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작가의 말
004 입춘(立春) 010 “안녕. 아가.” 072 심연 138 동행 196 판권지 256 |
김유은의 다른 상품
|
자조 섞인 농담에 원은 낄낄거리며 잔을 부딪쳤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술기운으로 잠재우며,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는 뜨거운 공감대 안에서 잠시나마 외딴섬의 고립감을 잊었다. 소주의 쓴맛이 오늘따라 유난히 달콤하게 느껴지는, 비겁하고도 절박한 밤이었다.
---p.33 「입춘(立春)」 중에서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죽고 싶다고 울부짖었던 그 처절한 마음의 본질은, 사실은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고 싶었다는 갈망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죽음이라는 도피처를 찾을 만큼 절박했던 이유는, 그만큼 정직하게 제 삶을 일궈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뜨거운 오열이 되어 터져 나왔다. ---p.61 「입춘(立春)」 중에서 누군가 먼저 살아낸 인생의 고비들을 다 지나왔기에 건넬 수 있었던 지독한 간섭이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그 간섭을 이어가야 할 차례임을 원은 겸허히 받아들였다. 다 지나간다고. 지나가면 사실 살만한 게 인생이라고 말해줄 차례였다. ---p.68 「입춘(立春)」 중에서 여기저기서 맞장구가 터져 나오고 휴게실은 ‘엄마 밥'이라는 마법 같은 치료제에 대한 예찬으로 달궈졌다. 현은 그 열기 어린 대화에 한 뼘도 섞이지 못한 채, 차가운 생수병의 매끄러운 표면만 부질없이 만지작거렸다. 팀원들에게 엄마 밥이란 혹독한 입덧을 잠재우는 유일한 처방전이자 평범한 축복이었지만, 현에게 그것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실체 없는 소문일 뿐이었다. ---p.82 「“안녕, 아가”」 중에서 ‘엄마는 왜 나를 버렸을까.’ 제 몸을 찢고 나온 이 작고 보드라운 생명이 가슴팍에 닿는 순간, 현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식이란 존재는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는, 제 살점보다 귀한 목숨의 일부라는 것을. 이토록 뜨겁고 이토록 생생한 이 존재를 두고, 대체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그 문밖을 나섰던 것일까. ---p.94 「“안녕, 아가”」 중에서 비밀은 결코 현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미 담벼락을 넘어, 현이 가장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버린 모양이었다. 현은 마치 낭떠러지 끝에 홀로 선 아이처럼, 거칠게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p.124 「“안녕, 아가”」 중에서 회사 일이라는 것이 그랬다.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끝도 없는 엑셀 데이터와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구차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저녁이면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피로가 몰려왔다. 민서가 사준 구두는 뒤축이 조금 닳았고, 가죽 가방의 향긋하던 냄새도 어느덧 지하철의 땀 냄새와 사무실의 찌든 공기에 가려져 무미건조해졌다. ---p.147 「심연」 중에서 환의 목소리는 끝내 떨리고 말았다. 함께했던 긴 시간동안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가난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품었던 가장 비굴하고도 진실한 속마음이 포장마차의 눅눅한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안주가 식탁 위에 놓였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환의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p.184 「심연」 중에서 먼저 떠나버린 자식을 위해 미정은 아들이 떠난 날이면 제사 대신 끼니때마다 이렇게 밥 한 그릇을 더 얹곤 했다. 누가 가르쳐준 예법도 아니고, 어디서 본 풍습도 아니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하지만, 혹시라도 영혼이 있다면 내 자식 배곯을까 봐, 밥 한 술이라도 든든히 먹이고 싶은 엄마의 미련한 마음이 지어낸 법도였다. ---p.201 「동행」 중에서 미정의 마음속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충동적인 분노도 아니고, 지독한 원망의 산물도 아니었다. 마치 잘 익은 열매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듯, 혹은 다 탄 연탄재가 서늘하게 식어 부스러지듯,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결론이었다. ---p.216 「동행」 중에서 입술을 깨물며 소리 없는 울음을 삼켰다. 규철의 그 오래된 침묵은 오만이 아니라, 제 죄가 너무 무거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참회였을까. 미정은 규철을 향해 세워두었던 날 선 증오의 칼날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그 사내의 가슴 속에 파놓은 깊은 우물을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자책이, 미정의 가슴을 지져대고 있었다. ---p.245 「동행」 중에서 |
|
찰나를 견디는 우리에게 건네는 영원한 문장들: 『다 지나가는 거예요』
100만 독자가 기다려온 ‘공감의 현상학’, 문장으로 생의 심연을 건너다. 글자로 새겨진 위로가 한 개인의 삶을 넘어 전 세계 100만 명의 마음속에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 잡기까지, 독자는 김유은이라는 이름에서 '나를 읽어주는 문장'을 발견해 왔다. 일본 대형 서점에서 3년 연속 스테디셀러를 기록하며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 울림을 증명한 그녀가, 6년이라는 인고의 시간 끝에 첫 소설집 『다 지나가는 거예요』를 세상에 내놓는다. 소설집의 수록작들은 작가가 구축한 정교한 세계관 속에서 인물들이 몸소 겪어내는 삶의 발화다. 출간 즉시 일본 판권 수출이 확정된 것은, 작가가 포착한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선이 시대와 언어를 초월한 철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방증한다. 네 개의 세계, 그리고 ‘살아감’이라는 공통의 질문 본 소설집에 수록된 네 편의 이야기는 독립된 서사인 동시에, ‘삶, 사랑, 정체성’이라는 거대한 세 축을 관통하는 하나의 유기체다. 작가는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들이 관계 속에서 겪는 마찰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작가의 문장은 날카로운 메스보다는 따뜻한 시선에 가깝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실금을 찾아내고,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슬픔과 기쁨을 긍정한다. 이는 단순히 '견디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통과하는 모든 순간이 결국 존재를 빚어내는 필수적인 공정임을 사유하게 한다. “다 지나가는 거예요” 시간을 넘어 존재의 정의를 다시 쓰다 제목 『다 지나가는 거예요』는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허무주의적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 결코 풍화되지 않는 '진심의 뼈대'를 확인하라는 존재론적 권유다. 독자들은 책장을 덮는 순간, 어제와 같은 단어였던 ‘산다는 것’에 대해 전혀 다른 정의를 내리게 될 것이다. 불확실성의 파도 속에서 표류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가장 정직하고도 절실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김유은 작가가 펼쳐놓은 네 편의 지도를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깊은 나이테로 남겨지는 것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