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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지진
탐미경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 나를 만나러 와 줘 별종들의 만남 가짜 초상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들 진짜의 가치 해영의 비밀 얼렁뚱땅, 오합지졸 테러단 감춰야만 하는 것에 대하여 문 박사와의 만남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또 다른 문제 우린 테러리스트가 아니야, 혁명가지 적진에서의 숨바꼭질 나는 누구의 그림자도 아니다 작전의 끝에서 관제실의 두 사람 가면 혁명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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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손쉽게 외형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 ‘탐미경’이 발명된 지 벌써 십 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탐미경은 혁명이었다. 안면에 나노 칩 하나만 이식하면 평생 이목구비는 물론 머리칼의 색깔, 눈동자 색 따위도 언제든 바꿀 수 있었다. 게임 속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듯 탐미경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용자의 얼굴을 조절하면 나노 칩이 몸 안에서 얼굴을 바꾸어 주었다. 이를테면 빼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생체 밀착형 가면 같은 것이었다.
--- p.9 수림은 패드 한구석에 끄적끄적 그림을 그렸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날개 뼈까지 오는 파마머리. 자신의 ‘진짜 얼굴’을 그려 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탐미경을 끄고 진짜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진짜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수림은 이목구비 대신 물음표 하나를 크게 그려 넣었다. 그리고 이내 손바닥으로 그 그림을 모두 지워 버렸다. 짧은 손짓 한 번에 물음표로 채워진 얼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p.17 “아빠가 내 탐미경에만 따로 잠금 설정 기능을 추가한 거야. 대표의 딸이 탐미경을 안 쓰고 흠을 그대로 드러내고 다니면, 사람들이 탐미경을 신뢰할 수 없을 거라고……. 탐미경에 무슨 문제가 있으니까 대표의 딸도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냐 생각할 거라고, 끄지 못하게 해 놨어.” 수림은 말문이 턱 막혔다. ‘흠’이라니. 해영의 맨얼굴이 해영의 아버지에겐 ‘흠’인 걸까. 해영의 아버지가 탐미경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보다도 그 단어가 더 충격적이었다. --- p.51 “나, 탐미경 시스템을 고장 낼 거야.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아서 너희가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해. 말하자면 테러를 하자는 거지.” --- p.73 “그러니까…… 나도 합류할게, 해영 누나가 했던 제안.” 뜻밖의 결론이었다. 슬훈은 민망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랑 해영 누나 덕분이야. 탐미경으로 가린 내가 아니라 진짜 나를 마주하고 싶다는 확신이 든 건. 그리고 그 일을 성공하면, 엄마에게도 나를 아빠가 아니라 나 자체로 봐 달라고 하고 싶어.” --- p.88 수림이 뜨거운 감정을 목구멍 속으로 꾹 눌러 삼켰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시선으로 엄마를 마주했다. 자신이 해영의 눈빛에서 탐미경으로는 가릴 수 없는 확고한 신념을 알아챘던 것처럼, 엄마도 ‘진짜 수림’을 알아차려 주길 바랐다. “고마워, 엄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 진짜 나를 찾는 일.” --- p.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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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만 하면 누구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 세상
탐미경은 구원일까 새로운 족쇄일까 이목구비는 물론 머리칼의 색깔, 눈동자 색까지 자유롭게 바꿔 주는 안면 이식 나노 칩 탐미경. ‘모두에게 동등한 아름다움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세상은 획기적으로 뒤바뀌었다. 위험한 미용 목적의 수술, 시술이 사라졌고,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외모 콤플렉스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모두가 원하는 만큼 아름다워질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중학생 수림 역시 매일 아침 일어나 SNS를 켜 유행하는 스타일을 검색하고, 탐미경의 설정을 바꾼다. 하지만 그토록 편리한 탐미경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학교에서는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촌스러운 사람 취급을 받고 조롱의 대상이 된다. 목소리, 몸매 등 탐미경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커지면서 건강을 해치는 다이어트가 유행한다. 베이직 요금제를 쓰는 아이들과 값비싼 프리미엄 요금제를 쓰는 아이들은 친해질 수 없고, 점점 그 격차가 커져만 간다. 과연 탐미경은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할 혁신적인 해결책일까? 혹은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새로운 족쇄일 뿐일까? “탐미경을 끄고 싶어. 이제 더 이상 나를 감추고 싶지 않아.” 서로를 향한 용기와 단단한 믿음으로 거대 시스템을 무너뜨리다 수림은 모두가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다니는 세태를 기괴하다고 생각하지만, 차마 탐미경을 끄고 다닐 용기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탐미경을 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탐미경 대표의 딸 해영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흠’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아빠의 강요로 탐미경을 자체 종료할 수 없다. 아빠와 닮은 얼굴을 엄마가 싫어해서 탐미경을 사용하는 슬훈은 점점 자신을 잃어 가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아름다운 가면 뒤 ‘진짜 나’를 마주할 결심을 하고, 더 나아가 탐미경 본사의 중앙 제어 시스템을 공격해 모두의 탐미경을 종료시키기로 한다. 생김새도, 성격도, 잘하는 것도 다른 수림, 해영, 슬훈은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우정을 쌓는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탐미경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킨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받아들일 용기 “나는 타고난 나를 외면하고 지우려고 애쓰지 않을 거야.” 『탐미경: 얼굴을 바꿔 드립니다』가 그리는 세계는 얼핏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현대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외모로 사람의 급을 나누고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강박적으로 외모를 가꾸게 된다. 맨얼굴을 보이기 싫어 마스크를 벗지 않고, 건강을 해치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고, 실물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진을 보정하고, 성형 수술과 시술 정보를 찾아본다. 마치 외모가 나의 전부인 것처럼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외모 외에 ‘나’를 이루는 가치는 수도 없이 많다. 『탐미경: 얼굴을 바꿔 드립니다』는 외모 때문에 나를 외면하고 미워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수림, 해영, 슬훈은 각자의 탐미경을 끈 뒤에야 자신이 진짜 사랑하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갈 수 있었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 독자들 역시 외모 이외에 나를 이루는 가치가 무엇인지, 또 그 가치를 높이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잊고 사는 사실을 보여 줘야 해. 우리에겐 진짜 얼굴이 있다는 거. 아무리 보기 좋은 가면으로 가려 봤자 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7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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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배경 속으로 독자를 강렬하게 끌어당긴다. 주인공과 함께 숨 가쁘게 달리며, 그들의 여정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만든다. 바로 이 소설처럼 말이다.
더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 실현된 세상. 가짜 아름다움에 취한 세상에 맞서 서로의 손을 맞잡은 아이들이 있다. 기묘한 평화를 깨뜨리기 위한 아이들의 질주는 후반부의 폭발적인 박진감과 함께 독자를 단숨에 결말까지 밀어붙인다. 그들의 발걸음은 당차고 뜨겁다. 견고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힘은 최첨단 기술이 아닌, 서로를 향한 용기와 단단한 믿음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내 앞에 탐미경이 놓인다면, 과연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김하연 (『시간을 건너는 집』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