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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_ 상상력과 욕망 사이에서 ‘그 길’을 찾아가다
Take 1. 감정의 미로를 지나, 회복의 입구에서 01 사람의 성품, 성령 충만을 받게 하라! 영화 〈인사이드 아웃〉, 뒤집어 보기 02 영혼의 백야(白夜)를 지날 때 ‘로빈 윌리암스’로 ‘의미’에 눈뜨게 하소서! 03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외치다 역설적 반성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Take 2. 현실의 어둠, 견디기 힘든 죄와 고통의 무게 04 폭력의 야만성 앞에 선 복수와 용서 드라마 〈더 글로리〉의 아이러니 05 지상의 집에서 영원한 집으로 왜곡된 꿈,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Take 3. 죄악된 세상, 누가 인간을 구원하는가? 06 중독 사회, 진노 중에라도 구원하소서 현대 사회와 드라마 〈수리남〉 07 마석도의 주먹이 필요 없는 그날까지 우리의 히어로, 영화 〈범죄도시 3〉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Take 4. 위장된 영성, 거짓 신앙의 얼굴들 08 구원하라, 문화산업에 신음하는 상상력을! 무의식을 조심하라,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09 문화, 영화계에서도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대중문화와 영화 〈파묘〉 10 호모 데우스의 비극적 종말을 보라!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경고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Take 5. 정의로운 사회, 정의로운 새사람 11 새로운 출발은 어떻게 오는가?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힌트를 얻다 12 선거에서도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게 하라!” 영화 〈특별 시민〉과 〈킹메이커〉 13 역사에서, 영적 전쟁의 숨겨진 메타포를 만나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충무공의 전략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Take 6. 다음 세대여, 거룩한 불씨를 이어라 14 다음 세대, 야생의 땅끝에서 복음으로 세우기 드라마 〈약한 영웅〉 의 역설 15 교회 주일학교가 슬램 덩크 하게 하라! 그들만의 세상,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16 아이들로 ‘그 빛’에 눈뜨게 하라! 근원에 관한 호기심, 영화 〈라스트 필름 쇼〉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Take 7. 상상력과 권력, 누가 왕인가? 17 종말의 진실 앞에 깨어 있으라! 세상의 목소리, 영화 〈돈 룩 업〉 18 상상력이여, 왕 되신 그리스도께 순복하라! 영화 〈듄: 파트 2〉 vs 〈반지의 제왕〉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Take 8. 존재와 진리에 관한 질문들 19 과학에게 묻는다, 두렵고 떨림이 있는가? 영화 〈오펜하이머〉의 질문 20 무신론과 유신론,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의 질문 21 세상의 소풍에서 천국의 소풍으로 영화 〈소풍〉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Take 9. 변화할 것인가, 지킬 것인가? 22 무신론자에서 복음 전파자로 역설적 증인 되기, 영화 〈예수는 역사다〉 23 전통과 개혁 사이에 선 교회 지도자 영화 〈두 교황〉에서 얻는 영감 24 예배는 최고의 레저다 영화 〈미라클 프롬 헤븐〉, 레저에도 신학이? • 더 깊은 이해와 토론을 위한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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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서문
영화는 일상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영화가 없다면 얼마나 무료할까. 영화는 팝콘처럼 달달하고 바삭바삭하게 우리의 감각을 부추긴다. 영화가 소일거리나 시간 때우기로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지났다. 영화는 입시생에게 필독서처럼, 직장인의 자기계발서처럼 교양과 상식 이상의 공감대를 만든다. 영화를 모르면 산속에 홀로 사는 원시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영화는 이제 생활의 일부이다. 거실까지 파고들어 온 OTT 서비스, 넷플릭스, 티빙, 쿠팡, 디즈니플러스 등등. 게다가 유튜브는 언제 어디서나 불쑥 고개를 내민다. “날 보러 와요!” 영상의 홍수에 떠밀려 다니는 현대인들, 애처롭지만 이를 외면할 수는 없다. 영화가 매 식사에 오르는 반찬처럼 스스럼없이 대화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지만, 영화의 위상은 반려견 이상이다. 문제는 영화에 온갖 상상력과 욕망이 뒤섞여 있다는 것. 때로는 여과 없이, 때로는 미학과 순수를 가장하여 대중 앞에 선보인다. 대형 스크린이 아니더라도 손바닥 안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영과 혼, 골수까지 파고든다. 관객은 때로 호기심에 사로잡혀 몰입하므로 자신도 모르는 영적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한 편의 영화는 현란한 극적 효과와 드라마틱한 감동 연출로 관객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다. 이 지점에서 주체적 관객은 사라지고 수동적, 피동적 소비자만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관객은 영상의 포로, 타자가 심어 주려는 욕망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인간은 본성상 타자에 의해 강요된 욕망이나 상상에 묶여 있을 수 없다. 창조된 인간은 자유를 향한 열린 존재이다. 현대 문화, 특히 영화는 세상의 첨단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지정의(知情意)를 장악하려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거대 자본과 대기업이 영화를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 자유와 해방은 멀고 먼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비평 의식, 나아가 영적 분별력(롬 12:1-2)이 필요하다. 세속 문화의 제국, 메트로폴리탄 로마를 향해 메가폰을 든 사도 바울과 같이 육신의 재미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거룩한 비전으로 세계를 바라보라! ‘그 재미’도 만만치 않을지니, 합력하여 거룩한 재미를 이루리라! 그때에 이르게 된다면 모든 것이 유익하고,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고전 10:23) 문화로 변화되어 가리라! 영화야말로 그 변혁 앞에 선 첨단 문화이기에 문화 전쟁,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거룩한 전선에 초대된 독자들이시여, 복 있을진저! 영화로 인하여 울고 웃으며 살아 있음의 신비한 감각을 느끼는 독자들이시여, 뜻하지 않은 순간에 천상의 행복을 만나리라. |