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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찬양하다 9
옮긴이의 말 373 추천의 글 384 |
Jesus Carra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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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형하는 존재면서 미래를 사는 경향이 있는 존재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 우리가 될 것, 우리가 도달할 자리, 다가오는 휴가, 침대에 누워 읽을 책이나 볼 영화. 은퇴 후 경제적 안정. 그 집은 결국엔 허물어져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 p.34 “쓰레기가 되기 좋은 것들이 시가 되기 좋다.” (……) 이 방에 있는 것들은 다른 방들이 거부한 것에서부터 온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마치 해변이 바다가 보내 준 것, 바다가 원치 않는 것들을 대꾸 하나 없이 다 받아 주는 것처럼. --- p.44 마누엘과 라파엘라는 우리가 마을에 올 때마다 우리가 오기 전에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얼마나 오래 불었는지 이야기했고, 우리가 머무를 며칠 동안 바람이 어떻게 불지 ─ 그들의 예상 ─ 알려 주었다. 저기압이 어떻고 상층부의 기단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시속 70킬로미터의 돌풍이라는 표현 대신 고양이들도 날려 버릴 바람이라고 했다. 2주 동안 동풍이 계속되면 지긋지긋하다고 했고, 서풍이 바다의 물기를 마을로 실어 올 땐 참 상쾌하다고 말했다. 마누엘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이번 주엔 비가 내릴 거야, 80리터쯤. 100리터, 어떨 땐 200리터. 그러고는 그 정도 강수량이면 풍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산과 저수지와 밭의 모습과 주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야기했다. --- pp.62-63 고통이나 절망에 대한 경험 없이 존엄하고 자율적인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괴로움의 어머니는 바로 죽음이다. 시간의 저편에 죽음이 있다는 걸 알면서 그 죽음에 힘겹게 도달하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고통이 솟아나는 샘과 같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과제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에서 사실 삶이 풍요로워진다. --- pp.83-84 나는 아버지로부터 망치보다 더 중요한 것을 물려받았다. 아버지 덕에 나는 망치를 쓰는 일의 흥미로움을 안다. 이것이야말로 분명 내가 받은 유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 우리 집에서 자연스러웠던 건 마치 다른 집에서 일상적으로 독서나 기도를 했던 것처럼 그렇게 손을 쓰는 일이었다. --- p.100 집은 늘 필요로 하는 게 있었고, 그 필요는 우리 둘을 굴복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곳은 완벽함이나 과시욕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었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모든 게 머지않아 잔해가 되어 끝날 운명이라면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심사숙고하며 시간을 버릴 이유가 있을까? --- p.116 나는 라파엘라에게 포도 덩굴의 상태에 관해 설명하고는 무슨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이제 공이 울리기 직전이었고, 나는 선조의 지혜를 받을 것이다. 라파엘라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거 분명 인터넷 찾아보면 나올 텐데.” --- p.136 그냥 어디 가 보겠다는 것 말고는 다른 뚜렷한 목적도 없이, 함께할 다른 이도 없이 홀로 떠나는 여행. 오직 그와 말, 그리고 그가 지나가는 길에 숨곤 하는 산짐승들뿐인 여행. 나는 그가 여행에서 돌아와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는 언제나 낯선 세계의 이야기, 나는 상상만 해 볼 수 있는 곳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으니까. --- p.157 어느 일에 전문가인 사람은 그만이 가진 ‘언어’로 말할 때 보통 자기 몸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단순히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떤 평면 위에서 움직일 때 의식적인 생각은 불필요해진다. 마치 배움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지식이 근육과 힘줄과 뼈에만 저장되는 것 같다. 겉보기에는 뇌의 회백질이 작동한 흔적이 없다. --- p.165 나를 진정으로 기운 나게 하는 것은 바로 작업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새롭고 구체적인 걸 만들어 낸다는 생각. 임시로 수선하여 쓰는 것보다 뭔가 더 하고 싶었다. 좀 오래갔으면 했다. --- p.182 꿀벌은 자기가 로즈메리꽃의 꿀을 빨 수 있는 건 식물이 공짜로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내가 왔어, 너의 꿀은 너무 맛있어, 그래서 내가 먹는 거야라고 꿀벌은 말한다. 그러고는 기고만장해서 다른 꽃잎을 향해 날아간다. 엉덩이에 꽃가루를 잔뜩 묻힌 채. 꼭 뚱뚱한 총잡이 같은 모습으로. --- p.202 삶의 모든 설명하기 힘든 일, 그 삶의 미스터리,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들, 살아 있다는 그 자체의 의미,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문제들과 과학과 예술에 빛을 밝혀 준 모든 것. 혼란스러움까지 포함한 그 모든 것은 계주에서 주자들이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바통의 형상을 띠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을 가로지르며 전달되는 바통은 사랑이다. --- pp.203-204 인생 전체에 걸쳐 계속해서 가져온 손에 관한 내 관심이 없었다면 불꽃은 옮겨붙을 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손에 대한 매혹이 내가 평생 손을 써서 일하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다. 손을 써서 일해 왔기 때문에 내가 손의 힘과 복잡성과 그 안에 담긴 커다란 의미를 자각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p.217 나는 내게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건 내 가슴에 꼭 붙어 있기를 바란다고. 사랑하는 대상을 내 두 손으로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가 떠난다면 그 부재에 마음껏 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 p.265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는 위험으로부터 너를 보호하려 한다. 자기 머릿속 외에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위험이다. 하지만 미리 너의 위험에 대비하고 싶어 하고, 두려움으로부터 구해 주고 싶어 한다. 두려워하고 있지도 않은데. 두려움은 사실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데. 그는 자기 말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너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에게 가장 좋은 걸 해 주길 바란다. 그의 바람에는 위험을 피하는 것도 포함된다. 네 머릿속에는 그런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 길을 따라가다가는 삶의 의지 자체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 삶의 의지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 pp.290-291 미래는 열려 있지 않다. 미래가 날이 갈수록 닫히기만 할 거라는 명백한 사실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진심으로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도록 했다. 그때만큼 현재의 가치를 가슴 깊이 이해한 적이 있었을까. 바로 여기, 바로 지금. 우리를 아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는 모든 것. 우리 육체,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몸의 가치. --- p.332 하루는 마당에서 점심 식사 전에 아나이스가 책을 읽어 주는 사이 내가 식전주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내갔다. 치즈 조금과 브레드 스틱 몇 개, 그리고 차디찬 맥주 두 병. 탁자 위에 예쁘게 차린 뒤 맥주병을 따려다 마요이보고 맥주를 마시겠냐고 물었다. 마요이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대답은 우리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겼고, 명언이 되었다. 내가 들어 본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단 네 단어로 이루어진 그 문장은 단지 그 순간 마요이의 기분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포착하는 완벽한 표현이었다. 내가 물었다. “마요이, 맥주 드실래요?” “아니. 아, 조금 마실까.” --- pp.332-333 내가 구상하던 책은 놀이에 대한 찬양이자 오락에 대한 찬양, 또 미묘한 배움에 대한 찬양이자 기쁨과 여름과 야외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찬양이었고, 가족과 친구에 대한 내 사랑이기도 했다. --- p.335 끝이 오기 직전의 상태. 우리 몸이 그동안 자신을 받아 준 세계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삶과 살아온 모든 것에 감사를 보내는 하나의 방식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세계를 향해, 너를 향해 가슴을 연다. 대기와 사물들을 품은 너, 시멘트 바닥 위를 걷는 강아지들을 받아 주는 너, 아이들에게 놀거리를 주고 바질에 초록빛을 더하는 너, 사랑과 상심을 겪게 하는 너. 그리고 네가 준 선물. 나무 그늘, 돛단배라는 낱말처럼 아름다운 말, 메이저 코드, 바흐, 그리고 우리 삶을 이어 갈 딸들. --- p.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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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하는 일은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작가 헤수스 카라스코는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곳은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식물을 키우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썼습니다.” 임도울 역자는 이 소설이 말하는 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화자이자 작가에게 손으로 하는 일이란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예술의 근원으로 확장되는 일이다.” 화자는 손으로 하는 일을 “집을 돌보는 일이자 집의 존엄성을 지켜 주는 상징적인 일”이라고 부른다. 덩굴시렁을 넓혀 마당에 그늘을 드리우게 한 것도 같은 의미다. 그 일을 통해 마당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새 그늘은 집 내부와 외부 사이에, 내밀한 공간과 타인과 만나는 공간 사이에, 우리와 마을 사이에 중간 지대를 만들었다. 손으로 하는 일은 결국 관계를 만드는 일이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손을 찬양하다』는 단순히 수작업을 예찬하지 않는다. 치밀한 구성과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소설도 아니다. 하지만 결과보다 과정에 함께하는 일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심지어 다음 페이지가 너무나 궁금해지고, 한 문장 한 문장에 마음이 투명해진다. 우리는 언제나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무언가에 몰두하니까. 화자가 말하는 핵심 개념은 ‘임시성(provisionalidad)’이다. 우리는 미래를 영속적인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모든 것은 임시성을 가지고 있다. 집이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집에 머무는 그 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성실히 오늘을 살아간다. 철거라는 불확실성 앞에서는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골집에 들어서면 그들에겐 오늘밖에 없고, 오늘밖에 없으니 감각이 깨어난다. 주위를 둘러싼 이웃, 식물, 곤충, 동물, 심지어 양모 담요 하나까지 모두 유한하다고 느끼니 지금 이곳이 애틋하다. 이 소설이 품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은 임박한 죽음을 앞둔 마요이에게 맥주를 마시겠냐고 물었을 때 자연스레 나온 말 한마디다. 화자는 이것이 자신이 들어 본 말 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쓴다. 삶의 본질을 단 네 단어로 포착한 완벽한 표현이라고. 내가 물었다. “마요이, 맥주 드실래요?” “아니. 아, 조금 마실까.” 화자는 글쓰기의 끝손질을 가구의 끝손질에 비유한다. 가구 장인은 짜맞춘 부위의 도드라진 부분들을 끌로 깎아 내고 튀어나온 부분들을 부드럽게 대패질하여 반반하게 고른 뒤 사포질하고, 유약을 바른다. 글쓰기도 그러하다. 다시 읽어 보는 것과 만져 보는 것의 목표는 같다. 『손을 찬양하다』가 찬양하는 손은 그 모든 과정 자체를 경험한 손이다. 바쁘고 정신없고 도통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 이 책을 집어 들고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은 편집자도 만들다가 힐링해 버린 책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추천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손으로 뭔가 고치거나 만들거나 하고 싶어질 것이다. “카라스코의 글은 레이먼드 카버, 리처드 포드, 존 업다이크, 존 윌리엄스, 무엇보다 코맥 맥카시와 같은 미국 작가들의 뒤를 잇는다. ― 《엘 디아리오 데 알토 아라곤》(스페인 일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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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 우리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짓는 일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 수세기 동안 우리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 살바도르 구티에레스 솔리스 (《엘 디아 데 코르도바》(스페인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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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는 인간에 대한, 명백한 낙관주의 소설!” - 헤수스 페레르 (《라 라손》(스페인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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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적이면서 독창적인 책. 진지한 문학 작품.” - 산토스 산스 비야누에바 ( 『엘 디아 데 코르도바』(스페인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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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학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소재인 손으로 하는 노동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시적이고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며 가까이서 관찰하면서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선을 보여 준다.” - 이삭 로사 (『메르쿠리오』(스페인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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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대한 찬양』은 개인적인 도전으로서의 글을 쓰는 행위를, 유행에 따르는 일이 아니라 금은세공술과 같은 일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그의 개인적인 작업은 미겔 델리베스보다는 조르루 페렉이나 아소린에게 더욱 빚지고 있다. 시적인 부분이 사건보다는 사물을 표현할 때 훨씬 더 훌륭한 책이다.” - 호세 마리아 포수엘로 이반코스 (『ABC 쿨투랄』(스페인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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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스코의 시골 세계에 대한 접근은 성찰과 관찰에 매료된 작가의 것이며, 가까운 것들, 사물들, 물질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이 모든 것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했다.” - 안 안토니오 마솔리베르 로데나스 ( 『쿨투라스, 라 방과르디아』(스페인 일간지 문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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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가 인물들의 모험을 아주 쉽게 따라갈 수 있게 해 주는, 훌륭한 소설.” - 이냐키 에스케라 (『엘 코레오』(스페인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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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대한 찬양』은 손으로 하는 일과 우리의 신체에 대해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탐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으로부터 탄생했다. ······ 더 고요하고 더 가까우며 더 평온하고 더 진실한 삶의 방식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 - 페로 사파테르 (『에랄도 데 아라곤』(스페인 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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