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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2막 3막 |
Martin McDona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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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폴스키: 여기 네 이름이 잘못 기록된 것 같은데. 성이 카투리안, 맞아?
카투리안: 맞습니다. 투폴스키: 저런, 이름을 카투리안이라고 기록했군. 카투리안: 이름이 카투리안입니다. 투폴스키: (사이) 이름이 카투리안이라고? 카투리안: 네. 투폴스키: 성도 카투리안이고? 카투리안: 네. 투폴스키: 그럼 카투리안 카투리안이야? 카투리안: 부모님이 재미있는 분들이었어요. --- p.21 아리엘: 자, 그럼, 문학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고. 우리가 아까 이해한 대로, 아버지는 어린 소녀를 학대하고, 어느 날 그 애는 사과 몇 알을 구해서 그걸로 작은 인형들을 조각해. 작은 손가락, 작은 눈, 작은 발가락까지. 그리고 소녀는 아버지에게 사과를 주면서 말하지. 이 사과는 먹는 게 아니라고, 하나뿐인 어린 딸이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간직하려는 거라고. 하지만 당연히 돼지 같은 아버지는 이 사과 인형을 한꺼번에 전부 삼켜 버려. 단지 딸을 괴롭히려고. 사과 속에는 면도날이 들어있고,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죽는다. 카투리안: 그리고 이게 이야기의 결말 같지요, 보통은 이렇게 끝나야 하잖아요, 아버지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투폴스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날 밤 소녀는 잠에서 깨어 일어나지. 수많은 사과 인형들이 소녀의 가슴 위로 걸어 올라와. 사과 인형들이 걔의 입을 벌려. 그리고 걔한테 이렇게 말해……. 카투리안: ( 가냘픈 목소리로 ) ‘네가 우리 동생들을 죽였어…….’ 투폴스키: ‘네가 우리 동생들을 죽였어.’ 사과 인형들은 소녀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 소녀는 자기 피에 질식해서 죽어. 이상 끝. --- pp.28~29 카투리안: 어떤 남자나 여자가, 삶이 몹시 끔찍하고 힘들어서 너무 너무 슬플 때, 그래서 모든 걸 끝내고만 싶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만 싶을 때, 그래서, 음, 면도날이나 총, 가스…… 같은 걸로 막 그렇게 하려고 할 때마다…… 마이클: 아니면 아주 높은 데서 뛰어내리거나. 카투리안: 그래. 뭐든 더 마음에 드는 자살 방법으로. 아마도 ‘더 마음에 든다’는 말이 적 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 사람이 막 그렇게 하려고 할 때, 필로우맨이 그들에게 다가가. 그리고 곁에 앉아서, 다정하게 안아 주며, ‘잠깐만’이라고 말해. 그러면 이상할 정도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그렇게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 필로우맨은 그 남자 혹은 여자가 어린 소년이나 어린 소녀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어. 그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삶이 아직 시작하지 않았던 때로 말이야. 필로우맨이 하는 일은 아주 아주 슬픈 일이었어. 왜냐하면 필로우맨이 하는 일은 그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거였거든. 그 아이가 나중에 겪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피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냥 놔둬봤자 어차피 결국엔 같은 상황에 놓일 거였지. 오븐에 머리를 넣든, 엽총으로 머리를 쏘든, 호숫가에 들어서든. ‘하지만 어린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몰라. 글쎄. 필로우맨은 항상 비극적인 사고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제안해 줬어. 사탕하고 똑같이 생긴 알약이 들어 있는 약병을 보여 준다든지, 강 위에 아주 얇은 살얼음만 끼어 있는 곳을 알려 준다든지, 주차돼 있긴 하지만 그 사이로 뛰어다니기엔 너무 위험한 자동차들을 보여 준다든지, 숨 쉴 구멍이 없는 비닐봉지를 보여 주고 정확하게 조이는 방법을 알려 주는 거지. 왜냐하면 엄마들과 아빠들은 다들 늘 똑같기 때문이야. 다섯 살짜리 애가 자기 삶이 거지같다는 걸 알아 버려서, 그런 삶을 피하기 위해 무슨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보다는, 비극적인 사고로 그 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믿는 쪽이 훨씬 쉬웠지. 그런데 모든 아이가 필로우맨의 말을 따른 건 아니었어. --- pp.90~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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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스스로 죽으려 할 때, 필로우맨이 찾아온다
삶이 힘들어져 더 이상 살아가고 싶지 않은 A는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그때 어디선가 필로우맨이 나타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베개로 이루어진 그는 정말로 안온해 보이는 인간이다. 필로우맨은 A에게 다가가고, 그때부터 시간이 천천히 흐르더니, 이윽고 멈추었다가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 둘은 A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런 다음 필로우맨은 자신의 미래를 모르는 어린 A에게 말한다. 네 미래는 너무 어두워서, 너는 고통을 겪다가 자살하려고 결심하게 돼. 그러니 그 고통을 겪지 않도록 도와줄게. 그렇게 필로우맨은 아이들에게 직접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모두가 사고라고 생각하는, 사고로 위장된 아이들의 죽음 뒤에는 필로우맨이 있다. 미래에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될 아이들이 먼저 삶을 떠나도록 만들어 주는 남자. 그는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보낸 뒤 매번 눈물을 흘린다. 그게 그가 평생토록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필로우맨의 충고를 들은 건 아니었다……. 이야기 속 존재들은 어떻게 현실에 스며드는가? 이 ‘필로우맨’이라는 이야기를 쓴 남자의 이름은 ‘카투리안 카투리안’이다. 전체주의 국가의 도살장에서 일하는 그의 유일한 낙은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전업 작가는 되지 못했지만, 창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카투리안의 삶은 갑자기 경찰에 체포되면서 완전히 뒤집힌다. 무슨 일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눈을 가린 채로 취조실로 끌려온 그에게 두 형사가 다그치기 시작한다. 아직 죄목조차 모르는 그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게다가 다른 취조실에 끌려와 있는 형까지 구해야 한다. 형사들의 협박에 따르면 즉결 사형당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출퇴근과 가족 보필과 창작뿐이었던 삶. 그가 세상에 남긴 거라곤 짧은 이야기들뿐이다. 과연 이 이야기들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그가 쓴 이야기들은 그를 구원하는가, 아니면 몰락으로 이끄는가? 혹은 동시에 두 가지를 다 이룰 수도 있을까? 창작이라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행위를 둘러싼 잔혹극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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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어딘가 조금 다릅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작가가 다른 걸 보여줄 때 우리는 어떤 장(場)이 넓어졌다 하지요. 그런 면에서 『필로우맨』은 『아라비안나이트』보다 괴상하고, 『거미 여인의 키스』보다 비정하며,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보다 멀리 나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슬픕니다. 작가로서도 그렇고 독자로서도 그렇게 느낍니다. - 김애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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