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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위탁이란 아이에게 ‘보통의 일상’을 내어주는 일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 헤어질 걸 알면서도, 가족이 되기로 했다 1장자라지 않는 손가락을 가진 아이 [재석이네] ☺☺ ‘위탁자녀’라는 법적 지위를 주면 안 될까요? 2장운명이 맺어준 천륜 [은희네] ☺☺ ‘임보’(임시 보호)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3장떠나보낼 수 없는 아이 [소연이네] ☺☺ 양육은 누구의 몫인가요? 4장기쁜 인생길을 걷는 아이 [희로·루비네] ☺☺ 이상적인 가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5장돌아온 탕아 [찬우·다온이네] ☺☺ ‘원가정 복귀’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6장완벽한 아이 [현아네] ☺☺ 장애 위탁아동은 어떻게 자라야 하나요? 7장성인이 되면 입양할 아이들 [지성이네·은수네·레아네] ☺☺ 부모가 필요 없어지는 때가 있나요? 종장위탁부모는 천사가 아니다 ☺☺ 국가는 왜 부모가 되어야 할까요? 나가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나라가 필요합니다 부록 1 인터뷰: 어른이 된 위탁자녀들의 이야기 2 위탁부모를 위한 질문과 답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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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위탁은 거창한 희생이나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위탁이 아이에게 ‘보통의 일상’을 제공하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선택임을 차분히 보여준다. 잘 해내지 못한 순간의 흔들림까지 숨기지 않기 때문에, 위탁가정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한 사회가 아이를 품는다는 것이 어떤 책임을 수반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저자의 표현처럼 “국가가 부모 없는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야” 하므로, 위탁부모의 돌봄은 개인의 자선이나 봉사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회적 역할 수행이다.
--- 「추천의 글」 중에서 몇몇 매체를 통해 가정위탁제도와 위탁가정의 일상을 소개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의 일상은 카메라 앞이나 신문 한 면에 담아내기엔 다층적이고 복잡했다. 그래서 나는 쓰기로 했다. 개인의 사연을 넘어, 제도와 삶이 맞물리는 지점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 나는 이런 이야기를 조금 멀찍이 서서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왜 어떤 아이는 원가정으로 돌아가고, 어떤 아이는 돌아가지 못하는지. 왜 위탁부모가 해야 할 일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자꾸 뒤섞이는지. 돌봄의 책임, 결정의 권한, 지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을 비추고 싶었다. 제도의 설계, 전달 체계, 책임의 배분, 사회적 인식이 함께 얽혀 있는 곳을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인터뷰’와 서술을 오가는 본문과 ‘보론’(제도·정책·연구)을 함께 묶는 형식으로 엮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아이에게는 부모가 필요하다. 부모가 없다면, 안정적인 양육자가 필요하다. 조부모나 친인척마저 그 역할을 할 수 없을 땐, 누군가 ‘사회적 부모’가 되어줘야 한다. 그러자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가정이 입양이나 위탁가정으로 지원하고, 국가는 제도적으로 든든하게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가정도 선뜻 입양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 “낳아준 엄마도 나를 사랑하고, (위탁)엄마도 나를 사랑하고, 보육원에서도 나를 사랑해줘서 좋아.” 재석이가 들려준 이 말은 고맙고도 안쓰러웠다. 재석이를 보면 알 수 있듯, 아이들은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서’ 자라야 한다.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모든 아동의 권리이며, 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 「1장 자라지 않는 손가락을 가진 아이」 중에서 그렇다면, 위탁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동거인 대신 ‘위탁자녀’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을까? 위탁자녀가 법적으로 인정된다면, 국가는 위탁가정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위탁부모도 안정감과 책임감을 느끼며 양육할 수 있고, 가족으로서 필요한 보호와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이 역시 자녀로서 가정 안에서 마음 놓고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로 탄생한 가족들이 다양한 가족 형태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도 있다. --- 「1장 ‘위탁자녀’라는 법적 지위를 주면 안 될까요?」 중에서 우리는 갓난아기를 떠나보내야 하는 어린 생모들의 입장과 처지를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다. 그들은 흔히 ‘무책임하고 냉정한 엄마’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회적 비난의 표적이 되곤 한다. 정임 씨는 우리 사회가 불가피한 재난적 상황에 처한 원가정의 입장을, 아이를 위탁이나 입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미혼모들의 처절한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 친부모에게서 멀어질수록 아이를 위한 지원이 더 많아진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정임 씨 말대로 친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면,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주어질 지원을 친부모가 양육하는 상태에서 제공할 수는 없는 걸까? --- 「2장 운명이 맺어준 천륜」 중에서 가정위탁제도도 말하자면 임보(임시 보호)다. 동물이 아니라 아이를 임시로 양육하는 것. 하지만 아이 원가정의 상황,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위탁가정의 상황, 아이가 돌아갈 시기, 행정 절차 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히고설키면 ‘임보’가 ‘장보’(장기 보호)가 되고 위탁부모들은 입양까지 생각하게 된다. … 위탁부모의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이다. 아이에게는 분명 친부모가 있지만, 사정상 내가 ‘잠시’ 보호하는 것. 그런데 함께 지내다 보면 깊은 정이 들어 헤어지는 순간이 두려워지는 것. 가능하다면 입양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편에 품고 살아가는 것…. --- 「1장 ‘임보’(임시 보호)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중에서 연정 씨가 위탁자녀로 맞이한 소연이는 119 구급대에 긴급 구조된 직후 바로 위탁가정으로 인계되었다. 학대아동이었기 때문이다. 학대를 당한 아동은 학대한 사람과 ‘긴급분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다. 그러나 긴급분리 후에 갈 곳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받아줄 가정이 없다면? 아이는 양육시설로 가야 한다.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대기하고 있는’ 위탁가정이 없으면 가정 보호는 불가능하다. … “얼마나 받는데?” 물어봐요. 위탁부모들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다. “돈은 얼마나 받냐?” “내 자식 같냐?”는 말들. 그러면 위탁부모들은 도대체 왜 힘든 육아를 자처했을까? 위탁부모들의 위탁 동기를 보면 첫째가 사회적 이타심 실현(39.0%)이고, 둘째가 종교적 이념 실천(23.7%)이다. 자녀가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이를 도우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 「3장 떠나보낼 수 없는 아이」 중에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계속 발생하지만 위탁을 하겠다고 신청하는 가정 수는 부족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안 그래도 힘든데, 위탁가정은 더더욱 힘들다고 하면 누가 하려고 할까. 이런 사정이니, 위탁부모 개인에게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짐 지우는 게 아니라 ‘돌볼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 「3장 양육은 누구의 몫인가요?」 중에서 우리는 여전히 어떤 형태의 가정만을 ‘정상’이라 부른다.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의문을 갖고, 물어보고, 갸웃거린다. 왜 아이를 낳지 않았어요? 어떻게 같이 살게 된 거예요? 언제까지 같이 살 수 있는 거예요? 아, 그런 일 하시는구나…. 위탁가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건, 우리가 가정의 형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가정은 어떤 모습이고, 또 이상적인 가정이란 어떤 것일까? --- 「4장 이상적인 가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중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언제까지 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지, 언제까지 우리가 가족으로 살 수 있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위탁가정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제도적으로도 보완이 필요하고, 또 위탁부모와 아이의 의견을 반영해서 복귀 시점이 예측 가능하도록, 준비 가능하도록 협의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 --- 「5장 ‘원가정 복귀’는 어떻게 결정되나요?」 중에서 ‘장애 위탁아동은 어떻게 자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장애 위탁아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또 이 질문은 우리가 ‘장애인’을, ‘위탁가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여전히 장애를 결핍으로 바라보고, 위탁가정을 완전하지 않은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장애 위탁아동에 대한 접근은 더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 「6장 장애 위탁아동은 어떻게 자라야 하나요?」 중에서 보육원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시설에서 ‘퇴소’하고 ‘자립’해야 한다. 대학에 진학할 경우 보호 기간이 연장되긴 하지만, 결국은 ‘자립준비청년’이 된다. 어른이 되어도 도움이 필요하고 가족이 필요한데, 망망대해 같은 사회에 혼자 내던져진다. 그렇다면 가정위탁 아동은 어떨까? 위탁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호가 ‘종결’되고 성인이 되면 자립해야 한다는 점은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아이가 더 안정된 환경에서 독립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의 옆에는 ‘위탁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 「7장 부모가 필요 없어지는 때가 있나요?」 중에서 가정위탁은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자선이 아니라, 국가가 부모로서 져야 할 의무를 사회와 나누는 제도다. 위탁부모는 국가의 파트너이지, 대리인이 아니다. 위탁부모의 돌봄은 봉사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종장 국가는 왜 부모가 되어야 할까요?」 중에서 위탁부모로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내 딸 은지가 나에게 위탁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은지에게 위탁되어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니 비로소 보였다. 세상에 홀로 선 사람은 없으며, 누구나 타인에게 삶의 일부를 위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해서는 배우자에게, 자녀를 낳고서는 다시 그 자녀에게, 때로는 부모나 이웃에게 삶의 일정 부분을 위탁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이 책 또한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인터뷰이, 그리고 출판사와 마음을 위탁하고 의지하며 완성해나간 공동의 기록이다. --- 「나가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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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위탁이란,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한 아이에게 평범한 일상을 건네는 일
낳지도 입양하지도 않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 우리는 천사도, 특별한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위탁부모’입니다 *아동권리보장원장 정익중 추천* “이 책은 가정위탁의 현실과 의미를 이해하게 하고, 국가가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신정은(SBS 기자), 손지연(〈서울신문〉 기자), 빈정현(EBS PD) 강력 추천* “위탁이 뭐예요?” “돈이 나오나요?” “어떻게 떠나보내요?” “아, 그런 일 하시는구나…” 도서출판 다각의 신간, 『위탁된 가족』의 저자 배은희가 위탁엄마로 11년간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위와 같은 것들이다. ‘위탁가정’이라는, 비혈연 가족 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형태로 살아서인지 그는 종종 신문이나 방송에서 섭외 요청을 받곤 했다. 그렇게 몇몇 매체를 통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을 소개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영상 속 한 장면이나 신문기사 몇 줄로 담아내기에, 위탁가정의 일상은 너무나 다층적이고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가 “위탁이 뭐냐는” 질문들에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가정위탁은 ‘보호대상아동’을 일정 기간 가정에서 보호·양육하는 제도다. 법은 보호대상아동을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그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않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이라고 정의한다. 이 제도는 어떤 아이들의 생(生)을 좌지우지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보호 조치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국가는 대체로 ‘시설’과 ‘가정’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고르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선택지는 전자다. 우리는 흔히 부모가 그 자리에 없는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자란다고 인식한다. 후자의 선택지처럼 ‘가정’으로 가게 되는 아이들의 경우, 대다수는 친인척이나 조부모의 손에서 자란다. 하지만 전혀 혈연이 없는 생판 ‘남’의 가족이 되는 아이들이 있다. 전체 위탁가정 중 10% 남짓을 차지하는 이 ‘비혈연 위탁가정’이 『위탁된 가족』의 주인공이다. 국제사회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원가정에서 자라기 어렵다면 가능한 한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우리도 같은 방향을 말한다. 문제는 원칙과 현장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다는 데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조금 멀찍이 서서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왜 어떤 아이는 원가정으로 돌아가고, 어떤 아이는 돌아가지 못하는지. 왜 위탁부모가 해야 할 일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자꾸 뒤섞이는지. 돌봄의 책임, 결정의 권한, 지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을 비추고 싶었다. 제도의 설계, 전달 체계, 책임의 배분, 사회적 인식이 함께 얽혀 있는 곳을 말이다. _ p.14 저자는 그가 운영하는 온라인 위탁부모 커뮤니티와 지역의 자조모임을 통해 아홉 가정의 위탁엄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베이비박스 아기를 위탁하고 있는 영진 씨네, 입양가족이면서 위탁가족인 정임 씨네, 새터민 가정인 연정 씨네, 친자녀 없이 두 번째 위탁자녀를 키우는 시라 씨네, 아들만 둘을 위탁한 현정 씨네, 지적장애 딸을 위탁해 키우는 명화 씨네, 보육원 봉사에서 만난 아기를 위탁으로 키우는 정민 씨네, 노련한 사회복지사이자 위탁엄마인 인하 씨네, 두 돌에 만나 곧 고등학생이 될 딸을 키우는 장기위탁부모 순복 씨네. 이렇게 열한 명의 위탁아동들과 그들의 위탁가족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또한 생생한 인터뷰와 서술을 보완하는 글을 장마다 하나씩 덧붙였다. 각각의 보론은 가정위탁제도와 이에 대한 연구, 정책을 두루 살피며 현실을 짚고 더 나은 미래를 제안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가정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편견만 뛰어넘어야 하는 게 아니다. 2025년 10월 29일에 오랫동안 위탁부모들의 숙원이었던 ‘수급비 지출 증빙 의무’가 완화되기 전, 위탁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쓴 돈이 있으면 종이 영수증을 모아 6개월마다 제출해야 했다. 또한 위탁부모는 주민등록등본상 아이의 ‘동거인’에 불과하고 성(姓)도 다르기에 학교나 병원에서 원치 않는 시선과 갖가지 호기심을 견뎌야 한다. 아이의 휴대폰 개통이나 여권 발급, 전학 같은 일상적인 업무에서는 ‘친권’이라는 장벽에 부딪힌다. 주변 사람들의 무지로 인한 호기심이나 불편한 시선도 일상적으로 마주한다. 때로는 ‘천사’ 같은 존재로 포장당하는 민망함도 감내한다. 특별한 존재로 봐주는 걸 고마워해야 할지 부담스러워해야 할지 모호하다. 때로는 ‘내 새끼’를 사랑하며 키우는 당연한 일이 왜 특별한지가 의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저자가 책을 집필하는 3년 여 동안 제도와 현실이 멈춰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25년 10월 29일, 아이 앞으로 주어지는 ‘기초생활수급비 지출 증빙 의무’가 완화된 데 이어 주민등록등본상 ‘동거인’으로 되어 있는 관계 표기 방식을 개선하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변화는 2026년 6월부터 위탁부모에게 부여될 ‘임시후견인’ 권한이다. 이제 곧, 위탁부모는 더이상 아이의 일상적인 업무를 대신 처리할 때 ‘친권’이라는 장벽을 넘지 않아도 된다. 2003년 가정위탁제도가 도입된 이후에 가장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부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아이들 중 일부는 위탁부모에게 ‘위탁’된다. 그런데 따지자면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정들은 뭐가 다른가?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삶의 일부분을 위탁한 채 살아가는데 말이다. 서류상으로만이 아니라 일상의 갖가지 책임들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맡긴 것을/맡은 것을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꼭 혈연으로 이어진 인연이 아닐 수도 있는 그들을 우리는 ‘가족’이라 부른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정의는 현실에 발맞추어 점점 확장되고 있지만, 어쩐지 이미 한껏 확장되어 있던 ‘위탁가정’이라는 가족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무지가 변명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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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동은 가정에서 성장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부모의 유기나 학대로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양육시설을 떠올리지만, 시설 생활은 이미 상처받은 아이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이 책은 대안으로 가정위탁제도를 소개하면서, 무엇보다 아이 곁에 머물며 삶을 함께한 위탁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첫 만남, 마음이 열리기까지의 기다림, 서로의 일상이 되어가는 과정이 솔직하게 전해진다. 가정위탁은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아이에게 평범한 일상을 건네는 일이다. 가정위탁제도는 분명 국가 책임이지만, 국가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는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 가정의 품을 내어주는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이 책은 가정위탁의 현실과 의미를 이해하게 하고, 국가가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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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된 지 20년이 넘어도 여전히 낯선 제도, ‘가정위탁’. 위탁부모들의 선한 마음만으로 버티기에는 어려운 현실이지만, 이들은 세상에 당당하게 외친다. “품는 순간 내 자식”이라고, 우리는 특별하지만 결코 특별한 채로만 남고 싶지 않다고.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온 세상의 차가운 편견을 녹이고 아이들을 품는 따뜻한 불씨는 단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된다. - 신정은 (S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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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위탁을 둘러싼 현실을 이렇게까지 밀도 있게 담아낸 글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에는 제도를 설명하는 건조한 문장이 아니라,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끝까지 놓지 않는 시선이다. 저자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제도를 둘러싼 어려움과 한계를 솔직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을 따뜻하게 비춘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가정위탁이라는 제도를 ‘정책’이나 ‘복지’라는 단어로만 이해하는 데서 벗어나, 누군가의 삶과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 여전히 낯선 이 제도가,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사례의 힘과 정보의 깊이,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함께 어우러져 이 제도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제도를 설명하는 일 너머에서, 이 제도를 통해 서로의 삶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 묻는 기록이다. 더 이상은 혼자 외롭게 남겨지는 아이가 없길 바란다. - 손지연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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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의 공백 속에서 자라야만 하는 아이들의 삶을, 곁에서 오래 고민한 자만이 내놓을 수 있는 질문과 해답이 담긴 책. 그 어떤 정책토론회보다 실질적이고, 그 어떤 휴먼다큐보다 감동적이며, 그 어떤 기록보다 깊이 성찰하게 한다. - 빈정현 (EBS PD, 다큐멘터리 〈초저출생〉 〈어린人권〉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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