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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투우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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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두려워요, 투우사여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2

페드로 레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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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ro Lemebel

칠레의 작가, 시각 예술가이자 사회 활동가. 칠레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미술 교사가 되었으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이후 전업 작가이자 예술가로 진로를 변경하여 1986년 첫 단편집 『셀 수 없는Incontables』을 출간했고, 이듬해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프란시스코 카사스와 함께 칠레 성소수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퍼포먼스 듀오 ‘묵시록의 암말들(Yeguas del Apocalipsis)’을 설립했다. 이후로 그는 다양한 공개 퍼포먼스와 여러 차례의 기습 시위를 펼치며 예술 작업과 사회 활동을 융합했다. 작가로서는
칠레의 작가, 시각 예술가이자 사회 활동가. 칠레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미술 교사가 되었으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이후 전업 작가이자 예술가로 진로를 변경하여 1986년 첫 단편집 『셀 수 없는Incontables』을 출간했고, 이듬해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프란시스코 카사스와 함께 칠레 성소수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퍼포먼스 듀오 ‘묵시록의 암말들(Yeguas del Apocalipsis)’을 설립했다. 이후로 그는 다양한 공개 퍼포먼스와 여러 차례의 기습 시위를 펼치며 예술 작업과 사회 활동을 융합했다.

작가로서는 주로 칠레의 성소수자와 빈민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다양한 스타일로 포착한 논픽션을 썼다. 그중 한 권인 『미친 열망Loco af n』(1996)이 친구였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개로 스페인에서 출간되면서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2001년 출간한 유일한 장편 소설 『두려워요, 투우사여』가 여러 언어로 소개되며 세계적인 호평을 얻었다. 2013년에 받은 호세 도노소상을 자신의 어머니와 노동 계급 독자들에게 헌정한 그는 마지막까지 창작에 몰두하다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홉 차례에 걸쳐 스페인, 쿠바, 멕시코,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여행했다. 영화 연출을 전공했으며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스페인어 통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대산문화재단 외국문학 번역지원 선정, 2021년 연희문학창작촌 입주작가 공모 선정.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문학의 스페인어 번역을 공부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오라시오 키로가의 『오렌지주를 증류하는 사람들』,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투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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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282g | 115*190*17mm
ISBN13
9788932476186

책 속으로

사랑하기 위해 삶 전부를 바칠래요
그 전엔 죽지 않아요
그것이 사랑이야
당신에겐 없는 것
--- p.23

그 망할 새파란 놈이 정말 내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 줄 아나? 수염이 덥수룩한 놈들이 그렇게 자주 집에서 모임을 했는데? 아, 모여서 공부한댔지? 생각해봐, 응? 내가 모르는 척해준 건 다 그 사람 때문이야. 그 많은 상자, 그게 다 책이 든 상자라는 거짓말을 참아준 것도 잘생긴 남자한테 선심을 좀 쓴 것뿐이라고. 그렇다고 이런 수모까지 견딜 수는 없잖아. 그 새끼는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길래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지? 그래, 자기가 대학생이고, 얼굴 멀끔하고, 젊고, 눈이 그렇게 예쁘면…… 다인가.
--- p.49

수은 칠이 벗겨진 낡은 거울 테두리가 사십 줄에 접어든 그 얼굴을 후광처럼 감쌌다. 세월의 흔적이 그녀의 두 눈 아래에 물주머니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오뚝하게 솟은 코를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콧날이 곧긴 했었는데 이제는 살들이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처져 버렸다. 그래도 왕년의 드랙퀸 쇼에서 오디 색 립스틱을 짙게 칠하고 키스를 날리던 그 입술만큼은 괜찮았다. 지금도 진주처럼 윤기 나는 촉촉한 입술로 애송이 하나쯤은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아름다웠던 적이 없다는 걸, 한 번도 매력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걸, 그녀는 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릿빛 이목구비의 기묘한 조합은 음울한 게이다운 분위기를 빚어냈고, 그 분위기는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신비롭고 강렬한 빛을 잘 받쳐 주고 있었다. 이거면 됐어,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그녀는 짧은 속눈썹을 날갯짓하듯 파르르 떤 뒤 도도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 pp.110-111

내가 그 마르크시스트 문인들, 그 일당들은 절대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잖아. 그놈들하고는 달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선생님 봐봐, 신사 중의 신사, 젠틀맨이시잖아. 당신이 훈장을 수여하니까 굉장히 감동하더라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 불쌍한 사람이 당신을 좋게 말하는 바람에 노벨상 받을 기회를 영영 놓쳤다고들 하더라. 세상에, 나쁜 스웨덴 놈들, 그 불쌍한 노인네를 모른 척하다니. (중략) 그리고 이 얘기 하면 나보고 매정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보르헤스 그 사람, 장님인 걸 내가 어찌 알았겠어? 처음 그 사람 소개받았을 때, 나한테 악수를 청하려는데 내 손 대신 의자 팔걸이를 잡더라고. 어찌나 웃기던지, 그게 웃기지 않다고 말하진 못하겠지? 실제로 그때 주변에 관계자들이랑 작가들이 잔뜩 있었는데, 다들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지 뭐야.
--- pp.136-137

통행금지 없었으면 우리 같은 년들 어쩔 뻔했어? 눈 씻고 찾아봐도 먹을 게 하나 없어서, 결국 수도원 같은 데 들어가야 했을걸. 그래서 나는 통행금지를 사랑해, 나는 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는 장군님을 사랑한다고. 나는 정부도 사랑해, 왜냐하면 우리 같은 미친년들한테 일용할 양식을 주잖아, 다들 늘 겁에 질려 있으니까 길거리 놈팡이들도 더 달아올라 있다고.
--- p.151

당신은 매수하기 쉬운 편인가요? 카를로스가 로맨틱한 신문을 계속했다. 아주 쉽기도 하고 몹시 어렵기도 하죠, 가시에 찔리지 않고 장미를 꺾는 일처럼. 장갑을 끼고 꺾는다면? 그렇다면 장미는 그 손길을 정원사의 손길과 혼동할 거예요, 자기가 느낀 감정이 누구의 감촉 때문인지 알지 못하고 죽게 되겠죠.
--- p.171

수줍게 고개를 든 태양은 마치 천 위를 바느질하며 나아가듯 그녀 발밑에 펼쳐진 도시를 서서히 밝혀 왔다. 가난과 얼굴을 맞댄 지붕들이 만들어 낸 물결 위에 황금빛 그물망이 퍼져나갔고, 지난 겨울비가 깨끗이 씻어낸 함석지붕은 아침 햇살의 열기를 머금고 잘 마른 채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때 위 모퉁이를 도는 자동차가 얼핏 보이더니 곧 조용히 집 앞에 멈춰 섰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야, 자기야.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대사를 읊듯 말하고는 어제를 향해 키스를 보냈다. 그녀의 작별 인사는 오랜 사랑에 상처 입은 어제의 안식처 속으로 증발하듯 사라졌다.

--- p.238

출판사 리뷰

1980년대의 한국과 너무나도 닮아 있던
그 무렵의 칠레에서 날아온
가열찬 반독재 러브스토리


1980년대 칠레의 시가지 풍경은 같은 시기 한국과 무척 닮아 있다.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독재자가 있었고, 그에 맞선 민주 세력의 시위가 점점 거세졌다.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거리낌 없이 두들겼다. 지나가는 버스 안까지 최루탄이 날아들었다. 수많은 젊은이가 ‘경찰에 의해 실종’되자 그들의 어머니들이 집결하기 시작했지만, 그 나이 든 시위대는 집회 때마다 물대포를 얻어맞았다. 한국의 많은 독자는 이와 닮은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거나 전해 들었을 것이다. 『두려워요, 투우사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카를로스는 이 풍경에 속한 사람이다. 독재에 맞서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려 하는 이 20대 청년은 역사가 사랑하는 부류의 인물이다.

반면에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로카는 역사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 드랙퀸에서 은퇴한 그녀는 부잣집 사모님들의 자수 주문을 받아 먹고사는 중이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는 늙어서 한물간 게이로, 이제 진심으로는커녕 빈말로라도 사랑한다고 말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 확신하고 있다. 1980년대에 한 나라의 수도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했던, 그러나 민중과 민주를 숭앙하느라 바빴던 역사가 애써 모른척했던 작은 세계 안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저물어가던 사람. 역사를 일종의 지도처럼 펼쳐 놓는다면, 로카는 그 지도 위에서 카를로스와 가장 먼 곳에, 심지어 군사 독재 부역자들보다도 더 먼 곳에 존재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직 사랑만으로 채워진 소설 『두려워요, 투우사여』가 시작하자마자 슬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소설 내내 로카가 꿈꾸는 단 하나의 목표, 즉 카를로스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에는 그와 그녀의 삶이 애초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카를로스는 로카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지하 저항 단체의 회합 장소를 제공하는 로카에게 늘 감사를 표하고, 거기에서 시작된 우정을 점점 더 키워 가지만, 한편으로는 로카가 자신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녀의 애정 공세를 장난스레 받아넘길 뿐이다. 언제나 사랑에 목말랐던 탓에 이런저런 사랑을 다 마셔 본 로카는 카를로스와 자신이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채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서 카를로스를 사랑한다. 상대가 점잖게 흘려 버리는 짝사랑을 스스럼없이 수행한다. 그 씩씩함이 이 소설의 기쁨이자 슬픔이 된다.

이루어진 사랑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오직 짝사랑으로만 이루어진 슬픈 세계


하지만 카를로스 역시 짝사랑 중이기는 마찬가지다. 조국을 향한 그의 사랑은 어떤 대가도 얻지 못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태세다. 결국, 겉보기에는 아주 다른 인물처럼 보이는 카를로스와 로카는 사랑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있어 완전히 닮은 꼴을 하고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슬픔 속에 머물더라도 개의치 않는, 오로지 굳건히 수행하는 행위로써의 사랑. 『두려워요, 투우사여』에 스며 있는 이 굳건함은 저 아래에 묻혀 있던 슬픔을 어딘가 밝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실제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피노체트 독재에 저항했던 인물이자 좌우 양측에서 동성애자라고 멸시받았던 페드로 레메벨은 조국을 사랑하는 일과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 똑같이 아름답고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다. 로카와 카를로스는 레메벨 자신이 품고 있던 하나의 덩어리와 같은 사랑을 두 개로 분리해 내놓은 캐릭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두 주인공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좀처럼 분열됐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향해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일종의 강령, 페드로 레메벨이라는 이 세계의 신이 내린 강령이 그 둘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랑이란 걸 가진 적조차 없었던 독재자 피노체트는 이 소설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겪는 일이라곤 끝없는 덧없음이 가져다주는 공포에 더 깊이 잠식당하는 것뿐이다.

오직 게이들만이 떠올릴 수 있는
바로크풍의 화려한 연출


『두려워요, 투우사여』가 선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은 화려한 연출이다. 작중에서 로카는 게이들만이 갖고 있는 화려한 감각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레메벨 역시 이 소설 속 여러 곳에 그런 부류의 아름다움을 심어 놓았다. 과장된 메이크업과 화려한 레이스 장식을 닮은, B급 영화와 흘러간 유행가로 이루어진 이 소설 속 명장면들은 책벌레 계열의 작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에너지를 전해 준다. 특히 극장에 간 로카가 〈다이 하드 2〉를 보면서 시작되는 교차 서술 장면은 B급 영화 같은 과장된 문법 속에 위태로운 현실을 녹여 넣으면서 다른 어느 소설에서도 볼 수 없는 기막힌 시퀀스를 선보인다. 타고난 끼와 감수성으로 숙명적인 슬픔을 돌파해 온 작가만이 써낼 수 있었을 이런 장면들은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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