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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삼가 족조 고헌 옹의 〈독서하는 제군에게 드림〉을 차운함 2수삼가 고반동 중수 시를 차운함 2수선석사 독서우연히 읊다숙야재에 올라고헌 옹에 대한 만사 3수한주 이 공에 대한 만사윤3월 초7일다음 날완계재에서 유천 이 장께 올리는 시회연 서당에서 여러 벗들과 시를 주고받다 10수만구 이종기 공에 대한 만사 3수암하 송기선 어른에 대한 만사 3수효산 이수형 어른에 대한 만사 3수교리 안순중(효제)에 대한 만사?짧은 서문 아울러 씀 2수홍류동 석각계재에서 벗을 보내며여러 벗들과 작별하며손 첨사에 대한 만사 3수한유천의 등곡 권안소 알성시에 차운하다성성진(종호)에게 준 시에 화운하다?짧은 서문을 아울러 씀 5수최사언(성규)의 생신 축하시에 차운하다무흘에서 수령 김동만과 주고받다어떤 이에 대한 만사 3수종조 지수공을 대신해 쓴 족조 혜와(호석)에 대한 만사?짧은 서문을 아울러 씀 2수숙야재에서 배서구(주환)와 함께하다최 모의 생일 축하시잠명(箴銘)독서를 권하는 잠서첨(書籤)에 쓴 명‘격물치지성의정심’에 관한 명찬(贊)‘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 관한 찬서(書)족조 고헌 옹께 올림외삼촌 농산 장 선생께 올림고을 수령 허석께 드림성공옥(영찬)에게 답함장순화(석영)에게 드림내형 장진해(상기)에게 답함권우약(상락)에게 드림이맹연(중화)에게 드림박자교(해령)에게 드림종숙 진용께 답함권치약(상행)에게 답함또 권치약(상행)에게 답함권천약(상연)에게 답함이형숙(전희)에게 드림이순성(소구)에게 답함이맹원(기형)에게 답함백동 이씨 문중에 드림교동에 답함이충부(기정)에게 드림이덕부(재형)에게 답함이수영에게 답함송윤화(인집)에게 답함선석 일기(禪石日記, 1886)1월 15일, 매형과 책 상자를 지고 중암에 가다1월 18일, 서쪽 상방에 책 상자를 들이다1월 19일, 명간에서 양식과 음식이 오다1월 20일, 승려 경우가 와서 배알하다1월 21일, 내종숙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다1월 22일, 승려 경호 편에 집으로 편지를 부치다1월 23일, 나무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다1월 24일, 재봉이 책 상자를 지고 오다1월 25일, 수레꾼 편에 집으로 편지를 부치다1월 26일, 각산에서 책을 빌려 오다1월 27일, 승려 경호 편에 집으로 편지를 보내다1월 28일, 큰절의 승려가 글을 요청하다1월 29일, 승려 경호가 집 편지를 갖고 오다2월 1일, 장 군의 생일을 맞이하다2월 2일, 승려 경우가 금오산 약사암으로 가다2월 3일, 〈하서〉를 마치다2월 4일, 승려 경우와 행옥이 돌아오다2월 5일, 승려 용성이 불존이 되고자 하다2월 6일, 산중의 맛 송피 떡을 먹다2월 7일, 도윤필과 허교하다2월 8일, 증조부 제사에 참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다2월 9일, 승려 용성과 대화를 나누다2월 10일, 승려 쾌옥이 《팔양경》을 염송하다2월 11일, 《법화경》 읽는 소리가 청량하다2월 12일, 책머리에 선군자가 기록한 현토를 보다2월 13일, 승려 용성과 법담을 나누다2월 14일, 여러 불상을 살펴보다2월 15일, 저녁에 발을 삐다2월 16일, 걸립패들이 절에 오다2월 17일, 배움은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2월 18일, 이태인이 재봉에게 글씨를 배우다2월 19일, 승려 성문이 발원문에 대한 시주금을 요청하다2월 20일, 〈열명〉 상·중을 읽기 시작하다2월 21일, 승려 영수 편에 집으로 편지를 부치다2월 22일, 〈열명〉 하를 읽다2월 23일, 맑다2월 24일, 《상서》 읽기를 마치다2월 25일, 《서경》 마지막 편을 빌려 오다2월 26일, 내종의 집안에 천연두가 만연하다2월 27일, 서책과 이부자리를 부치다2월 28일, 집으로 돌아와 가묘에 배알하다2월 29일, 고헌 어르신께 《서전》과 《소학》의 의문처를 질문하다3월 1일, 비가 내리다3월 2일, 재봉과 명간에 투숙하다3월 3일, 두통으로 밤새 앓다3월 4일, 〈태서〉를 읽기 시작하다3월 5일, 거처하는 곳이 좁아 상방을 트다3월 6일, 동자가 《통감》과 《사기》를 가지고 오다3월 7일, 비가 내리다3월 8일, 〈태서〉 중·하편에서 〈목서〉까지 읽다3월 9일, 은암 어른께 답장을 쓰다3월 10일, 기이한 차림의 처사를 보다3월 11일, 기이한 행자승 한 사람을 만나다3월 12일, 진암당의 재일에 사람들이 모이다3월 13일, 거처가 좁고 인원이 많아 불편하다3월 14일, 〈홍범〉을 읽기 시작하다3월 15일, 부의 여자가 재를 준비하다3월 16일, 노부인이 읍에서 오다3월 17일, 승려 성민 부친의 감동적인 편지를 읽다3월 18일, 승려 성민이 부친의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다3월 19일, 명간에서 한글 편지가 오다3월 20일, 오후에 매형과 각산으로 가다3월 21일, 비에 막혀 머물다3월 22일, 내종이 나들이를 준비하다3월 23일, 사돈이 음식을 갖고 와 나누어 먹다3월 24일, 불인촌으로 가서 시회를 열다3월 25일, 승려 용성과 모임을 갖기로 하다3월 26일, 승려 영수가 스승의 쌀을 훔치다부록성재 선생 서원 정 공 묘도비명 병서(省齋先生西原鄭公墓道碑銘 幷序)해설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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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난세의 한가운데서 유학자의 길을 묻다1919년 3월, 일제의 억압에 맞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유림의 '파리 장서(巴里長書)' 운동. 이 숭고한 저항에 서명하고 일제의 탄압을 받아 최초로 순국 자정(自靖)한 선비가 있다. 바로 문목공 한강 정구의 13대손이자 성주 지역의 꼿꼿한 유학자였던 성재(省齋) 정재기(1857∼1919)다. 《성재 시문선집》은 격동의 근대 전환기를 살다 간 그의 미간행 필사본 《성재집》 가운데 핵심적인 시와 산문을 엄선해 번역한 책이다.이 책은 단순한 문집 번역을 넘어선다. 시보다 서(書, 편지글)를 압도적으로 많이 남긴 그의 저술 성향이 말해 주듯, 성재는 문학적 낭만보다는 치열한 학문적 토론과 실천을 중시했던 전형적인 도학자였다. 성재 시문선집》에는 그의 시와 잠명(箴銘), 찬(贊)을 비롯해 시대적 고뇌가 담긴 편지글, 그리고 성재의 치밀한 독서와 수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선석 일기〉 등을 고루 수록했다.성재의 학문은 사서오경, 특히 《서경》과 선조 한강 정구의 《심경발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책상에 서첨(書籤, 책갈피)을 두고 “절차탁마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덕을 취할까”라며 스스로를 경계했던 그는 평생 지병에 시달리면서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그가 살았던 시대는 병인양요부터 경술국치에 이르는 망국의 뼈아픈 역사가 진행되던 때였다. 성재는 “어지러운 세상, 이미 망한 삼천리강토”라 통탄하며, 시대의 위기 앞에 서구 문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세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철저한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은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라, 망국의 위기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치열한 애국 운동의 발로였다.또한 이 책은 선조 한강 정구의 학맥을 잇고 가문을 지키려 했던 그의 숭조 의식과, 자연 속에서 어짊과 지혜를 구했던 자연관도 상세히 조명한다.AI 시대라는 또 다른 격변기를 맞이한 오늘날, 타협 없는 지조와 굳은 절개로 목숨까지 바쳤던 성재 정재기의 글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혼란한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했던 한 지식인의 올곧은 정신을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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