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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론 : 경제학과 인간행동학 • 43

제1부 인간의 행동

1장 행동하는 인간

3장 경제학, 그리고 이성에 대한 반란

제2부 사회라는 틀 속에서의 행동

8장 인간 사회

9장 사상의 역할

10장 사회 내에서의 교환

제3부 경제 계산

11장 가치 평가는 계산이 불가능

13장 행동의 도구로서의 화폐 계산

제4부 시장경제학, 즉 시장 사회의 경제학

15장 시장

16장 가격들

17장 간접 교환

18장 시간 경과 속에서의 행동

19장 이자

20장 이자, 신용팽창, 경기 변동

21장 노동, 그리고 임금

22장 인간 외적인 본원적 생산요소

제5부 시장 없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협동

25장 사회주의 사회라는 가상 모형

26장 사회주의에서의 경제 계산 불가능성

제6부 인위적으로 방해받는 시장경제

27장 정부와 시장

28장 세금 부과에 의한 간섭

29장 생산제한

30장 가격 구조에 대한 간섭

31장 통화와 신용 조작

32장 몰수와 재분배

33장 혁명적 조합주의와 동업 조합주의

34장 전쟁의 경제학

35장 복지 원리 대 시장 원리

36장 간섭주의의 위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루트비히 폰 미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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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Edler von Mises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188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왕국의 렘베르크 시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땅인 이곳에서 아버지가 철도부설 기술자로 일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자유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요아힘 란다우의 조카였다. 미제스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빈으로 이주했다. 1900년 빈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해 1906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몇 달간 재무부에 근무하다가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09년 빈 상공회의소로 들어가 1938년 히틀러 나치의 침략 이후 쫓겨날 때까지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1934년 이후에는 제네바 국제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188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왕국의 렘베르크 시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땅인 이곳에서 아버지가 철도부설 기술자로 일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자유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요아힘 란다우의 조카였다. 미제스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빈으로 이주했다.
1900년 빈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해 1906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몇 달간 재무부에 근무하다가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09년 빈 상공회의소로 들어가 1938년 히틀러 나치의 침략 이후 쫓겨날 때까지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1934년 이후에는 제네바 국제관계연구소 대학원의 초청을 받아 스위스로 갔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미제스는 1차 대전 패전국이었던 오스트리아 문제가 더 이상 국내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국제연맹이 있던 제네바로 갔다고 썼다. 미제스는 경제학의 과학성을 위해 헌신적 연구를 하면서도, 이처럼 현실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뛰었다.
59세의 나이에, 10년 이상 사귄 배우 출신의 미망인 마르기트와 결혼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프랑스 침공에 성공하고, 빈에 있는 미제스의 집을 수색해 책이나 문헌을 압수해 가자 어쩔 수 없이 마르기트와 함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는 길을 택했다. 이후 세미나를 주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오스트리아학파를 번성시켰다. 1973년 10월 10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책들 중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인식론을 다듬은 것으로는 ≪경제학의 인식론적 문제들(Epistemological Problems of Economics)≫(1933), ≪과학이론과 역사학?사회·경제적 진화에 대한 해석(Theory and History?An Interpretation of Social and Economic Evolution)≫(1957), ≪경제과학의 궁극적 기초(The Ultimate Foundation of Economic Science)≫(1962)가 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내용을 발전시킨 책으로 ≪화폐와 신용의 이론(The Theory of Money and Credit)≫(1912), ≪경제학(Nationalokonomie)≫(1940), 이 책을 확대 발전시켜 미국에서 발간한 경제학 개론서인 ≪인간행동(Human Action)≫(1949)이 있다.
또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실천적 지침으로서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자유주의(Liberalismus)≫(1927)가 그것이다.
고국 오스트리아에서도 인플레이션 정책에 견결히 반대를 했고, 성공도 좌절도 맛보았지만, 미국에 와서도 간섭주의의 원인인 국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의 예봉을 삼가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1929년에 출간했던 ≪간섭주의 비판(Kritik des Interventionismus)≫의 영어판 ≪간섭주의: 경제적 분석(Interventionism: An Economic Analysis)≫(1941)을 냈고, 히틀러 정권의 대두에 대해서 분석한 ≪전능한 정부?전체주의 국가의 대두와 전면전(Omnipotent Government?the rise of the total state and total war)≫(1944), 기업가의 회사 경영과 관료 지배가 얼마나 다른가를 분석한 ≪관료제(Bureaucracy)≫(1944)를 연달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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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운은 청주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면서 반독재 민주화 학생운동을 전개했고, 학생운동을 지휘하다 현상 수배되어 후배 박종철을 고문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이를 가슴에 간직한 채 민주화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또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비전을 두고 모색하던 중,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2년 소련 붕괴 등 세계사적 격변을 목도하고, 좌파적 질서인 사회주의가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날마다 소비자의 돈을 통한 투표에 의해 봉사자(serviceman)로서의 기업가가 선택
박종운은 청주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면서 반독재 민주화 학생운동을 전개했고, 학생운동을 지휘하다 현상 수배되어 후배 박종철을 고문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이를 가슴에 간직한 채 민주화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또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비전을 두고 모색하던 중,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2년 소련 붕괴 등 세계사적 격변을 목도하고, 좌파적 질서인 사회주의가 대한민국의 미래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날마다 소비자의 돈을 통한 투표에 의해 봉사자(serviceman)로서의 기업가가 선택되는, ‘소비자 민주주의’로서의 시장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 위에서 좌파정권 10년의 극복을 위해서 국회의원 연구모임 ‘국가발전전략연구회’의 사무처장, 경기도 경제단체 연합회 사무총장 등으로 일했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려는 신념에 ‘뉴라이트 운동’과 연대했다. 저서로는 신문 기고 및 방송 대담 등을 모아서 발간한 경제 칼럼집 ≪시장경제가 민주주의다≫(엣즈, 2008)가 있다. 역서로는 민경국 교수와 함께 완역한 ≪인간행동≫(지만지, 2011), 권혁철·김이석·송원근·최승노와 함께 번역한 ≪미시정치(성공하는 정책 만들기)≫(북앤피플, 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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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5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128*188*12mm
ISBN13
9791143023599

책 속으로

1.
전쟁에서 승리는 전적으로 숫자나 용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과 군기만이 승리를 보장할 것이다. 우리는 로마인들의 세계 정복이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군사훈련, 엄격한 군기 준수, 꾸준한 전쟁술 함양 등에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요인이 없었다면 숫자가 충분치 않은 로마군이 어떻게 수많은 골족을 상대할 수 있었겠는가?

2.
신은 인류가 고안한 최고의 군단을 조직하도록 함으로써 확실히 로마인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군단을 구성한 열 개 대대의 빈틈없는 조직과 배치에 의해 군단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서 완벽한 단위체를 형성했다. 병사가 진급하기 위해서는 제1대대부터 제10대대까지 다양한 대대에서의 순환 근무를 거치며 경력을 쌓아야 하고, 정기적으로 다시 제1대대로 돌아와 진급하고 증액된 급료를 받았다. 각 대대에서 근무를 마친 뒤에 승진한 제1백부장은 군단에서의 복무 대가로 최고의 권위와 막대한 특혜를 부여받았다. 집정관 근위대의 최고 감독관은 같은 방법의 순환 근무를 통해서 그처럼 대단하고 명예로운 계급에 승진한 사람이다. 군단에서 기병들은 병과 간의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속한 대대의 보병들을 존중했다. 그리하여 모든 대대와 군단 내에서 보병과 기병 간에는 언제나 상호 협력과 결합이 잘 이루어졌다.

3.
만일 군의 일부가 승리한 반면에 다른 일부가 패배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결코 실망해서는 안 된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장군의 확고부동함과 결단력은 결국 완전한 승리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장군에게는 조그마한 일로 실망하는 경우가 마치 정복자에게 실망을 주는 사소한 일들이 수없이 발생하는 것처럼 많이 일어난다. 손실과 전과가 거의 비슷해 보일 때 장군은 대단한 결단력으로 불운을 강점으로 이겨 냄으로써 명성을 떨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인간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질서는 무엇인가? 이것은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 원리는 무엇인가의 문제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 또는 그 이상의 번영을 약속하는 발전 원리는 무엇인가? 사회주의인가? 복지국가 이념인가? 아니면 다양한 형태의 간섭주의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든 어느 사회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수정처럼 깨끗하고 분명하게 대답을 제시한 것이 미제스의 걸작 ≪인간행동≫이다. 즉, 지속 가능한 발전 원리는 사회주의와 간섭주의가 아니라 사유재산과 자유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광범위한 자유와 선택의 여지를 보장하는 사회적 협력의 시스템이자 동시에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수억의 인간행동들을 조정하는 제도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인류가 참혹한 전쟁을 두 번이나 겪어야 했던 매우 암울한 때였다. 미제스는 이 같은 전쟁을 개인의 자유를 유린하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 탓이라고 보았다. 그는 20세기 인류를 참혹하게 만든 집단주의의 논리와 결론의 오류를 명쾌하게 밝히면서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지속 가능성을 설파하기 위해서 심오한 경제 이론과 방법, 과학철학, 사회철학을 개발하고 있다.

미제스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이미 화폐, 사회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사회과학 방법론 등 다양하고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이미 다룬 주제들을 일관성 있고 체계적으로 다시 정리하고 이들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 이 책이다. 미제스 연구로 유명한 오스트리아학파의 에벨링이 확인하고 있듯이, ≪인간행동≫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주제들을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통합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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