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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I 재판관이라는 자리 홀로, 그러나 함께 법복 안의 인간 욕망과 원칙 사이에서 신념보다 앞세워야 하는 것 Ⅱ 누구를 파면할 것인가 판사를 심판하다 성실하지 않은 권력 법원의 판단,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중대하다는 것의 의미 탄핵심판이 힘을 잃을 때 III 헌법이 말하는 민주주의 결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표를 얻는 것과 마음을 얻는 것 입법무효를 선언하는 순간 검사라는 브레이크 Ⅳ 말할 자유, 침묵할 권리 제복 입은 민주주의자들 책 한 권이 범죄가 될 때 금지된 생각, 자유로운 표현 표현과 모욕의 경계 진실이 처벌로 돌아올 때 광장을 채우는 시민의 목소리 Ⅴ 세상의 속도와 헌법의 속도 법정에 선 가족들 사립학교, 자율의 사각지대 보건 규제와 자유 도로 위의 헌법 권고로 위장한 강제 회원제 골프로 읽는 시대의 기후 빅브라더 시대의 헌법 Ⅵ 헌법재판소가 나서는 순간 정책과 헌법이 만날 때 재판을 취소하는 재판 멈춰버린 법의 시계 속도에도 원칙이 있다 국가가 헌법을 넘어서지 않도록 Ⅶ 풀리지 않는 숙제들 사형제, 국가가 생명을 다루는 방식 노동 사건, 법이 침묵하는 현실 평등의 이중잣대 변호사와 집사 무죄 아닌 무죄 국가가 약속을 어길 때 지나친 말, 모자란 법 바다 위에 그은 선 Ⅷ 우리는 어떤 헌법재판소를 원하는가 정치화의 유혹 전통과 변화의 균형 권한의 경계 결정 뒤에 남은 것 에필로그 돌아가야 할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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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복 안에는 한 인간이 있다
헌법재판소와 재판관 헌법재판소의 조직 문화를 잘 보여주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호(號)’와 ‘총무’이다. 재판관들은 서열, 출신, 직급이 아닌 스스로 정한 ‘호’로 불린다. ‘청광님’ ‘고암님’ ‘둔산님’. 저자의 호는 저울과 바위를 뜻하는 ‘형암(衡岩)’이었다. 마냥 엄격할 것만 같은 법조계에도 ‘닉네임’이 있는 셈이다. 총무는 가장 늦게 임명된 사람이 맡는데, 중요한 역할은 평의에서 가장 먼저 발언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덕분에 신임 재판관은 선배들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재판관들은 경력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오로지 ‘논리’만이 힘을 가진다. 그러나 법복 안에는 여전히 한 인간이 있다. 때로는 유혹 앞에서 흔들리고, 신념 앞에서 고민하는 인간. 저자 또한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자리를 향한 욕망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판사에게도 판결로써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앞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저자는 흔들리고 성찰하는 자만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더 나아지려 노력하는 사람. 때로는 실패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사람”을 강조하는 저자의 시선은 결국 우리를 향한다. 함께 헌법을 고민하고 생각하자며 손을 건넨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28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하는 메시지이다. 탄핵이 남긴 위험한 질문들 누구를 어떤 이유로 파면할 것인가 헌법재판소를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릴 단어는 탄핵일 것이다. 국가를 뒤흔드는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늘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이 사람을 파면할 만한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탄핵심판을 둘러싼 주요 쟁점으로 ‘불성실’과 ‘중대성’을 말한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한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탄핵사유가 될 수 있는지가 바로 성실의무의 쟁점이었다. 2017년, 헌법재판소는 이를 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3년 이태원 참사, 2024년 검사 탄핵 사건, 2025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을 거치면서 성실의무는 서서히 논의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탄핵심판의 헌법적 기준이 조금씩 정교해지고 있는 것이다. 공직자의 헌법 위반이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지를 따지는 문제는 더 복잡하다. 본래 중대성은 정치적 탄핵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기준이었으나, ‘사후적 외부 사정’ 논리가 더해지면서 논란이 생겼다. 위반으로 발생한 피해가 사후에 해소된 경우에는 중대성이 약하다고 보는 결과론적 해석이 등장한 것이다. 만약 이 논리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도 적용되었다면, 계엄이 금방 해제되어 피해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중대성이 약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다. 저자는 이 논리가 언제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며, 탄핵심판이 남긴 질문을 계속해서 되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헌법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의 결정은 내일의 정의를 만든다. 시민의 곁에 서기 위해 지켜야 할 권리, 바꿔야 할 기준 헌법재판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판단은 언제나 논쟁을 동반한다. 집회의 자유를 둘러싼 결정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무총리 공관,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간, 인천시청 광장에서 각각 발생한 네 집회에 대해서, 권력자의 안전과 평온을 이유로 전면금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집회의 자유는 장소의 자유이며 광장의 상징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결정은 국민에게 신뢰를 준다. 언제라도 헌법은 국민의 편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늘 일관적이지만은 않다. 과거의 결정도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침해한다면 기꺼이 바꾼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그러했다. 2019년 4월 11일, 66년 동안 유지되어왔고 7년 동안 합헌이었던 조항이 뒤집혔다.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방식이 여성의 존엄과 자유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헌법은 일관된 모습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보여주면서도, 시대와 호흡하며 헌법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유연하게 행동한다. 끝난 사건과 남아 있는 질문 우리가 만들어나갈 미래 헌법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속단하지 않는다. 더 나은 정의를 위해 역동적으로 진화한다. 그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조금씩 답을 찾아간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해상경계를 정하는 일이었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해안선과 유인도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당시 주민들의 삶과 연결된 무인도도 고려하여야 한다는 반대의견은 6년 후 다수의견이 되어 법리로 채택된다. 2022년에는 논쟁이 더욱 복잡해진다. 무인도가 주민들의 생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따라 그 중요도를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한 것이다. 이렇듯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영구적이지 않다. 소수의견이 미래의 다수의견이 되면서 법리는 더 정교해진다. 그러나 결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지금까지 관련 입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신 중단 절차, 의료진 보호 등 필요한 규정이 모두 공백으로 남았다. 결정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권리 선언을 실현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몫이며,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생각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책을 덮은 후에도 남아 있는 저자의 물음은 사회를 밝히는 빛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