기 딸이 저랑 놀고 이야기하는 걸 못 하게 하나요?”
소녀의 시선에 포착된 부당한 어른들과 잔혹한 세계 「검은 소녀」는 오랜 시간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에게 애독된 텍스트이자 영향력을 발휘한 작품이다. 이 책에서 활용한 것은 1934년 버전인데, 아훈도프의 비판적 사회의식과 더불어 작품에 영향을 미친 당대의 이데올로기 또한 뚜렷하게 드러나는 버전이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 문학사의 맥락에서 「검은 소녀」는 근대 아동 문학의 출발점이자, 문학과 교육, 이데올로기가 만나는 접점을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작품은 국가와 제도의 요구에 따라 조정된 텍스트인 동시에, 그러한 조정의 흔적 자체가 문학사의 중요한 증언으로 기능하고 있는 텍스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검은 소녀」는 단순히 ‘잘 쓰인 이야기’를 넘어, 읽혀 온 방식까지 포함해 해석되어야 할 고전으로 자리매김한다. 따라서 본 번역은 1934년 판본을 토대로 하여, 이상화된 원형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재의미화된 텍스트로서 「검은 소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해제 중에서 1934년 판본은 소비에트 체제하 문학 정책의 영향이 가장 많이 반영된 텍스트로 평가된다. 그로 인해 작품 속 인물들의 성격은 훨씬 단순해지고, 계층에 따른 대비는 더 크게 강조된다. 독자에게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즉각적으로 이해시키고 소비에트 사회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체제에 협력한 도구적 문학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제르바이잔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학교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이는 「검은 소녀」가 일면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사회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의미화될 수 있는 주제를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폭력적인 세계 속에서 자라면서도 폭력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뜻깊다. 검은 소녀와 친구 아그자 하늠은 그들을 갈라놓으려는 어른들의 목소리에 복종하지 않으며, 서로의 차이를 차별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따뜻한 우정을 나눈다. 계층에 따른 삶의 양극화와 이에 따른 구분 짓기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오늘날, 100년 전 「검은 소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는 과연 ‘검은 소녀’와 같은 아이들에게 어떠한 어른이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를. 틈에서 찾은 이야기, 틈 많은 책장에서 보내는 편지 역자와 이 책의 도서 분류 기호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의논한 적이 있다. 나는 ‘기타 문학’에 해당하는 890으로 생각했는데, 역자는 ‘일본 문학 및 기타 아시아 문학’에 해당하는 830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고민 끝에 「검은 소녀」의 도서 분류는 830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과연 어떤 분류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리적으로 동유럽과 맞닿아 있고 중동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카스피해를 사이에 두고 서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와도 인접해 있다. 이렇듯 많은 문화의 영향 속에서 만들어진 아제르바이잔 문학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설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문화의 뒤섞임과 충돌, 아슬아슬한 공존은 「검은 소녀」 작품 속에서도 확인된다. 이란령 남아제르바이잔과 북아제르바이잔의 분리, 집시들, 러시아인 가정교사, ‘아가’나 ‘베이’와 같은 봉건 영주의 잔재 등… 번역본으로 택한 1934년 판본은 소비에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버전이라고는 하지만 작품 내에 그 이데올로기만으로 봉합되지 않는 다양한 요소가 흔적을 드러낸다. 「검은 소녀」는 내가 처음 만난 아제르바이잔이자, 단일한 특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아제르바이잔의 내력을 여기저기 감추고 있는 텍스트였다. 독자들은 「검은 소녀」에서 과연 어떤 아제르바이잔을 만나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