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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ff D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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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아무리 애써 봐도 선택지가 바닥나는 때가 온다. 생이 끝나 가거나, 영화 〈인사이더〉에서 알 파치노가 말한 것처럼 “이제 더 이상 마땅한 수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미 손에 쥔 패가 우리가 가진 전부이고,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피할 수 없는 결말을 잠시 미루는 것뿐인데 그 미룰 시간조차 점점 더 짧아지고 있음이 분명해지는 때가 온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조차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이른바 ‘끔찍한 소네트’ 중 한 편에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쓴다.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희망하고, 소망할 수 있다, 그날이 오기를, 존재하지 않기로 선택하지 않기를.”
--- p.53 그(D. H. 로런스)의 친구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썼다. “지난 20년 동안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할 연료가 없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기적적으로 계속해서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이 말은 사실이지만, 로런스라는 불길에 연료가 되었던 건 바로 그의 삶 자체였다. --- p.59 체스와프 미워시의 경우, 그는 자신이 으레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높은 위치에서 독자와 대화 같은 것을 한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자기도취적인 건 아니다. 그보다는 높이 인정받는 것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사람 특유의 거만한 태도에 가깝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니 그럴 만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물론 자랑하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의 생각·성찰·명상은 (…) 이른바 “노벨상 수상자 풍Nobelese”으로 무의식중에 표현된다. 고압적인 태도가 습성이 되면서 아침에 차 한잔을 끓이는 것이 아니라 노벨 차를 끓여서 노벨 계란과 노벨 베이컨과 함께 먹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 p.145 책은 나중에라도 항상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영화는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 매체다. 처음 몇 분을 망치고 나면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어쩌면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영화가 구원을 늘 중요한 플롯 혹은 주제로 삼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p.170 엔리케 빌라마타스의 『바틀비와 바틀비들』에서 화자인 젊은이는 단편 소설 한 편을 발표해 놓고 25년 동안 전혀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어떤 이유에선지 글쓰기를 중단한 랭보나 로베르트 발저 같은 작가들에 대한 에세이적 조사에 착수한다. (...) 그 결과 만들어진 비非작품들의 목록은 그 내용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내포하는 의미 또한 문제적이다. “왜 나는 글을 쓰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왜 나는 애초에 글을 썼던가? 라는 또 다른, 훨씬 더 불안한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p.232 평생 책 한 권 읽은 적 없는 내 아버지는 기독교를 맹렬히 증오했는데, 왕정에 반대하거나 다른 모든 것에 반대한 것과 대체로 같은 이유, 즉 경제적 이유에서였다. 아버지에게 교회 예배에서 가장 강력하게 상징적인 순간은 ‘내 피의 피’ 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때가 아니라(나는 이런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명확하게 아는 바가 없다) 바로 헌금을 걷는 때였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교회에 가야 했던 몇 안 되는 경우에 아버지는 체면을 지키기 위한 1페니조차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낸 것처럼 보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이처럼 교회에 강경하게 반대하게 되었는지 물었고, 아버지는 군대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낸 녀석이 ‘적그리스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기록에 이렇게 남겨두겠다. 히치(크리스토퍼 히친스)와 마트(마틴 에이미스)가 성직자나 공격하며 즐길 때 내 아버지는 적그리스도를 만났다고. --- p.255~256 니체 사상에서 구원과 해방의 가능성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영원회귀 사상은 끝없는 반복의 반대 개념으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이 사상은 가석방, 경감, 변화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우리가 이 한 번의 삶을 아무런 변주 없이 반복해서 산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제로 이 사상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지는 방황과 거의 완전한 고독을 의미했다. 만성적인 질병 문제, 사랑을 향한 좌절된 희망들, 가족과의 갈등과 불화가 그의 삶의 토대가 되었다. --- p.362~363 빌럼 더코닝의 전기 작가 마크 스티븐스와 애널린 스완의 말에 따르면, 늙어 가는 예술가는 예정된 삶의 궤적을 따르게 된다. “일종의 두려움 없는 분방함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물질을 빛과 교환하는” 삶을. --- p.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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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험의 경계를 넘나들며 깊은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강력하고 유쾌한 정신. 이 정신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짧아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잘 살아온 삶은 가장 씁쓸한 결말조차도 가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책. 기억에 남는 해석을 제시하는 현명한 성찰을 담고 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역경을 극복하고 삶이나 예술에서 성공을 거두려는 모든 인간의 시도를 지배하는 유한성에 관한 이야기.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소멸하고 헤어지는 시간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삶의 풍요로움 따라서 다이어가 말하는 ‘말년의 삶’은 세간의 통념과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회한과 노화는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노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 이 지점에서 『라스트 데이즈』는 작가로서의 은퇴를 눈앞에 둔 다이어 자신에 관한 고백과 겹쳐진다. 테니스광인 그는 온갖 관절과 근육 문제로 경기를 점점 뛰지 못하게 되고, 공연이나 페스티벌에 가서 노는 일은 점점 힘들어진다. 젊을 때 읽어야 했던 책은 이제 손에 쥐어 봐야 의미가 없고(『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똑같은 농담을 던져도 사람들의 반응은 젊었을 때에 비해 점점 냉소적으로 변한다. 책 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삶에도 녹색 광선이 비추어질까? 아니면 그 빛은 이미 오래전에 스쳐 갔었고, 앞으로는 영영 황혼만이 계속되는 것일까? 세상 모든 인간과 같이 자신의 미래가 어느 쪽에 속할지 알지 못하는 다이어는 노쇠해 가는 자기 육신 속에 그 수수께끼를 봉인해 놓는다. 비밀은 때가 되면 열릴 것이다. 그는 미래라는 수수께끼를 담은 상자를, 즉 자신의 육신을 억지로 여는 대신에 조용히 받아들이며, 이때 그의 지식과 삶은 하나로 합쳐진다. 이를 통해 다이어가 ‘에세이’의 가장 드높은 목표를 성취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 앎과 삶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음을 몸소 증언하는 『라스트 데이즈』는 무언가를 읽고 사유하는 일이 얼마나 풍요로운 작업인지 알려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