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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Macfar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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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시간』이 남긴 선물 가운데 하나는 시간이다. 리 퍼머는 도보 여행을 시작한 지 44년이 지난 1977년에 이르러서야 책을 출간했는데, 이토록 길고도 신중한 유예 덕에 청년기의 경탄과 중년기의 지혜와 통찰이 모두 담긴 어조가 탄생했다.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금 경제의 상호 구속 바깥에 존재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종류의 친절이란 어떤 것인지 등, 선물의 본질에 관한 고찰이 그러한 지혜 중 하나다.
---p.13 하이드는 ‘소유물’의 두 종류인 상품과 선물을 대조했다. 상품은 취한 뒤 비축하거나 되판다. 하지만 선물은 새로운 형태로 건네지고 계속해서 움직인다. 상품은 대부분 비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 경제에 따라 유통되는 반면, 선물은 대부분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타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선물 경제에 따라 유통된다. 시장 경제에서 가치는 한 명의 개인에게 발생하는 것으로, 비축 또는 저축을 통해 발생한다. 선물 경제에서 가치는 개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것으로, 주고받음을 통해 발생한다. ---p.21 내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 중 몇 번이고 나눠주고 또 나눠줬던 책이 다섯 권 있는데, 이 책들은 당장이라도 나눠줄 수 있게 항상 몇 권씩 준비해 둔다. 서점에서 그중 하나를 발견하는 날에는 때가 되면 언젠가 적합한 주인이 나타나리라는 마음으로 구매해 선물용 더미에 추가해 두기도 한다. ---p.25 책을 쓰며 혼자 보내는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은 내가 쓰는 책이 (운이 좋다면) 사회적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내가 쓴 책이 독자들의 상상력과 기억에 들어가 거기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주머니나 배낭에 욱여넣어져 산으로 외국으로 돌아다니고,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건네 선물이 되는 삶 말이다. ---p.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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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고 이어지는, (책) 선물이 일으키는 순환
《선물 같은 시간》은 1933년, 열여덟의 리 퍼머가 유럽 대륙을 도보로 여행하며 길 위에서 받은 수많은 환대와 호의를 담은 여행기다.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기 직전 유럽의 풍광이 담긴 기록이기도 하다. 《선물 같은 시간》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맥팔레인의 삶과 작품에 흔적을 남기는데, 맥팔레인의 표현으로 이는 스스로 살아가는 책의 '사회적 삶'이다. 루이스 하이드에 따르면 선물은 건네지는 순간 새로운 형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돌려받을 기대 없이 내어주기에 처음 준 사람에게 온전히 갚을 수 없고, 보답할 길이 없으므로 다음 사람, 또 그다음 사람을 향해 흘러간다. 상품과 달리 선물은 자본의 논리 바깥에서 주고받음으로써 움직인다. 맥팔레인에 베이징에서 문학을 가르칠 때 만난, 동료 교수이자 만학도 돈은 형편이 좋지 않음에도 맥팔레인에게 계속해서 책을 선물했다. 돈이 선물한 《선물 같은 시간》은 맥팔레인의 손에 들려 움직이고 다른 이들에게 다른 형태로 되돌려진다. 리 퍼머가 걸으며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다면 , 맥팔레인은 걸으며 인류세 지구를 관찰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고산지대를 오르고(《마음의 산》), 고대의 순례길과 해로를 걷고(《오래된 길》), 지하 핵폐기물 처리 시설까지 내려가 심원의 시간을 탐사한다.(《언더랜드》). 이는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는 자연, 장소, 풍광으로 우리가 선물로 받았으나 선물인 줄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다. 하이드는 예술가의 재능(gift) 역시 선물로, 스스로 구입하거나 노력한다고 얻을 수 없고,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니 소유하거나 비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선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작품이라는 선물로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헌신해야만 한다. 1933년에 시작한 리 퍼머의 여행은 긴 유예를 거쳐 1977년《선물 같은 시간》으로 출간되었고 맥팔레인은 2016년 책은 선물》(The Gifts of Reading)]을 발표했다. 이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은 편집자 제니 오차드는 여러 작가들의 책 선물 에세이를 모아 2020년에 동명의 앤솔로지를 만들었고, 2025년 후속작 《다음 세대를 위한 책 선물》(The Gifts of Reading for the Next Generation)을 출간했다. 모든 책은 사라지고 있는 시간의 기록이며, 읽고 쓰는 이에게 책은 일종의 ‘선물’이다. 모든 것이 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이 연결의 고리 안에 있는 이들은 대체로 풍요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