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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은채 - 쓸쓸한 사랑 윤 - 차가운 사랑 희경 - 가벼운 사랑 주오 - 잔인한 사랑 두 남자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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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신이 내 손에 지우개를 쥐여 준다면, 그래서 과거의 어느 한 부분을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이 혹시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어디를 지울까.
그의 개인전 제목은 ‘파란방’이었다. 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농밀한 그들만의 언어, 그들의 대화 속에 내 자리가 없다는 것은 처절한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누드모델의 육체라는 오브제로 필터 없이 적나라하게 전개되는 그들만의 대화를 그림으로 이어 간다고 생각하니 나의 온몸은 지옥에 던져져서 활활 타올랐다. --- 「은채」 중에서 나는 은채의 경험 없는 몸을 탐하지 않았다. 불쑥 찾아오는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책임과 의무가 결여된 인간이 몸을 사리는 방법이었다. 하루의 시간만 사는 인간에게 책임감이라는 것은 커다란 굴레였다. 잡초는 잡초답게 살아야지 화초를 퇴색시키고 망치는 것은 죄악이다. --- 「윤」 중에서 파란방은 높다란 하늘이었고, 파란 하늘은 커다란 방이었다. 소파베드를 펼치고 그 위에 하얀색 시트를 깔아 놓은 곳이 내 무대였다. 파란 방에 들어와서 옷을 벗고 깨끗한 시트 위에 앉아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뜬구름 같은 여자,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여자, 윤의 화폭에서 여자는 그런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 「희경」 중에서 블루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색이다. 병원의 벽지에서 집 주방을 장식한 그릇까지 모두 블루 계열이었다. 윤의 작업실은 파란 방이었다. 그가 선택한 블루와 하얀 구름이 무척 선명하고 정갈했다. 그에게 꽤 관심을 쏟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화가와 누드모델의 관계가 궁금했다. --- 「주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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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아스포라 소설의 새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한 구소은 작가의 장편소설
이야기는 개인전을 앞두고 화가의 그림이 파괴된 사건으로 시작한다. 적록색맹인 화가 윤, 부모가 운영하는 유치원 아동 심리사이자 동화 작가 은채, 누드모델 희경, 성형외과 의사 주오의 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네 명의 등장인물은 그림이라는 오브제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가 지닌 이유로 그림의 파괴 욕구에 흐름이 모이고, 그 안에서 질투라는 감정과 이기적인 욕망, 어긋난 배려와 결핍, 소유욕 등 인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하나의 사건과 다수의 용의자, 그 이면에는 등장인물들의 감춰진 성적 욕구가 있다. 그렇다고 [파란방]은 파괴된 그림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소실이 아니다.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감정의 구조를 해부하는 소설이다. 사랑은 비극이며 차갑고, 가벼우며 잔인하다. 이 네 개의 정의는 작품의 각 장을 여는 문장이지만, 실은 하나의 문장으로 합쳐진다. 소설은 모순된 사랑의 여러 얼굴을 통해 인간의 결핍이 어떻게 타인을 파괴하고 자기 자신마저 무너뜨리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파란방]은 사랑 소설이 아니라 결핍 소설이며,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 상처의 진술서다. 그리고 그 진술서의 끝에서 독자가 마주하는 것은 범인의 얼굴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자기 안의 ‘파란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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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방]은 인간의 원초적인 ‘미’와 ‘욕망’의 문제를 날카롭게 해부한 역작이다.
아름다움과 욕망, 결핍과 트라우마, 상처와 극복의 드라마로 가득한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 구소은 작가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 정여울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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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파란방]이 솔직하고 진실에 가까운, 현재 이곳을 살아가는 남녀들의 성 활동과 성 반응에 대한 위선 없는 벽화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성에 대한 솔직한 표현을 좀 더 밀고 나가는 작품들을 한국 소설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니체식으로 말한다면, 오르가슴이 없는 삶은 실수다. 나는 에밀 졸라가 [목로주점]의 서문에서 했던 말을 구소은 작가의 책 광고에 오려 붙이고 싶다. “이 책은 거짓이 없고 대중의 냄새가 드러나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나의 첫 번째 섹스소설입니다.“ - 한현근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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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방]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너무나 선명하다. 샤워 가운을 벗고 전신 거울 앞에 선 몸, 그 몸을 스스로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 그리고 점점 안으로 파고드는 묘사. 그것은 단순한 외설이 아니라 감각의 언어로 구축된 하나의 세계였다. 육체는 풍경이 되고, 감각은 서사가 된다.
문학은 때로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감각을 건드린다.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억눌린 감각과 욕망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것은 단순한 자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딘가에 쌓여 있던 찌꺼기를 흘려보내듯, 무의식의 깊은 층에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을 건드리고 정화한다. [파란방]의 문장들은 바로 그런 기능을 한다. 읽고 나면 무엇을 봤는지보다 내 안에서 무엇이 움직였는지가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단순히 자극적인 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은, 욕망을 통과해 인간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 이현우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