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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
김영춘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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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몇 조각의 말 / 뒷고기 / 노지 쏘주 / 이름을 잊었네 / 흘러내리는 길 / 쌉쌀한 껍질 / 목이 긴 흰 새 / 흉내 / 밥 냄새 / 상추 씻는 바다 / 가을바람 / 저만큼으로 / 뜨겁다거나 가볍다거나 / 발등 위의 주름 / 행간行間 / 달랏

2부
파문 / 실버들 아래로 / 전 생애 / 홀로 있는 시 / 눈물에게 / 위도 화투 / 이름 /
모든 것 / 옛스러운 그리움 / 이명 / 꼬박꼬박 / 이것은 무엇이느뇨 / 마늘밭 사진 / 다래나무를 본다 / 숫미역

3부
전라도 말 / 손길 / 바다에는 이르지 못하고 / 글씨에 젖다 / 한반도 / 돌아오는 길 / 오래된 수건 / 유종화 / 타는 소리 / 한 다리로 서서 / 무한송전無限送電 / 생강 석 점 / 장마 / 방문

4부
아침 / 마음이라고 부를까? / 풀 뽑기 / 마을 / 어떤 나무 / 다시 새싹 / 화엄매 / 늦여름에 쓰는 시 / 엽서 / 이 가을 / 바람에 나뭇잎 / 그윽하군 / 12월 / 어둑어둑한 날 / 이런 때 / 오늘

발문 | 이 ‘말 맛집’에 와보실라요? - 바람에 일렁이는 물의 빛 그림자, 어른거리는 삶의 기미 | 김진경(시인)

저자 소개 1

1957년 고창 해리의 눈이 많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88년 《실천문학》복간호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나비의 사상』이 있다. 선생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학교를 통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고 싶어 했지만 한 생애로는 힘이 부치는 일이었다. 요즘은 전주에서 옛집이 있는 고창을 오가는 동안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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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88g | 128*210*10mm
ISBN13
9791158162115

책 속으로

그대가
이 깊은 밤에
사는 일을 적어가고 있었으면
더 아픈 일 곁에 있었으면
오래 멀리 가고 있었으면
가는 길에
가끔씩
꽃도 들여다보고 있었으면
--- 「몇 조각의 말 전문」 중에서

개울에 발을 담근 채
제 생각에 빠져 있는 새
꿀꺽 홀로 삼키는 입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겠지
긴 목을 들어올려
멀리 하늘을 본다.
흐르는 선율 위에
흰 털을 곱게 빗어 입었으니
언제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훌쩍 떠나갈 수는 있겠다만
빛깔이 생겨나는 시간이 오면
가을인가봐
글썽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개울 밑을 들여다보느라
목이 길어지다가 휘어지고 만
휜 새
담담한 노래마냥
긴 다리를 뻗어 어딘가로 날아가네.
잠시라도
생계는 부여잡았으나
퍼덕이는 물고기를 잡는 일은 없었다는 듯이
훨훨
--- 「목이 긴 흰 새 전문」 중에서

엉덩이 뒤편의 구석진 고기인 줄 알았다
앞산의 뒤에도 산이 있어서
끝내는 뒷산을 그리워하게 된다더니
모든 작업이 끝난 뒤의
숨어 있는 고기라는구나
사람들이 요즘 별나게 좋아한다는데
고기 노릇을 할까 말까 하다가
뒤처진 살코기
엉거주춤 나선 고기의 부스러기들
드디어 맛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지
뼈와 뼈 사이의 그늘을 헤집고
뒤처진 인생을 마주하는 듯한
구석진 고기 앞에서
뭉클해지는 내 발걸음 앞에서
되뇌어보는 이름만으로도
곧 허물없는 사이가 되고 말 것 같은
뒷고기라니
자잘한 상처를 나누느라
밤이 깊어질 것만 같은 뒷고기라니
--- 「뒷고기 전문」 중에서

그 앞을 걷는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구나
좁은 길을 막아서서
부딪히면서
기다리면서
극성스럽게 그리고 가난하게
가까스로 스쳐가야만 하나
(……)
바다에는 이르지 못하고
비닐봉지에 마른 생선을 담아들고서야
느닷없이 알아채는 것인가
그 멀고 긴 대부분을 모른 채
오랫동안 살아가는 것인가
--- 「바다에는 이르지 못하고」 중에서

갈매기 몇 마리
겨울 바닷가의 물을 딛고
한 다리로 서 있다
둘 중 하나를 쉬게 하려는 건지
언 발가락을 제 가슴속에 비벼넣고서는
그냥 한 다리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
한마디도 없이
견딘다는 표정도 없이
한 다리를 번갈아가며
하루하루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도
저런 하염없는 눈빛을 하고 있을까
널따란 바다 또한 한 세상일 것이니
밀려오며 밀려가며
가슴속을 비집고 파고들며
엄동을 비껴 서려나
여기저기 서 있는 한 다리들
--- 「한 다리로 서서 전문」 중에서

이슬도 맞고 햇빛도 맞고 바람도 맞고 비도 맞았으나
온 세상 자유로웠다는 것이지
만약에 그것을 사람이 가까이하는 잎사귀라고 친다면
온실까지는 멀고 먼 이야기여서
줄기는 두껍고 구멍은 숭숭이고 모양은 얼룩덜룩이지만
단 한 가지
제 향기를 입안에 톡 쏘아대고 있었다는 것이지
오늘은 술집에서 건너편에 앉은 사내가
채소가 아닌 소주를 찾고 있다
이 집에 노지 쏘주 있습니까
지붕도 벽도 없었으나
홀로 남았을 노지 쏘주
냉장고에서 곱게 자란 소주를 마시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노지 쏘주 앞에서 잠깐 주눅이 들었다가
이 세상 어디에
노지 쏘주 같은 인간도 있지 않을까 날개를 펴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가진 것이라고는 제맛을 톡 쏘아대고 있을 뿐일
노지 인간!
노지 쏘주 비슷한 그런 인간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길들여지지 않은 그 밤은 더 그리운 날이었으려나
--- 「노지 쏘주 전문」 중에서

(……)
자꾸만 줄어드는 엽서에
마음을 쓰며
우리 곧 만나자고 적는다
마지막 줄로 남게 된
끝 귀퉁이의 귀퉁이에
나는 지금 우울하지만
네가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어
끝내 견디지 못하고 적는다
--- 「엽서」 중에서

마루에 앉아 있는 나를 잃었다
마루가 그리울 수밖에

마루에 앉아 빗줄기를 바라보는
나를 잊었다
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은 것들이
쌓여만 간다

---「오늘 전문」중에서

출판사 리뷰

“지나간 날들은 왜 가끔 시가 되느냐”

생명체가 갖는 슬픔,
그 슬픔을 받아들여야 하는 또다른 슬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훌쩍 떠나갈 수는 있겠다만
빛깔이 생겨나는 시간이 오면 …… 글썽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가슴속 물결을 일렁이게 하는 조용한 바람
가장 낮은 곳의 숨소리를 품고자 하는 시인의 따듯한 시선


돌아보는 일은
애잔한 꽃잎을 바라보는 눈빛을 닮아 있기도 해서
지난한 한 사람의 노동이 얼룩져 있기도 해서
자꾸만 멈칫거리다가
손을 적신 물자국을 낡은 수건에 닦는다
―「오래된 수건」 부분

김영춘 시인의 네번째 시집 『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에는 오랜 시간 맑은 눈으로 자신의 삶과 시대를 바라본 시인이 지나간 날들에 대한 감정을 그만의 따듯한 시선으로 되짚어낸 61편의 시들이 담겼다.

한 생애를 통해 학교를 바꾸어내고 싶어했던 시인답게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섬 학교 선생들(「위도 화투」)” “우리 선생님 결혼식/ 교실 두 칸을/ 열었다 닫었다 텄지(「모든 것」)” “행정실 박 주사님의 퇴임이 화장실에 걸려 있다(「오래된 수건」)” 등 시인이 그리는 학교에서의 풍경은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다.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며 수천 번 맞이했을 바닷바람은 “바람 없이는/ 봄바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실버들 아래로」)” “햇빛이나 바람 같은 것들이/ 따듯하거나 서늘하게 살고 있기를 바랐다(「행간」)”와 같은 시적 언어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지난 장면들은 “돌아보는 일”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담담하게 어딘가를 향해 말없이 흘러간다.

“살아 있는 사람 가슴속 바다엔 살아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솟아오르는 외로움의 바람이 있지. …… 갈데없는 외로움을 묵묵히 견디며 막막한 세상을 바람처럼 살아가는 거지 뭐.”
―「발문」 중에서

그 묵묵함과 덤덤하고자 하는 지향은 생명체가 견뎌온 “어쩔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 우리가 “우리의 자연과 현실의 삶에 깃들어” 사는 “평범한 사람들”과 교감하며 습득한 시인의 감정이 만들어낸다. 시인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물과 자연물을 통해 보편적인 감정을 슬쩍 건드린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누가 물결을 울린 것인가
밀어낸 것인가
머뭇머뭇 퍼져나간다
깊고 그윽한 곳까지 간다
무엇이 다가와서 네 마음을 만진 것인가
밀어 보낸 것인가
울먹이듯 떨리며 퍼져나간다
누구에겐가로 가서
사람의 무엇인가가 된다
―「파문」 전문

김진경 시인은 시집의 발문에서 김영춘 시인이 품고 있는 ‘바람의 말맛’을 “물을 살짝 일렁이게 하여 물의 빛 그림자를 어른거리게 하는, 그 어른거림을 통해 삶의 섬세한 기미를 느끼게 하는 바람”에 비유하며, “그런 바람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 사람의 존재를 살짝 흔들며 ‘무엇인가가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 흔들리는 감정에서 한 걸음 벗어나 오히려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간결한 표현과 긴 여운은 그 길을 함께 가고 있다.

개울 밑을 들여다보느라
목이 길어지다가 휘어지고 만
휜 새
담담한 노래마냥
긴 다리를 뻗어 어딘가로 날아가네.
잠시라도
생계는 부여잡았으나
퍼덕이는 물고기를 잡는 일은 없었다는 듯이
훨훨
―「목이 긴 흰 새」 부분

“하루하루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도/ 저런 하염없는 눈빛을 하고 있을까(「한 다리로 서서」)”라고 낮게 말하며, 시인 자신을 포함해 매일매일 지난하게 “생계는 부여잡”는 사람들의 일상을 애잔히 바라보다가도 “퍼덕이는 물고기를 잡는 일은 없었다는 듯이/ 훨훨” 날아가는 것을 슬프게 바라보고 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슬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지라도, 그 안에서 만나는 “조촐한 빛”으로 “정신이 싱싱”한 아침을 맞이하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그곳에 자리한다.

김영춘 시인이 일으키는 이 ‘파문’은 결국 각자의 삶이라는 바다로 흘러든다. 그래서 “너는 왜 가끔 시가 되느냐”는 시인의 물음은 지나간 날들에 대한 안부 인사일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우리 모두를 향한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시인의 말

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어딘가로부터 꽤 멀리 떠나와서일 것이다. 시라고 하는 것에서는 맑은 날의 저녁나절처럼 조촐한 빛이 새어나와야 할 것인데. 사람들의 숨소리도 잘 품고 가야 할 것인데. 슬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지라도 살아 있는 것들은 어떻게든 피어났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곁에 두고 쓴 몇 편의 시들을 묶는다.

2026년 봄
전주에서 김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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