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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모래판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지 않는 꽃이 피어나다 씨름은 오랜 역사를 지닌 운동이지만, 오늘날 대중적인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 여자 씨름은 더 조용한 자리에서 이어져 왔지요. 그러나 주목받지 못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알려지지 않아도, 경기는 계속됩니다. 지역 대회와 작은 체육관, 끊임없는 훈련의 시간 속에서 선수들은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써 오고 있습니다. 여자 씨름의 체급은 매화·국화·무궁화 급으로 나뉘어요. 매화급(60kg 이하)은 가볍고 날렵한 움직임 속에서 기술씨름의 화려함이 살아나고, 국화급(70kg 이하)은 기술과 힘의 균형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체급입니다. 무궁화급(80kg 이하)은 묵직한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한판의 위엄을 보여 주지요. 꽃의 이름을 딴 이 체급은 여성 씨름이 지닌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그림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낯선 스포츠’를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샅바를 잡는 순간부터 승부가 결정되기까지, 선수들이 견뎌 온 시간과 훈련, 그리고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한 컷 한 컷에 담았습니다. 독자는 ‘여자 선수’에 대한 편견과 그 편견을 온몸으로 넘어서는 사람들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래판 위의 승부는 결국 ‘나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우지요. 우미정 작가는 전작 『초원』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초원의 풍경을 생명력 넘치는 그림으로 펼쳐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거칠고 힘이 넘치는 선, 담백하게 절제된 색으로 씨름판의 극적인 장면을 그림책 속으로 옮겨 왔어요. 짙게 눌러 담은 색, 무심한 듯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된 질감이 긴장감이 넘치는 순간을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모래판 위에 선 두 선수가 어깨를 마주 대고 팽팽하게 맞설 때 보는 이의 호흡도 점점 빨라집니다. 두 선수가 거친 힘겨루기를 시작하고,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기술을 펼칩니다. 엎치락뒤치락 숨 가쁜 상황이 이어져요. 굳게 샅바를 움켜쥔 손에서, 힘껏 내딛는 다리에서 격렬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두 선수가 주고받는 공격과 수비는 그저 가벼운 재주나 요령이 아니에요. 오랫동안 흘린 땀과 눈물과 노력이 오롯이 배어 있지요. 그렇기에 한 선수의 힘찬 들배지기가 다른 선수를 무너뜨렸을 때 짜릿한 희열과 함께 뭉클한 감정이 전해집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활짝 핀 무궁화가 독자를 맞이해요. 승리의 순간과 꽃이 피어나는 순간의 기쁨이 겹치며, 우리는 ‘이긴 사람’이 아니라 ‘피어난 사람’의 기쁨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래판의 승부는 어딘가 우리의 일상과 닮았습니다. 때로는 나 자신과, 때로는 세상과, 우리는 각자의 샅바를 잡고 씨름을 합니다. 누군가의 시선 앞에서 작아지기도 하고, 스스로 세운 기준 앞에서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자세를 고치고 중심을 세우며 또 다른 한판을 준비하지요. 그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나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집니다. 주목받지 못해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끝내 피워 올리는 꽃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아이들에게는 ‘경쟁’이 곧 ‘성장’이 될 수 있음을, 어른들에게는 오래된 전통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건넵니다. 이 책이 여자 씨름을 향한 관심으로,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노력’을 알아보는 따뜻한 눈길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